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설법’에 대한 학술조사가 시급하다
무애(無碍)의 마음으로 민중들에게 다가간 원효대사

땅설법 연행장면
땅설법 연행장면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무애(無礙, 無碍)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막힘이나 걸림이 없음. 거침없음. 거리낌 없음.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함’을 뜻한다.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우며, 모든 장애(障礙)에 거리낌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쾌락과 본능을 좇아 방탕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애는 아닐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부처님을 ‘무애인(無礙人)’이라 하고, 부처님의 지혜를 ‘무애지(無礙智)’라 한다. 부처님은 어떠한 것에도 거리낌이 없어 모든 사리를 다 알아 통달 자제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언행을 무애행(無碍行)이라 스스로 칭하며, 불문(佛門)을 더럽히는 일이 있다 하여 경계하고 있다.

무애(無碍) 하면 떠오르는 것은 신라 시대의 고승(高僧) 원효대사(元曉大師)의 무애가(無碍歌)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등 고문헌 자료에 의하면 제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재위 654∼661) 때 원효(元曉)가 파계하여 설총(薛聰)을 낳은 뒤 환속하여 속복(俗服)에 속인 행세를 하며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칭했다. 그리고 광대들이 큰 바가지를 들고 춤추며 노는 것을 보고 그 모습을 본떠 무애(無碍)라 이름하고, 표주박 모양의 이상한 그릇을 들고 거리를 돌며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며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원효가 《화엄경(華嚴經)》의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라야 생사의 편안함을 얻느니라」라는 뜻을 가진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에서 유래하여 무애가(無碍歌)라는 노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원효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화엄경(華嚴經)》의 이치를 담은 이러한 노래와 기행(奇行)으로 민중의 눈높이에 맞게 불교를 민중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었다. 무애가의 가사는 전해지고 있지 않다.

스님이든 신부님이든 목사님이든 성직자의 책무는 부처님이나 하느님과 신자의 중간자로서 충실한 가교(架橋) 구실과 자신이 섬기는 신의 심오한 뜻을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전파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원효는 성직자로서 자신의 권위 의식을 버리고 민중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려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처님의 설법이자 민속예술의 보고인 ‘땅설법’

그런데 불교의 영산재(靈山齋), 수륙재(水陸齋), 예수재(預修齋) 등 재(齋) 의례 말고, 불교의 교리를 전하는 설법으로서 ‘땅설법’이라는 것이 있다. ‘땅설법’이란 스님의 쉬운 설법으로 ‘땅’에 사는 민중들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재미있게 불법(佛法)을 전한다는 의미로 '땅(地)'과 '설법(說法)'의 합성어이다. 원효의 ‘무애가(無碍歌)’ 연행(演行)도 ‘땅설법’의 한 종류이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 ‘땅설법’은 한국은 물론 불교국가 어디에도 흔한 문화 현상이었으나, 현재는 유일하게 강원도 삼척 안정사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일반적인 설법은 일반적인 신자, 특히 전통 사회에서 거의 무학에 가까운 민중들, 그리고 불교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그래서 창안된 것이 바로 '땅설법'이다. 이러한 불교의 쉬운 설법을 중국에서는 '속강'(俗講)', '강창(講唱)', 티베트 부탄에서는 ‘챰(cham : 일명 도무(跳舞))’, 일본에서는 ‘에토끼(繪解き)’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중국, 티베트, 일본은 물론 불교가 전파된 모든 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한국의 경우 독특하게 삼척 안정사에서만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다.

‘땅설법’은 설법 내용에 대한 불교 그림인 변상도(變相圖)를 가지고, 이를 설명(講), 소리(唱), 연희(演)를 섞어가며, 이를 통해 신도들의 교리 교육, 일반인들에 대한 포교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의 ‘땅설법’은 재(齋)의식 후에 뒤풀이 형식으로 벌이는 난장(亂場)인 '삼회향(三回向) 놀이'와는 다르다. '땅설법'은 단순히 불교 놀이가 아닌 '교리 전달'을 목적으로 한 설법의 한 형식이다. ‘땅설법’의 구비 경전(레퍼토리)은 중요하게 취급하는 본전(本典) 5종과 그에 비해 중요도가 약한 별전(別典) 6종이 있다.

본전에는 <석가모니일대기(釋迦牟尼一代記)>, <선재동자구법기(善財童子求法記>, <목련존자일대기(目連尊者一代記)>, <성주신일대기(聖主神一代記)>, <신중신일대기(身衆神一代記)>가 있다. <석가모니일대기>, <선재동자구법기>, <목련존자일대기>는 각각 같은 유형의 불교 경전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주신일대기>와 <신중신일대기>는 전혀 그 모본(母本)에 해당하는 경전을 찾을 수 없다. 그 내용이 한 인물의 일대기 구성을 취하고 있고, 이 각각의 경전을 연행하는 것은 의례 목적이나 대상 청중에 따라 선택하게 된다.

원효의 무애가(無碍歌)도 ‘땅설법’의 하나

5종의 본전 외에 별전 6종이 존재한다. <만석중득도기(曼碩衆得道記)>, <안락국태자경(安樂國太子經)>, <태자수대나경(太子須大拏經)>, <심청효행록(沈淸孝行錄)>, <삼한세존일대기(三韓世尊一代記)>, <위제희부인만원연기(韋提希夫人滿願緣起)> 등이 있다.

