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은 되어야 시작되는 문화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 제국의 4대 요건은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 포용력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기본적 경제력이 없으면 어떤 문화는 특수층만의 문화에 불과하고 구성원 전체가 누릴 수 없다. 즉 한 나라 구성원의 문화적 자유는 경제력에 크기에 비례하여 그 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기본적 경제력을 갖춘 다음의 경제적 도약은 문화력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리하여 경제력과 문화는 선순환의 고리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구성원들이 주장하는 자유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실현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생존의 문제인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될 정도의 경제력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사회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오죽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얘기가 생겨났을까?

역사적으로도 문화가 활발하게 꽃을 피우는 시기는 그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장 융성할 때였다는 것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객관적 지표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이 그 지표다.

그 지점을 넘기 시작하면서 문화가 본격적으로 다양화되기 시작하고 그 문화력이 축적되면서 그로 인해 다시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돌파가 개인의 선택 다양성을 본격적으로 보장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고 실제로 선택 자유의 실현이 가능해지는 시점이라는 의미다. 그 이유는 이 때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의식주중에서 식(食)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개개인의 권리의식도 고양되고 개성도 표출되면서 의식주 문화의 다양화와 함께 서서히 미식 문화도 본격적으로 발아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먹는다는 것이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즐기는 단계 즉 식도락의 단계로 이행하는 여유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미식 문화가 발달한다는 것은 맛과 향의 다양성을 즐기고 각 개성화된 집단들이 별도의 시장규모로 존립이 가능할 정도로 세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대표적인 먹거리 지표가 바로 와인이다.

와인 생산국이 아닌 어떤 사회에 와인문화가 보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반대로 그 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일만불을 넘어섰다는 의미가 된다.

우선 와인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이 되지 않으면 가격 장벽 때문에 쉽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일만불은 되어야 손이 갈 수 있는 가격대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와인문화가 도입되면서 미식문화가 함께 발전한다.

이유는 술 중에서 와인이 가장 맛과 향이 다양한 알코올 음료이고 거기서 맛과 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미각이 발달하고 그 발달한 미각이 음식과의 궁합의 중요성을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역으로 다양한 음식을 접하게 되면서 그 음식에 어울리는 술을 찾게 되면서 와인이 보급되는 상호작용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이 돌파한 해는 1995년이다.

1987년 민주화가 된 이후 그 해에 주류 수입면허가 민간 업자들에게 허용되었다는 것도 어찌 보면 우연이 아니다.

국내 와인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부터라고 보더라도 그 씨앗이 본격적으로 발아되기 시작한 시점이자 변곡점이 바로 1995년이라고 볼 수 있다.

1988년 수입금액이 3.8백만불에서 1994년까지 8.1백만불로 6년간에 걸쳐 4.3백만불 증가했던 것이 1995년 갑자기 13.6백만불로 한 해만에 1994년 대비 연간 약 68.2%가 급신장한다.

한 해만에 약 5.5백만불 증가로 6년간의 증가액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는 1997년말 IMF가 올 때까지 22.8백만불로 2년만에 다시 약 68%가 급증한다.

IMF 직후인 1998년 6.4백만불로 급감했던 수입금액 규모는 바로 그 다음해인 1999년 15.1백만불로 급증해서 2001년에는 23.1백만불로 IMF직전의 수입규모를 넘어선다.

IMF가 없었다면 그 신장세는 쭉 이어졌을 것이다.

필자가 바로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이 한 나라의 구성원들의 개성과 취향이 다양화되는 기준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기 마련이다.

개인 경제력의 증가는 그동안 감히 눈 돌릴 여유가 없어서 몰랐고 알았더라도 즐기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를 찾아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국내 대형 할인점이 최초로 탄생한 것이 그보다 조금 빠른 1993년인가부터지만 이 역시 본격적으로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1995년이후 부터다. 

고 이건희 회장께서 삼성 그룹의 임직원들에게 골프를 맘놓고 치라고 대놓고 말씀하신 것도 이때를 전후해서이고 와인을 맘놓고 먹으라고 선언하듯이 임직원들에게 선물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이후부터다.

그는 글로벌 시대를 예견하고 국제적 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 교역국 특히 선진국 사람들을 상대하는 문화 도구를 미리 임직원들에게 체득하게 한 선견지명을 가진 분이었다.

고 이 건희 회장의 선언 전만 해도 우리나라 공무원들을 포함하여 대기업 임직원 그 누구도 골프나 와인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소위 윗분들과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고. 

눈치보지 않고 맘 놓고 골프를 치게 된 것은 그 분이 선언하고 나서부터이다. 

그 이전만해도 골프나 와인은 사회 특수층만의 문화였다. 

심지어 그 시절은 고급 외제차를 타도 돌이 날아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분이 이제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먹고살만 해졌으니 경제인이 문화리더가 되어 문화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켜서 그것이 뒷받침되어야 경제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는 걸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안목을 가졌으니 경제는 2류, 정치는 3류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일 것이고.

개인의 경우를 일반화한다는 것은 위험성이 크기는 하지만 필자 개인의 경험도 한 사례로서 살펴보자. 

필자는 와인업계에 2000년 봄에 입문할 때까지만 해도 음식을 갖고 맛이 있네 없네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참 별걸 가지고 까탈스럽게 군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저 허기를 달래면 되는 것이지 뭐가 맛이 어떠니저떠니 떠느냐며 그런 사람들을 내심 못마땅해했었다. 사실은 그들이야말로 절대 미각의 미식문화 선구자들이었는데. 

보릿고개 막차를 탄 세대였기에 밥상이나 밥그릇에 밥알 하나도 남기면 안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먹고 즐길 만한 음식이 그다지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와인업계에 입문하여 와인의 맛과 향에 집중하다 보니 뒤늦게 미각과 후각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평소에는 아무 말없이 아무 음식이나 잘 먹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된장찌개 하나를 놓고도 가타부타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미식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원초적 본능인 미각은 후각이 7~80%를 결정하고 이렇게 감각이 발달하면 동시에 감성도 발달하게 되어 한 사회가 전반적으로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 분야가 발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가 한류가 세계적으로 통하게 되었다면 너무 아전인수격의 과장된 논리일까?

독자들이여 부디 와인을 즐기시라.

그것은 곧 이 나라 문화력을 키우고 동시에 포용력을 키워서 대한민국이 ‘선한’ 제국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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