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인...모나리자 보다 여성성 훨씬 뛰어나게 묘사
공원길...천지인(天地人)의 조화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무제(5호 2005년)
무제(5호 2005년)

▲ 무제(5호 2005년)

“자기의 고유하고 훌륭한 미술형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구태여 남의 것을 본따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선화를 업수히 여기고 서양화만 내세우려는 것은 민족허무주의이며 사대주의적 경향입니다. 지금 서방제국주의 나라들과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그림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른바 추상화가 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사상조류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밀려들어오지 못하도록 강하게 투쟁해야 하겠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말이다.

북한의 지도자가 왜 이렇게 경직되고 편협한 사고를 했냐고 그를 나무랄 건 못된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공통된 시각이자 예술인식론으로 자리잡고 있던 터였다.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였던 후르시초프도 예술에 있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배하면 반체제 인사가 되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와 추상주의는 대립이 될 수 밖에 없는 숙명적 관계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북한에서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도 무슨 그림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추상화’라는 한정적 표현 문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최고 국보급 화가로 칭송되는 정영만의 그림을 보면 수묵의 명암표현만으로 그려진 수많은 추상적이고 표현주의적인 산수화를 보게 된다. 그가 그린 그림은 표현 대상이 나무인지 산인지 구름인지를 누구나 알 수 있다. 다만 함축과 생략 기법에 의하여 대상을 고도로 단순화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표현기법의 그림은 넓은 의미의 추상화(반추상화)로 간주된다.

디자인이라고 표방하지 않고 굳이 그림이라고 주장하면서 표현할 대상과 사물을 지나치게 생략하여 도무지 알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은 예술을 사람의 정서 함양과 일상적 심미의식의 고양을 위해 복무토록 하는 실용주의적이고 도구주의 지향의 사회주의 예술론의 관점과는 물과 기름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형상을 완전히 해체하고 소멸시켜 실체를 분간할 수 없게 표현하는 색채 미학적인 효과만을 노리거나 심미적 자기만족감만 꾀하는 완전 추상은 꼭 사회주의자들만이 아닌 다른 이들도 이를 그림이라는 견지에서 내켜하지 않고 디자인 수준으로 이해하며 현대미술에 대한 견해와 시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이 그림은 4년간 이집트에 파견생활한 리근택이 그린 가족 소장의 미발표 유고작품으로 북한에서 발견된 최초의 유화 추상화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한쪽 눈은 초점이 있고 다른 눈은 초점이 없다. 유추해보건대 초점이 있는 눈은 이지적인 지성의 눈이고 초점 없는 눈은 심미적인 감성의 눈으로 파악된다.

지성과 감성이 균형잡힌 인격이야말로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고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인간성의 표본이다. 상단의 인간의 뇌 구조를 세 갈래로 나눈 것은 더 의미심장하다. 좌측의 뇌구조는 조각조각 파편화된 여러갈래의 분석지가 보이고 우측의 두개로 구분된 뇌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눠진 균형지를 표상하며 가운데 단일의 중심뇌는 좌우를 통합하고 아우른 종합지 형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조형성이 우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북한에서는 참으로 보기 힘든 희소성 있는 걸작품 중의 백미이다. 마치 전통기법을 거부하고 강렬한 색의 표현을 주도했던 입체파(큐비즘 cubism)와 야수파(fauvism)의 사조를 섞어놓은 듯 강렬한 색채와 형태 파괴를 통해 상당한 전위성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마치 아트락 앨범의 표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집트 여인(15호 2005년 11월)
이집트 여인(15호 2005년 11월)

▲이집트 여인(15호 2005년 11월)

이 여인을 보면서 모나리자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름도 모르는 이탈리아 여인인 모나리자의 초상화는 프랑스 땅에서의 문화마케팅에 힘 입어 남의 나라 루브르 박물관의 대표 작품으로 자리잡고 프랑스에 년간 300억불 추산의 경제 유발 효과를 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르네상스의 3대 천재, 다빈치의 작품을 회수하려는 본국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이 작품이 반사적으로 자연스레 부각되고 프랑스가 예기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전무후무한 어부지리의 대박 효과를 본 것이다. 물론 미인이라고 할 수 없는 눈썹 없는 모나리자의 ‘여유 있는 미소’가 실제 그 대박의 실체적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만리장성이 중국에 년간 1,000억불의 경제적 가치 창출 효과를 일으킨다는 통계에 비하면 르네상스 시기의 작은 그림이 고대 인류의 최고 장대한 문화유산의 1/3에 육박하는 가치를 지닌 국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모나리자에 대해 그냥 남의 나라에 오래 전 팔려 갔거니 체념하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면, 모나리자는 다빈치의 그림 중 그런대로 볼만한 그림으로만 남았을 뿐 세계를 대표하는 미술품이라는 어마어마한 문화적 스프링의 반동력을 지닌 괴물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감히 만리장성과 견주거나 하는 그런 행태는 있을 수 없는 오만불손이나 시대착오적 엽기가 되었을 것이다.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기껏해야 평생 20여점을 그린 화가이다. 전업 화가라고 하기에는 작품 수가 너무 적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적인 소질은 원래 직업인 요리사에서부터 과학자, 수학자,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십수가지로 다양해서 화가로서의 활동은 어찌 보면 하나의 취미에 불과했을 정도이다. 그런 모나리자에 대해 실제 누구였는지를 추정하는 주장이 2015년에서야 비로소 제기되었다.

