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결국 굴복
EU 집행위원회의 '그린 딜' 정책의 첫 실패작
우파의 반발과 농민들 합세에 대한 현 집행부의 우려 커져

【뉴스퀘스트=김형근 기자】 유럽연합(EU)이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해온 농업용 살충제의 감축 의무화 법안인 ‘지속가능한 살충제 사용 규제(SUR: Sustainable Use of pesticide Regulation)’ 발의를 사실상 폐기했다.

6일(현지시간) 유로뉴스(Euro News)에 따르면 이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연설에서 일명 ‘살충제의무감축법’으로 불리는 SUR 발의 제안을 철회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행위원장은 이어 "물론 이 주제가 계속 남아있긴 하겠지만 진전을 위해선 더 많은 대화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이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해온 농업용 살충제의 감축 의무화 법안인 ‘지속가능한 살충제 사용 규제(SUR)' 발의를 사실상 폐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연설에서 일명 ‘살충제의무감축법’으로 불리는 SUR 발의 제안을 철회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해온 농업용 살충제의 감축 의무화 법안인 ‘지속가능한 살충제 사용 규제(SUR)' 발의를 사실상 폐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본회의 연설에서 일명 ‘살충제의무감축법’으로 불리는 SUR 발의 제안을 철회하는 방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분노한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에 결국 굴복

그러나 6월 유럽의회 선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선거 이후 새로 구성되는 차기 집행부가 원점에서 재검토할 전망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결정은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에 대한 우파의 반발이 커지고, 환경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부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노한 농민들의 광범위한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나왔다.

야심 찬 목표로 2022년 6월 EU 집행위원회가 처음으로 발의한 SUR은 2030년까지 살충제 사용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또한 현 집행부의 단호한 정책인 ‘그린 딜’의 일환으로 도시 녹지 공간과 같은 민감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살충제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을 포함했다.

작물 수확량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화학 살충제는 오염의 주요 원인으로 간주돼 왔으며, 생물 다양성 손실, 열악한 수질, 토양 악화, 해충 저항성 및 만성 질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SUR은 법안이 발의될 때부터 이해 당사국 간의 첨예한 대립과 분열을 일으켰다. 또한 이 법안을 둘러싸고 농업 부문에서 회원국 간의 격렬한 로비 대상이 되기도 했다.

EU 집행위원회의 '그린 딜' 정책의 첫 실패작

지난해 이 법안은 유럽의회에서 찬성 299표, 반대 207표, 기권 121표로 부결됐고, 현재 회원국 간 정치적 협상에 갇혀 있어 결승선을 통과하려는 의지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집행위 초안이 공개되자마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에 따른 식량안보 우려 등으로 인해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집행위는 그럼에도 '안전의 시급성'을 앞세워 강행 의지를 밝혀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는 농민들의 '트랙터 시위'가 심상치 않자 결국 초안 발의 1년 8개월 만에 집행위는 백기를 들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각지 농민들은 EU의 엄격한 환경 규제와 저가 수입산 유입 급증에 항의하며 트랙터를 몰고 거리를 봉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일에는 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수도 브뤼셀도 점령, 도로 교통을 마비시킬 정도로 거센 항의들이 이어졌다.

지난 2일(현지시간) 농민들이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서 농업 정책에 반대하는 ‘트랙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 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농민들이 EU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서 농업 정책에 반대하는 ‘트랙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연합 뉴스]

우파의 반발과 농민들 합세에 대한 우려로 결국 폐기

집행위가 농민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유럽 각국에서 농민 지지를 등에 업은 '극우 돌풍'이 유럽의회 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SUR의 폐기와 함께 현 집행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기후 정책인 '그린 딜(Green Deal)’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린 딜은 2019년 출범한 집행위가 2050년 기후중립 달성과 지속 가능한 산업환경 구축을 목표로 제시한 포괄적 입법 패키지다. SUR도 이러한 패기지의 일환이다.

실제로 선거를 앞두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소속된 유럽의회 최대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EPP)에서는 최근 들어 집행위의 '그린 딜' 일부 법안에 잇달아 제동을 걸고 있다.

현 집행부 임기가 오는 10월 말로 끝나는 가운데 6월 선거 결과 우파 세력이 득세할 경우 기후정책 추진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유로뉴스에 따르면 6일 아침 연설에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기후 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생활비 위기에 직면한 농민들에 대해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길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유럽연합 온실가스 배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EU 예산을 통해 막대한 보조금을 받고 있는 농업 부문을 "더 지속 가능한 생산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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