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데서 찾지 말고 대한민국도 해법을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이 필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15일 개인 명의 담화를 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과 함께 북일수교 가능성을 시사했다.[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15일 개인 명의 담화를 통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과 함께 북일수교 가능성을 시사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 김정은을 대리해 김여정이 2월 15일 일본에 내민 손이 재미있다. “두 나라가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다” “수상이 평양을 방문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에서 애처로움도 느낀다. 그만큼 다급하다는 증거다.

정상회담까지 거론하는 급작스런 ‘구애’는 전격적인 한·쿠바 외교정상화에 대한 화들짝 반응으로 볼 수도 있다. 중·러 다음으로 북한의 맹방인 쿠바를 흔들었으니, 한국이 미국 다음으로 살갑게 지내는 일본을 주물러보겠다는 행태다.

김정은 ‘2국가 주장’이 가진 또 하나 노림수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더 이상 동족이 아니고 함께 통일해야 할 대상도 아닌 완전 별개의 국가이니,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명시하고 통일을 의무로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일랑 깡그리 무시하고 부담 없이 상호 독자적 주권 국가로서 외교관계 정상화를 모색해보자는 신호다. 미국을 포함해 한국의 다른 우방국들에도 관계 변화를 요구하는 손짓이기도 하다.

이번 김여정 발언에는 상기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대일 제안을 먼저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될 상황에서 한·쿠바 수교가 계기를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배경에는 통치자금 고갈이 놓여 있다.

핵무력의 외연화와 내포화가 진전되어도 주민들을 먹여 살릴 방도가 없다. 무기를 팔아도, 중·러의 지원을 받아도 겨우 체제 지탱층의 입에 풀칠해줄 정도다.

2002년 아버지 김정일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간에 오갔던 대일 배상금이 눈에 아른거릴 수밖에 없는 김정은이다. 당시 북한이 최대 400억 달러까지 요구하려 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납치자 문제가 걸림돌이지만, 돌파구는 있다고 보는 김정은이다. 잔여 납치자 전원이 사망했음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어 국내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가시적 외교성과가 절실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다.

북·일 관계 정상화, 그에 따라올 배상금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더욱 단단해진 미·일 관계, 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밀착해가는 한국과 일본, 한·미·일 대북 군사적 압박이 나날이 커지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먼저 일본에 화해의 미소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본에 신호를 언제 보내나 노심초사 기다리던 상황에서 한·쿠바 소식이 기회를 준 것이다. 물론 밑밥으로 1월 1일 노토반도 지진에 기시다 총리를 ‘각하’로 호칭하며 위로 전문을 보냈었다.

이런 저런 설명에도 잊지 알아야 할 진실은 북한 수령들이 타산만 맞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는 사실이다. 김일성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합의에 돈이 변수는 아니었다. 체제 생존을 위한 시간 벌기가 관건이었다.

김정일의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수용에는 돈벌이가 핵심이었다. 경제난이 없었더라면 김정일에게 두 남북 경협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주의 형제국 동독이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정일이었다. 서독과 교류협력을 통해 서독의 자유·민주주의·인권·복지에 눈과 귀를 연 동독 주민에 의해 당시 사회주의 제1의 경제강국 동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동독 독재자 에리히 호네커가 서독으로부터 건너올 자본주의 영향을 차단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추진했던 ‘차단정책(Abgrenzungspolitik)’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하게 하고 결론을 얻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정일은 그 넓은 금강산과 개성 지역을 남북경협이란 이름 아래 내놓았다. 동독과 비교할 수 없이 사회통제, 주민장악에 자신감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호네커가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정일은 통치자금이 절실했다.

2백만 가까운 남쪽 관광객이 비무장지대(DMZ)와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을 방문하고, 수만 명의 북쪽 주민들이 남쪽이 만든 개성공단에서 먹고 일하고 어울리는 상황을 김정일은 감내했다. 우리가 아니라 김정일이 닫혔던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개성공단의 확장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항일투쟁, 미 제국주의 앞잡이 일본 비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김씨 일가 권력장악·유지·세습에 주춧돌이었다. 김정일은 그 일본의 수뇌를 만나 관계 정상화를 모색했다. 배상금을 ‘가지껏’ 궁리했다.

그 DNA는 김정은에게도 변함없다. 국내적 반일·배일 선전·선동은 변화 없이 지속될 것이지만, 체제·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자금 확보가 김정은을 일본에 손 내밀 수밖에 없게 한다. 철천지원수 미국의 수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세 번이나 만났던 주 이유도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난 극복이었다.

우리를 건너뛰고 김정은이 일본과 미국과 무언가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넘어, 김정은이 일본과 미국과 원하는 무엇을 우리가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어야 할 시기다. 윤석열 정부 2년간 신뢰를 기반으로 공고화된 한·미·일 협력의 실체를 한·미·일이 함께 동시에 김정은에 보여주는 외교가 펼쳐져야 한다.

곧 있을 한·쿠바 정상회담과 함께 답답하고 절실한 김정은의 현실을 고려한 대북 제안도 만들어져 김정은 앞에 놓아야 한다. 셈법만 맞으면, 돈을 벌 수 있다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어 무엇이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김정은이기 때문이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2023년 11월 26일 실시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나타난 반대 0.13%, 사형까지 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 무리가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전복을 노리는 ‘혁명’까지 음모했다는 내용의 북한 보안당국이 만든 문헌학습영상, 지난 1월 중국 파견 북한 노동자 2천명의 임금 체불 항의 파업·폭동의 저변에는 먹여 살리지 못하는 자신이 원인임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이다.

겉으로 나타날 김정은·김여정의 공개적 비난·거부와 별개로 접촉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남북 접촉·대화·교류는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북한 변화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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