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서스 즐겨 타고 일제 쌍안경 챙겨
김여정은 북일 수교 가능성 띄우기
대일 우호 인식이 관계개선 밑거름

 

지난해 8월 해군절 축하연회에 참석한 김정은과 함께 나온 딸 주애 앞에 일본제 아지시오 깨소금병이 놓여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지난해 8월 해군절 축하연회에 참석한 김정은과 함께 나온 딸 주애 앞에 일본제 아지시오 깨소금병이 놓여있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캡처]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김정은의 딸 주애 챙기기는 각별하다. 10살 안팎의 어린 아이를 미사일 시험발사장과 군 퍼레이드 행사에 동행시킨다. 북한 선전매체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지칭하며 한껏 치켜세운다.

이런 모습은 자신의 대를 이어 4대 세습 권력자로 주애를 자리하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올해 40세를 맞은 김정은이 굳이 어린 딸에게 후계수업을 시키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걸 두고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속마음은 김정은만이 알법하다.

김주애가 함께하는 김정은의 오・만찬 행사장에서는 눈길을 끄는 모습이 포착된다. 주애 앞에 놓인 파란색 병에 담긴 일본제 깨소금이다. 식품회사인 아지노모토(AJINOMOTO)가 만든 아지시오 소금은 ‘주먹밥과 삶은 달걀에 제격’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김정은이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거나 일본 제품에 대한 반감이 있다면 이같은 상황은 벌어질 수 없다. 더욱이 북한 체제는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이른바 ‘항일 빨치산’에 그 정체성을 두고 있다. 주민에게는 ‘반일’을 선동하고 교양하면서 정작 최고지도자의 딸은 버젓이 공개 행사에서 일제 소금을 식탁에 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일본사랑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렉서스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를 직접 몰고 방문 현장에 나타나거나 미사일 발사를 참관하면서 일제 니콘 쌍안경을 쓰는 장면도 관영 매체를 통해 확인된다. 그러니 딸의 일제 깨소금쯤이야 일도 아닐 수 있다.

이를 두고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이 어릴적 부터 생모의 영향을 받아 일본 학용품이나 생활용품을 쓰면서 ‘우수성’을 체감했고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의식이 자리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이런 생각과 정서는 최근 일본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에도 반영되는 양상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지 엿새만인 15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내고 “두 나라가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기시다 수상(총리)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납치 일본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에 화답하는 모양새란 점에서 이례적이다.

김정은이 여동생이자 자신의 ‘입’ 역할을 해온 김여정을 내세워 북일 정상회담에 호응하는 듯한 반응을 내놓은 건 일본과의 관계개선 필요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국민 여론 등을 고려할 때 납북자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한 일본 정치권의 입장을 활용해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다. 또 일본으로부터 천문학적 규모의 청구권 자금(일제 강점기 배상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김정은으로서는 매력적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한국은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 재정차관 자금 2억 달러에 상업차관 3억 달러와 금액을 밝히지 않은 플러스 알파의 상업차관을 받았고 이는 산업발전의 밑천으로 쓰였다. 북한의 경우 최소 50~100억 달러에서 최대 300억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는 추산액이 제기된다.

김여정의 담화는 한국과 쿠바의 전격적인 수교 발표에 자극받은 측면이 강해 보인다. 수교 사실이 알려진지 하루 만에 ‘기시다 방북 가능’이란 언급을 내놓은 건 다분히 한-쿠바 수교에 맞대응하려는 차원일 수 있다.

사회주의 형제국으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쿠바의 ‘배신’에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매우 당혹스런 상황에 빠졌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1992년 한중 수교 당시의 분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한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물론 북일 수교는 납북자 문제 해결이란 큰 산을 넘어야 하는 등 갈길이 멀다. 일본은 1970∼1980년대 요코타 메구미(1977년 실종 당시 13세)를 비롯한 17명의 일본인이 납북돼 12명이 생존해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12명의 납북 일본인 가운데 메구미를 포함해 8명은 이미 사망했고 4명은 납치한 일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현격한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결심하면 2000년과 2004년 김정일-고이즈미 회담 때와 같은 상황을 만들 수 있고 북일 수교 쪽으로 탄력이 붙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부정적이지 않은 대일 인식은 이런 전망에 뒷심을 더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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