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하고 메마른 시대에 주목받기 시작한 한국의 전통 성악 ‘가곡·가사·시조’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거리를 거닐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모두 분주하기만 하다. 생존을 위한 모습이겠지만,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삭막하고 각박하기만 하다. 성격도 급해졌고, 속전속결만을 추구한다. 

  사랑도 그러해졌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고 지우고 고치는데 한 달을 보내 놓고, 마음을 졸이며 답장을 기다리는데 또 한 달을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몇 분 만에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 몇 줄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때론 이웃 사이에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편하려고 하는 운전인데 운전대만 잡으면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가 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순화가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치유의 음악, 느림의 음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한국의 전통 성악이 있다. 바로 한국의 전통 성악 가곡, 가사, 시조이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지금은 생활 속의 음악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판소리, 남도민요, 경기민요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러나 전통 성악인 가곡, 가사, 시조, 시창이 서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구별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가곡, 가사, 시조, 시창을 통틀어 ‘정가’라고들 한다. 정가는 "아정하고, 정대한 노래"라는 뜻이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크게 궁중음악과 정악과 민속악으로 나누어진다. 지배계층을 향유의 대상으로 하던 음악을 정악이라 하였고, 기층민을 향유의 대상으로 하던 음악을 민속악이라고 한다. 정가는 정악 중 성악곡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정가는 도자기에 비유하고, 민속악 성악곡인 판소리는 질박한 뚝배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윽하고 깊은 비췻빛 고려청자에 비유되는 가곡

국가무형문화재 이동규 가곡예능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이동규 가곡예능보유자

가곡(歌曲)은 시조와 같이 시조시(時調詩)를 노랫말로 하는 것은 같은데,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조는 일반인도 즐기던 소리임에 반하여, 가곡은 선비들이 풍류방에 모여 즐기던 음악이다. 가곡은 소규모 관현악 반주, 즉 가야금, 거문고, 대금, 장구, 해금, 세피리의 관현악 반주로 노래한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가곡은 남창 26곡, 여창 15곡 등 모두 41곡이다. 가곡은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가곡은 그윽하고 깊은 비췻빛 고려청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현재 전승되는 가곡은 모두 41곡이다. 가곡 여창가곡 ‘일각이’ 가사를 소개한다.

(초장) 일각(一刻)이 삼추(三秋)라 하니 / (2장)  열흘이면 몇 삼추요 / (3장)  제 마음 즐겁거니 남의 시름 생각하랴 (4장)  천리(千里)에  (5장)  임 이별하고 잠 못 일워 하노라.

(한순간이 세 번의 가을을 보내는 것 같으니 / 열흘이면 얼마 긴 시간인가 / 자신의 마음이 즐거우니 남의 힘겨운 시간 생각이나 하겠냐 / 임과 이별하고 잠 못 이뤄 하노라)

담백하고 순백한 조선백자에 비유되는 가사(歌詞)

이양교(1928-2019) 국가무형문화재 가사 예능보유자(중앙)가 제자들과 가사를 노래하고 있다.
이양교(1928-2019) 국가무형문화재 가사 예능보유자(중앙)가 제자들과 가사를 노래하고 있다.

가사(歌詞)는 시조와 가곡의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사는 가곡과 같은 발성법을 사용하면서 서도 민요의 화려하고 섬세한 시김새 표현이 많이 들어 있다. 가사의 노랫말에 사용되는 시는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노랫말에 붙여지는 장단과 가락도 훨씬 자유롭고 다양하다. 가사는 담백하고 순백한 조선백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사는 무반주로 독창하는 것이 원칙이나, 때에 따라 소규모 관현악단이 반주하기도 한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종목 지정되었다. 가사는 흔히 조선백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가사는 모두 12가사인데 <백구사>, <죽지사>, <춘면곡>, <어부사>, <길군악>, <상사별곡>, <권주가>, <수양산가>, <처사가>, <양양가>, <매화타령>, <황계사>이다. 가사 <백구사>의 첫 소절을 소개한다.

백구야 펄펄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 성상(聖上)이 버리시니 너를 좆아 예 왔노라 /

오류춘광(五柳春光) 경(景) 좋은데 백마금편화류(白馬金鞭花遊) 가자

(흰 갈매기야 펄펄 날지마라. 너 잡은 내가 아니로다 / 임금께서 나를 버리시니 너를 쫓아 여기 왔노라 / 버드나무 봄빛이 좋으니 잘 차려입고 꽃놀이 가자)

마음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의 노래, 시조

시조(時調)는 흔히들 시조창이라고도 하는데 가곡의 대중화된 형태로 가곡을 단순화해 시조시를 노랫말로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며 즐길 수 있는 성악곡을 말한다. 형식은 초장, 중장, 종장 이렇게 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3음계로 되어 있다. 시조에는 평시조, 지름시조, 사설시조 등이 있으며 네댓 개의 가락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가사와 가곡이 예술성이 돋보이는 전문가들의 노래라면, 시조는 일반인들의 생활 음악이자 실용 음악으로서 악기 반주는 없이 장구 장단 혹은 무릎장단으로 박자를 맞춘다. 조선조 학자 서경덕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한다. 

마음이 어린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 만중운산에 어내 님 오리마는 /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겹겹이 구름으로 쌓인 산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님인가 하노라)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한국의 전통 성악 ‘가곡·가사·시조’

시창(詩唱)은 칠언율시(七言律詩) 등 한시(漢詩)에 음률을 붙여서 구성지게 읊는 소리를 시창이라고 한다. 송서(誦書)와는 구분이 된다. 서도(西道)의 율창(律唱)과 비슷하다. 반주는 흔히 대금 반주로 한다. 시창으로 불리는 한시로 ‘경포대’(鏡浦臺), ‘만경대’(萬景臺), ‘촉석루’(矗石樓), ‘만유무민’(挽柳武愍), ‘영풍’(詠風), ‘관산융마’(關山戎馬) 등이 있다. 시창의 <경포대>의 첫 소절 가사를 소개한다.

십이난간벽옥대(十二欄干碧玉臺) / 대영춘색경중개(大瀛春色鏡中開)

( 푸른 빛이 나는 고운 옥으로 만든 벽옥대 열두 개의 난간에

봄을 맞는 대영의 봄빛이 거울 속에 비치는구나)

비록 4차산업 시대로 접어든 첨단과학 시대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이 필요한 시대이다. 한국의 대표적 시인 고은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시가 우리에게 주는 커다란 울림처럼,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하고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데 한국의 전통 성악 가곡, 가사, 시조는 최적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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