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정치가 사라진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상황은 우리들의 지난 역사인 군사독재 시절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일 것 같다. 그 당시의 어른들은 정부나 권력자를 비판하기만 하면 얼른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그것도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한 얼굴로 말이다.

뜬금없이 왜 80년대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정치의 문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회상이 필요하다. 1980년대 무시무시한 군사정권의 억압 앞에 우리사회 많은 어른들은 무서워했고, 늘 주변을 살피고 살아야만 했다. 즉 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많은 언론들은 지금의 우리사회의 상황을 보면서 정치가 실종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국회가 몇 달 동안 단 한건의 법안도 통과 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질책을 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하여 불신과 경멸의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정리하면 7․80년대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시절은 정치가 말살되었던 시기라고 한다면 지금은 정치가 실종되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 말살과 실종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말살은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억압적으로 강탈해 간 것이고, 실종은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 무엇인가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진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한국의 정치는 말살 된 것일까? 아니면 실종된 것일까? 누구에게는 말살로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실종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또 다른 누구는 말살이든 실종이든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말살이냐 실종이냐의 논쟁 속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정치의 말살로 보는 입장에는 정부 여당의 일방적 행위, 자체가 정치를 말살로 몰아간다고 보는 것이고, 상실로 보는 입장에서는 야당의 행위가 국민의 정서를 읽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와중을 틈타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정치에 대한 무한한 불신이다.

그럼 여기서 정치는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치학 교과서에는 미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이스튼(David Easton)의 말을 빌려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한다. 즉 정치는 배분의 문제이고 이 배분은 자기 이익에 따라 갈등을 동반하는 문제로 정리될 수 있다. 즉 정치행위의 본질은 갈등을 조직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는 갈등과 쟁투의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고, 이런 이유로 정당들은 갈등에 개입하고, 갈등을 조직화하려고 한다. 이런 갈등이 더욱 커지고 발전하면 균열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이러한 균열을 지역균열이라는 모습으로 지난 수 십 년 지켜보고 있으며, 지금은 남북문제라는 이중적 균열구조가 더해지면서 대결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런 균열구조는 정치에 대한 환멸, 정치 얘기는 듣기도 싫다는 분위기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를 정말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정치를 멀리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접을 때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떻게 사회적 재화의 배분이 일어나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치는 철저하게 대립과 쟁투 그리고 갈등의 조직화를 통하여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모두가 눈 감고 있는 이 순간에 권력은 정치에 관심 없는 국민들의 상황을 이용하여 안개처럼 스며들어 우리들의 생활을 바꾸고 우리들의 권리를 제약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주권은 이러는 사이 어느 새 글자로만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정용해님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과 정책실장으로 활동하다 해직된 공무원노동자로 현재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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