부유한 비단 상인이었던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의 부인인 리자 게라르디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고 그녀 남편의 부탁을 받은 다빈치가 1503년 모나리자 그림을 완성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서비홍, 제백석, 치바이스 등 자국의 근대 화가를 중심으로 자국의 문화를 세계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자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자국 화가 띄우기를 국가의 전략적 차원에서 수십년간 단계적으로 전개하였다. 오랜 비전 속에서 공을 들여온 결과 이제는 자국의 대표 근대 화가들의 그림 가치가 서양 미술사의 중심에 등장하는 어지간한 화가의 그림 가치를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문화의 가치가 꽃피우는 것은 자국에서 먼저 자국 작가의 작품을 보배처럼 아끼고 가꾸고 띄우는 과정이 없다면 타국에서 먼저 알아줄 리 만무하다. 북한의 인민화가 리근택이 이집트를 비롯하여 아랍권에 다년간 머물면서 화가 활동을 벌이며 문화 외교사절 노릇도 하고 외화도 벌어들이면서 짬을 내어 이국에 대한 호기심 속에 이집트 귀부인을 모델로 하여 초상화를 그려 자국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리근택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그렸다면 추측컨대 외국에 나간 참에 이 여인에게 인건비에 해당하는 약간의 달러를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어 자기 수중에는 달러만 남고 그림은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여인이 미래의 통일 한국의 모나리자로 각광을 받을 날이 오게 된다면, 그 의미가 각별하고 감회가 깊을 것이다. 모나리자 보다는 여성성이 훨씬 뛰어나게 묘사되었을 뿐만아니라, 구도의 다양성과 과감성, 그리고 색채의 화려함과 강렬함 등 오랜 시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여러모로 손색이 없고 이색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명작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붉은색 계통의 실크의 실감 표현이나 표범 무늬의 가죽 묘사는 그림의 퀼리티(quality)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고, 여인의 표정이나 피부톤 등으로 봐서 귀족의 부인임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이국적인 이 그림의 깊이 있는 묘사에서 리근택의 다양한 그림 여정의 단면을 보는 것도 하나의 감상 포인트인 것이다.

공원길(20호 2007년)
공원길(20호 2007년)

▲공원길(20호 2007년)

가을 단풍의 절경을 일컬어 ‘신이 그린 그림’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가을은 자연이 겨울철 휴지기 직전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발산하여 색채의 진액을 입혀서 경이로운 미학을 완성시키는 계절이다. 마치 불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 기이한 빛깔들의 불꽃을 일으키며 작렬하고 사그러들 듯이 말이다.

이 그림은 천지인(天地人)의 조화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다. 빛을 소금처럼 흩뿌려주어 대지에 현란한 명암의 굴곡을 탄생시키는 하늘, 그 빛을 자양분으로 빨아들여 머금고 대지의 피부를 시시각각 변색시키는 생명적 감성 능력을 발휘하는 땅, 마치 곧 지나갈 시절처럼 시야에서 사라지기 직전의 한쌍의 커플은 다정히 손을 맞잡고 그 단풍잎이 소복히 쌓인 공원길을 걸어가며 원초적인 자연과의 조화미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봄여름철의 꽃구경을 대신 하기라도 하듯 세상의 모든 나뭇잎을 마치 현란한 꽃잎으로 바꿔놓은 듯한 신의 예정조화의 세계는 근경의 나무와 원경의 숲이 좌우측 대칭 구도를 형성하고 대각선 중앙의 소실점에 위치한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음양의 입맞춤을 확인시켜 주려는 듯하다. 모네가 환생하여 북한에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환상에 빠진다.