‘땅설법’ 안에는 많은 연희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불교 성악인 범패와 불교 무용인 작법, 북춤, 민요와 농악, 버나놀이, 죽방울받기 등 광대패들의 재주와 연희뿐만 아니라 한국 유일의 그림자극인 만석중득도기(曼碩衆得道記), 한국 유일의 사원 탈놀이인 신중신(身衆神) 탈놀이, 한국에서 전승되는 2개의 인형극 중 하나인 위제희부인만원연기(韋提希夫人滿願緣起), 한국 유일의 삼위일체 조종방식 인형극인 활인선생(活人先生) 인형극 등이 녹아들어 있어, 민속예술의 상당 부분이 ‘땅설법’에서 발원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연행에 스님은 물론 신도들이 연행의 주체로 동참한다는 것이다.

‘땅설법’은 도강(導講), 불단진설법문(佛壇陳設法門), 문답설법(問答說法), 도창(導唱), 도평(導評) 순으로 연행된다. 도강(導講)이란 연행하게 될 ‘땅설법’의 제목, 주제, 목적을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다. ‘불단진설법문(佛壇陳設法門)’은 불단에 진설(陳設)된 것들의 불교적 설명이라는 뜻이다. ‘땅설법’에 사용되는 도구 및 공간에 장엄되어 있는 것들의 의미를 설명한다. ‘문답설명(問答說法)’이라는 것은 앞서 설명에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궁금한 것들에 대해 참석 대중들이 자유롭게 묻고 이에 대한 법주 스님이 주는 시간이다.

땅설법 연행 장면
땅설법 연행 장면

‘도창(導唱)’은 본격적으로 서사(스토리)를 연행한다. 변상도(그림)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설명(講)과 소리(唱) 그리고 때때로 연행(演)을 섞어가며 진행한다. 그러나 ‘땅설법’은 불교 교리 전달이 주목적이므로 판소리처럼 서사 진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불교 교리와 접목한다. ‘도평(導評)’이란 도창을 맡은 ‘땅설법’ 법주(法主)의 스승이 나와 그날 연행한 ‘땅설법’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한 번 더 연행한 ‘땅설법’의의 핵심들을 짚어주는 것이다.

멸실 위기에 처한 ‘땅설법’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 연구조사가 시급하다

삼척 안정사 ‘땅설법’의 직접적인 전승은 이북 지역에서 활동했고, ‘땅설법’의 정통 법맥의 대표 격인 강통(講統)을 했다는 무명 스님(1910-1988)으로부터이다. 지금의 ‘땅설법’은 발해국 석정(釋貞) 스님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다 하니 적어도 1,3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무명 스님은 주로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전국적으로 떠돌며 ‘땅설법’을 하였다. 6.25 당시 남쪽에 있다가 결국 북쪽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말년에는 남한에서 활동하게 되었는데, 1970년대 초 비구니 대법 스님이 삼척 신기면 신기리에 안정암을 창건한 대법 스님과의 인연으로 안정사에 ‘땅설법’을 전하게 된다. 안정암은 1987년 현재의 안의리 '안정사'로 확장된다.

현재의 전승자인 다여(茶如) 스님은 무명 스님으로부터 10세 때인 1976년부터 1988년까지 무명 스님으로부터 ‘땅설법’을 배웠다. 어린 나이의 학습이고, 전혀 일반인들과 교류가 없이 절에서만 지냈기에 10여 년의 학습으로 ‘땅설법’의 레퍼토리들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명 스님이 작고하기 전 전법패(傳法牌)와 전법게(傳法偈)를 수여받았다. 물론 다여 스님의 ‘땅설법’ 학습에는 안정사의 창건주 대법 스님과 운성 스님으로부터도 보충되었다.

안정사 ‘땅설법’은 한국을 넘어서 동아시아를 위시한 불교 국가에서 보편적이었으나, 현재는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속강형식'을 제대로 이어오고 있다. 따라서 땅설법은 변상도라는 불교 그림, 창과 연희, 그리고 다양한 민속의 활용 등으로 불교를 넘어서 전통예술 측면에서도 매우 주목되는 문화이다.

끝으로 ‘땅설법’은 불교 영산재의 재받이 승려처럼 이것만을 전승하던 '법주' 집단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소멸하고, 국내에서는 다여 스님 단 1인만이 ‘땅설법’ 전반을 집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그러나 이 문화를 계속해서 지속시킬 후계자가 없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형편이다.

다여스님 그림자극 연행 장면
다여스님 그림자극 연행 장면

‘땅설법’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연구조사와 검증이 필요하다. ‘땅설법’의 모든 예능을 온전히 연행할 수 있는 스님이 다여 스님 한 분이기에 혹 스님에게 갑자기 변고가 발생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일부 관심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나름대로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줄 아나, 보다 더 정밀한 ‘땅설법’에 대한 시급한 연구조사가 따라야 할 것이다. 연구조사 후 무형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된다면, 시급히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안정된 전승체계를 구축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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