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82)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의학 문헌에 거의 언급 없어
로마시대에 약간의 언급…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치매는 없어
볼리비아 아마존 원시부족, 노인 치매 1%에 불과… 미국은 11%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21세기의 가장 무서운 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치매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올라간다. 치매를 뜻하는 영어 ‘dementia’는 그 어원이 ‘떠나다’, 또는 ‘분리되다’의 de와 마음(mind)을 뜻하는 ‘mentia’의 합성어다.

다시 말해서 정신이 떠나버린 질병이라는 단어다. 영혼이 떠나버렸으니 육체는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치매의 증상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단어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는 치매는 환자만이 아니라 가족의 꿈조차 앗아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고대 그리스 로마 의학 문헌에 거의 언급 없어

더구나 병원에 입원한 경우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3~4명의 간호인이 필요할 정도다. 국가의 재정 지출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그러면 이렇게 치매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대에도 치매는 여전히 지금처럼 노인들에게 많았을까? 수명이 연장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치매 환자가 늘어난 것일까?

역사 전반에 걸쳐 노화 관련 치매를 탐구할 때 공통된 믿음이 있다. 치매라는 단어의 기원처럼 이 질병이 인류 자체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USC)가 주도한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이 질병의 이면에 다른 역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는 고전 그리스와 로마 의학 문헌을 조사한 결과 현재 크게 증가하고 있는 심각한 기억 상실의 치매가 약 2000~2500년 전에는 놀랍게도 드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발견은 알츠하이머병 및 관련 치매가 주로 현대 생활 방식과 환경의 산물이라는 주장에 탄력을 실어준다. 컴퓨터 등 앉아서 생활하는 행동(sedentary behavior) 습관, 대기 오염과 같은 요인이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로마시대에 약간의 언급…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치매는 없어

이번 연구의 제1 저자이자 USC 레오나드 데이비스 노인학 대학원(Leonard Davis School of Gerontology)의 칼렙 핀치(Caleb Finch)는 기억 문제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경미한 인지 장애와 같은 것에 대해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지만 우리는 그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오늘날 우리가 식별하는 것과 유사한 경미한 인지 장애를 인정했지만 기억, 언어 및 추론의 상당한 손실을 수반하는 알츠하이머병 수준의 장애는 인정하지 않았다.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의 저작을 포함한 고대 의학 문헌을 통한 이 연구의 여정은 흥미로운 통찰력을 드러낸다.

이러한 고대 그리스 문헌들은 청각 장애, 현기증 등 노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병을 광범위하게 분류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심각한 기억 상실을 유발하는 치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의학 문헌에 치매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는 당시에 치매 환자가 거의 없었음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도시가 생기고 밀집 지역이 생기면서 대기오염의 급증으로 치매 환자가 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Harvard Health]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의학 문헌에 치매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는 당시에 치매 환자가 거의 없었음을 의미한다. 과학자들은 도시가 생기고 밀집 지역이 생기면서 대기오염의 급증으로 치매 환자가 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진=Harvard Health] 

그러나 흥미로운 점이 있다. 고대 로마로 넘어가면서 치매를 둘러싼 기억 상실, 인지 기능 저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로마시대의 유명한 의학자로 알려진 갈렌(Galen)과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와 같은 주목할만한 인물들이 노년층의 기억력 감퇴 사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갈렌은 약 80세 노인들의 학습 장애를 관찰한 반면, 플리니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린 한 원로원 의원에 대해 언급했다. 키케로 역시 일종의 "노인의 어리석음"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모든 노인을 여기에 연관시키지는 않았다.

“우리는 로마인들로부터 희귀한 진행성 치매 사례를 시사하는 최소 4개의 진술 내용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이 알츠하이머병인지 알 수 없다. 다만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로 발전하는 과정에 그러한 사례가 있었다”고 핀치 교수는 설명했다.

로마 도시, 인구밀도 높아지고 오염 증가하면서 치매 발생 시작

핀치 교수는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CSU)의 역사가이자 공동 저자인 스탠리 버스타인(Stanley Burstein)과 함께 로마 도시의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오염이 증가하면 인지 저하 사례가 확대되었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납의 신경 독성의 특성을 고려할 때 요리 용기, 수도관, 심지어 로마 귀족이 와인 감미료에 납을 사용해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핀치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고대 서구 세계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인구 통계 데이터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볼리비아의 아마존의 원시 부족 치마네 원주민(Tsimane Amerindians)의 현대적인 통계를 이용했다.

산업화 이전 치마네족의 신체 활동 중심의 생활 방식은 고대 문명의 생활 방식과 유사하다. 특히 주민들의 치매 발생률이 매우 낮다.

지금도 원시생활을 영위하는 볼리비아 아마존 치마네 부족에게 치매는 거의 없다. 노인 가운데 1%만이 경미한 인지기능 저하를 겪는다. 미국은 노인 가운데 11%가 치매 환자다. [사진=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볼리비아 아마존 원시부족 치마네, 노인 치매 1%에 불과… 미국은 11%

USC 레오나드 데이비스 스쿨의 마가렛 가츠(Margaret Gatz) 교수를 포함한 국제팀은 치마네 노인들 가운데 단지 약 1%만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미국 노인 인구의 11% 발병률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수치다.

고대 문헌과 현대 연구를 연결하는 이 포괄적인 연구는 역사 전반에 걸쳐 환경 요인이 치매 위험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치마네 부족 공동체는 라이프스타일 선택이 인지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귀중한 모델을 제공한다.

핀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이들의 최소 치매 발생률은 현대의 건강 문제에서 환경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하기 위한 템플릿을 제공한다.

과학적으로 보고된 심장과 질환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 가운데 하나인 볼리비아 저지대의 열대 숲에 거주하는 치마네 공동체는 그동안 치매와 심장 질환과 관련해 많은 연구들이 집중돼 지역이다.

연구팀은 아마존 부족에게 심장병과 질환인 치매가 현저하게 적은 과학적 이유에 대해 풍요와 안락(安樂) 결국 이러한 질병을 부추긴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해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치매를 비롯해 심혈관 질병이 바로 현대적인 이기(利器)에서 발생하며, 중심에는 신체적 활동이라는 운동 부족에 비롯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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