이 그림을 모네 작품이라고 소개하여 전시하더라도 ‘아! 과연’ 하고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쌍의 남녀가 지나간 공원길은 신이 뿌려놓은 빛의 알갱이들이 수백만 화소의 미려(美麗)한 영상의 점들처럼 알알이 땅 위에 박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시절이지만,

더운 색조의 따스한 온기가 화면 전반을 휘감아 도는 황홀한 분위기가 펼쳐져 있다. 남녀간의 다정한 정감이 대지의 기운을 훈훈하게 덥혀주고 있는 것 같다. 남녀(암수)간의 온기와 화합은 조물주의 섭리로 모든 인류와 생명의 존재와 유지를 가능케 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남녀간의 성대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증오심과 적대감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느낌이다. 남녀간의 뜨거운 애정의 불길이 화재(火災)로 빗나가지 않고 온풍기 역할을 하여 침체된 우리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그런데 거꾸로 그간 여성부 등에서 추구하는 여성 이기주의 혹은 골수 페미니즘은 남녀간 대립을 조장하여 우리 공동체의 화합을 저해하고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와 이에 대한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위와 같이 여인들이 사회를 따뜻하게 살피고 남자들의 성정을 온화하게 만들려면 불의 3대 요소를 잘 간직하고 생활 속에서 구현하면 이 사회에 온기가 돌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불은 불씨에 의존(의존성)하여 점화한 후에 불꽃을 만들어 확산하게 되고(인화성) 불에 탈 것의 원인이 소진되면 곧 꺼지게(소멸성) 된다.

근래에는 여자의 독립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남자에게 의존적인 여성의 모습을 진부한 모습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자가 울타리가 되어주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생길수록 결혼에 골인하고 앞당겨질 확률이 높다. 그리고 여자가 결혼 후 집안에 아이도 낳아주고 그 집안을 불같이 일으켜 번성케 한다는 특성의 인화성을 갖는 점과 좋지 않은 생활 관습과 경험들을 빨리 지워 사라지게 하고 가족과 가정 살림을 돌보는데 전력을 다하며 살아온 우리네 여인들의 건강한 정신성의 상징이 불의 3대 요소이다. 그런 여인의 특성을 스스로 돌이켜보고 남자들의 공격성을 누그려뜨려 화목한 세상을 이루는 계기를 되살리길 희망한다.

리근택 화가 
리근택 화가 

◇리근택(1949.9.27.~ ?)은 누구인가?

조선역대미술가편람에서 리근책에 관한 자료를 발췌 인용하였다.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근화동에서 출생하여 문학, 음악, 미술 등 여러분야에 소질이 있던 아버지와 유화를 전공했던 외삼촌 홍신길의 영향을 받아 인민학교 때부터 미술에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중등교육을 마치고 1966년부터 도일보사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도미술창작사 미술가 서금석, 삼업미술제작소 박복진(녀류화가)에게서 개별 수업을 받았다. 1970년 이후 조선혁명박물관 등에서 반경화, 대형전경화 창작사업에 참가하면서 번문미술가 대력에 들어서게 되었다. 19080년 통신으로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90년 부터 4년간 에짚트에서 대형전경화 창작에 참가하면서 박물관에 전시할 유화 <크레오파트라 초상>, <맨토호프왕의 에짚트 재통일> 등을 창작하였다. 그후 <사자바위풍경(74년)>, <엄마를 그리며(75년)>, 조선화<농민영웅(76년)>, <무포의 낚시터(77년)>, 수예원화<삼지연의 달밤(79년 미술전람회 1등상), 벽화<금강산만물상(76년)>, <삼일포의 해당화(76년)>, <전투원.......(92년 국가미술전람회 1등상)>, 등 작품을 창작 발표하였다.

유화 <엄마를 기다리며>는 평양미술대학 졸업작품이다.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의 비참한 생활을 깊은 동정을 가지고 형상하고 있다. 달빛이 흘러드는 깊은 밤 헛간에서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망을 가는 소녀의 눈가에는 힘겨워선가 방울 방울 이슬이 흘러내린다. 망평에 큰 대야에 담근 통은 이밤을 지새여도 다 갈 수 없을 만치 많고 많다.

소녀의 옆에는 지쳐쓰러진 동생이 자고 있다. 화가는 이로한 생활형상을 집중시켜 주제내용을 풍부하게 밝혀냄으로써 고아의 힘든 삶을 형상화 하고 있다. 리근택은 창작에서 유화의 재료적 특성을 파악하고, 색채 형상의 깊이를 보장하기 위하여 힘쓰고 있다. 리근택은 대표작 중에는 풍경화가 많다. 그의 풍경화들은 구수한 것이 특징적이다.”

(약력)

1949년 9월 27일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근화동에서 출생

1966년 도일보사 인쇄공. 1980년 평양미술대학 졸업

1980년 이후 백호창작사 창작가

1990년 4년간 이짚트에서 대형전경화 창작

1994년 공훈예술가 칭호 수여받음.

2002년 인민예술가 칭호 수여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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