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의 길을 마다하고 농사를 지어 대성공을 거둔 양수춘 베이다양거 CEO[사진제 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외교관의 길을 마다하고 농사를 지어 대성공을 거둔 양수춘 베이다양거 CEO[사진제 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는 불후의 진리를 생각하면 별로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호불호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해야 한다. 특히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자녀들이 이른바 신의 직장에서 많은 수입을 올리면서 이른바 갑(甲)의 위치에서 편안하게 생활하기를 원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속물적인 자세는 중국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아니 14억 명 중국인들이 뼛속 깊이 자본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하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현재 무공해 유기농 신선식품 생산 농장 겸 슈퍼체인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베이다양거(北大楊歌)의 양수춘(楊舒春. 44) 사장의 부모 역시 상당 기간 그랬다.

반면 그는 부모와는 180도 달랐다. 역시 기가 막힌다고 해도 좋을 그의 성공 스토리를 살펴봐야 왜 부모와 자식의 직업을 보는 자세가 확연하게 달랐는지를 잘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1980년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 시산(錫山)구의 농촌 마을인 란차오제다오(藍橋街道)에서 태어난 그는 지금까지 고향이 배출한 비교불가의 단연 최고의 천재라고 한다. 하기야 1997년에 실시된 가오카오(高考. 중국판 수능)에서 시 전체 2등의 성적으로 베이징대학 스페인어과에 가볍게 합격했으니 그렇게 평가받을 만도 했다.

이후 그는 고향 사람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만 입학한다는 베이징대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낭중지추(囊中之錐. 눈에 두드러지는 사람)가 별로 어렵지 않게 될 수 있었다. 대학 3학년 때는 자체발광이라고 해도 좋을 뛰어난 능력을 간파한 외교부에 의해 스페인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는 기염까지 토했다.

유학 후 간단한 테스트를 통과할 경우 외교부 입부는 기정사실이라고 해도 좋았다. 베이징대에서도 특출했던 장학생 출신이 그걸 통과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부모가 환호작약하지 않았다면 이상했다고 해야 했다. 대사 자리는 이미 떼다놓은 당상이라고 해도 좋았던 만큼 그럴 만도 했다.

그는 그러나 공식 외교부 입부를 며칠 앞두고 고향 집에 들렀다 돌연 행방불명이 됐다. 고향에서는 완전 난리가 났다. 다행히 부모는 아들이 가출하면서 써놓은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짧은 편지에는 외교부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일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부모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면서 펄쩍 뛰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무릎을 꿇은 채 어떻게든 자식의 마음을 바꾸려 빌기까지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아들의 생각이 너무나도 완강했던 탓이었다. 문제는 계약을 위반한 탓에 국비 장학생으로 있으면서 사용한 유학 경비를 청산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다행히 부모의 주변에는 그를 고향의 자랑이라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곧 형편대로 십시일반 돈을 거뒀다. 이렇게 해서 국가에 지불할 배상금은 겨우 마련될 수 있었다.

고향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이후 다시 스페인으로 향했다.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일단 목적이기는 했다. 당연히 졸업 후 창업도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드리드대학에서 25세 때 가볍게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당초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대신 현지의 대형 무역회사에 입사, 경험부터 쌓았다. 역시 천재는 어디를 가나 빛이 나는 법이었는지 그는 회사에서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창업의 기회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것은 너무 당연했다. 회사는 그의 예상대로 아주 잘 돌아갔다. 스페인에서 대성공한 외국 출신 기업인으로 대대적인 주목도 언론으로부터 자주 받고는 했다. 바로 이때 그에게 또 한 번의 인생 대반전의 계기가 찾아온다.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로부터 “왜 스페인의 농산물과 식자재들은 이렇게 신선하고 깨끗한가? 중국과 너무 비교된다. 이걸 보면 먹는 것에 진심인 중국은 복 받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그의 인생을 다시 바꿔놓은 것이다. 그는 즉각 스페인 출신 부인과 아들을 대동하고 고향으로 향했다. 언제인가는 귀향해 농사를 대규모로 짓겠다는 평소의 꿈을 이제는 실행에 옮겨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2012년,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그는 고향에서도 거칠 것이 없었다. 바로 수만 평의 농지를 구입, 무공해 유기농 농산물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급기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극적 지지자들이었던 고향 주민들은 깜짝 놀라 “천재의 뇌에 물이 찼다”, 즉 완전히 미쳤다고 비아냥거렸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국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 보도될 정도로 성공한 베이다양거. 곧 증시에 상장될 것으로 보인다.[사진제공=징지르바오]
국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 보도될 정도로 성공한 베이다양거. 곧 증시에 상장될 것으로 보인다.[사진제공=징지르바오]

그가 옳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확인됐다. 그가 직원들과 함께 지극정상으로 기른 농산물들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인 인기 상품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는 곧 후속 사업에 돌입했다. 농장을 베이징대를 졸업한 양 사장이 운영한다는 의미를 가진 베이다양거로 명명한 후 농산물에 더해 무공해 육고기와 수산물까지 팔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전에는 아예 전국 규모의 오프라인 매장 체인과 함께 온라인 쇼핑몰까지 개통하는 기염을 토했다.

현재 베이다양거는 상하이(上海)시를 비롯한 전국 각급 도시에 200여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도 최근에는 유명세를 타면서 완전 승승장구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매출액이 10억 위안(元. 1860억 원)을 넘어선 것은 분명 괜한 게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가 회사를 수년 내에 상하이나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증시에 상장시킬 준비를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보인다. 계획대로 상장될 경우 최소 수십억 위안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외견적으로는 화려한 외교관이 길을 스스로 포기했으나 그는 세속적으로 볼 때 분명 성공했다. 아니 더 좋게 말하면 당장 눈앞의 영예를 포기한 덕에 부까지 동시에 거머쥐는 엄청난 성공 스토리를 썼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모두가 한번 결심할 경우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집념, 좌고우면하지 않는 돌파력의 덕분이 아닌가 보인다.

여기에 세속의 성공 잣대를 우습게 아는 발상의 전환, 부모에 맹목적으로 순응하지 않는 반골 기질까지 더할 경우 그의 성공은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듯하다. 베이다양거의 성공 스토리를 잘 아는 수많은 중국의 MZ 세대들이 그가 진정한 중국의 파워 엘리트라고 열광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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