송시열이 설립한 팔괘정 앞에 선 필자[사진=필자제공]
송시열이 설립한 팔괘정 앞에 선 필자[사진=필자제공]

【뉴스퀘스트=김용섭 전북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 스승의 날의 발원지는 충남 강경이다. 그곳에는 우암(尤庵) 송시열이 설립한 팔괘정(八卦停)이 있다. 송시열의 스승은 조선 예학의 종장(宗匠)인 사계(沙溪) 김장생이다. 김장생은 금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후학을 양성하고 강학하기 위해 임리정(臨履停)을 지었다. 또한 그곳에서 약 50미터 떨어진 위치에 그의 스승 율곡(栗谷) 이이와 우계(牛溪) 성혼을 배향하기 위하여 죽림서원을 설립한 바 있다.

송시열이 자신의 스승인 김장생을 닮기 위해 임리정과 같은 모양으로 인근에 팔괘정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아름다운 사승관계(師承關係)가 스승의 날 제정의 원동력이 되었다. 팔괘정은 우주와 인간의 변화의 이치와 원리를 나타내는 주역의 팔괘를 염두에 두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임리정은 깊은 연못을 마주하는 것처럼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조심하여 처신하라는 의미의 시경에 나오는‘여림심연 여리박빙(如臨深淵 如履薄氷)의 문구를 따서 지은 것이다.

팔괘정 뒤 암벽 좌측에 종으로 각자된 몽괘벽(夢掛壁)[사진=필자제공]
팔괘정 뒤 암벽 좌측에 종으로 각자된 몽괘벽(夢掛壁)[사진=필자제공]

팔괘정 뒤의 암벽 우측에 횡으로 쓴 청초안(靑草岸)과, 암벽 좌측에 종으로 쓴 몽괘벽(夢壁)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청초안과 몽괘벽은 송시열이 팔괘정을 설립하면서 바위에다 각자한 것으로 송시열의 교육관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곳을 다녀간 여행객중에 청초안을 청초암(靑草岩)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바위 암(岩)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언덕 안(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초안은 횡으로 각자되어 있어 이를 공간적 개념으로, 몽괘벽은 종으로 각자되어 있어 시간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선 청초안은 그 뜻이 문자 그대로 푸른 풀이 펼쳐진 언덕이다. 푸른 풀을 뜻하는 청초는 맑은 사람이나 푸르고 깨끗한 세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몽괘벽의 의미에 관하여 명확하지 않다. 송시열이 중국의 회향현에 있는 팔괘대를 꿈꾸고 바위에 이를 각인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송시열의 모화사상을 드러내고 있어 탐탁하지 않은 해석이다. 오히려 그렇게 해석할 바에야 전북 진안 마이산의 몽금척(夢金尺) 설화와 유사한 의미로 풀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남원의 운봉 전투에 승리한 후에 마이산 입구 주필대에 말을 세워놓고 은수사에 들어가서 금척을 받는 꿈을 꾸었듯이 송시열이 유학과 주자학의 세계에서 최고의 경지로서 나아가기 위한 바위에 몽괘벽을 적어놓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럴 듯 하다.

이처럼 몽괘벽은 문자 그대로 희망의 꿈을 벽에 걸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송시열이 팔괘정이라고 주역을 염두에 두고 명명한 것과 연관하여 생각하면 교육 내지 계몽과 관련된 괘인 산수몽(山水蒙)과 관련이 있다.

꿈 몽은 어둡다는 뜻도 있어 전혀 무관하지 않다. 몽(蒙)괘의 요체는 바른 인재 양성인 양정(養正)이다. 몽괘벽에서의 몽(夢)은 주역의 산수몽에서의 몽(蒙)과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아서 이이가 쓴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의 몽(蒙)과도 연결된다.

청초안과 결부하여 몽괘벽의 의미를‘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로 해석할 수 있다. 송시열이 산수몽에서의 몽(蒙)과 달리 빗대어서 꿈 몽(夢)으로 쓰고, 괘()도 팔괘정의 괘(卦)와 다른 한자로 표현한 것은 임리정의 의미와 대비하여 보면 난득호도(難得糊塗)의 경지로 볼 여지가 있다.

이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벽을 화씨지벽(和氏之壁)에서의 벽과 같이 얻기가 귀한 보석으로 볼 수도 있다. 정도(正道)와 직(直)을 추구하였던 송시열이 화씨지벽의 고사(古事)에서와 같이 진정한 가치에 도달하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청초안과 몽괘벽은 푸른 초원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서 빛나는 보석처럼 참된 인간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후학에게 일깨워 주고 있다. 꿈보다 해몽이다. 교육자인 송시열이 후학에게 현실적인 벽에 직면하여 중도에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변치 않는 보석(壁)을 내걸고 꿈을 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절차탁마를 일깨우는 청초안과 몽괘벽을 강학공간인 팔괘정 뒤의 암벽에다 쓴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김용섭 전북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김용섭 전북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 김용섭 박사 프로필

- 경희대 법과대학 법학과 졸업
-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 (법학석사)
- 제26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제16기 수료
- 독일 만하임대 대학원 졸업 (법학박사)
- 법제처 행정심판담당관
- 한국법제연구원 감사
- 법무법인 아람 구성원 변호사
- (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변호사
- (현) 국회 입법지원위원,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위원회 위원
- (현) 한국행정법학회 회장, 한국조정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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