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도 없고, 경제성 부풀려도 ‘개발’만 밝히는 신문

지난달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오색리에서 끝청봉에 이르는 3.5km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 산림자원보호구역,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등 5중의 공식 자연 보호 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런 자연환경에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게 될 경우, 전국 지자체의 국립공원 난개발이 예상되는 만큼 우리 환경에 매우 중차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8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6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정부는 “컨설팅 제공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설악산 케이블카 착공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10월 30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평창을 방문, “설악산에 케이블카 사업도 조기에 추진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후 사업은 탄력을 받았다. 강원도와 양양군, 지역 국회의원, 전경련을 필두로 한 경제단체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 붙였다.

이번 사업 승인이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 등 7개 부대조건 이행을 조건으로 했다지만 이미 2012년과 2013년에 두 번이나 사업이 부결되었던 당시와 별 다른 변화가 없음을 감안할 때, 환경부가 대통령 한 마디에 ‘죽은 케이블카’를 되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연공원케이블카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줄곧 생태계 파괴 위험성을 지적하며 개발 이익과 설악산을 맞바꾸려는 사업의 철회를 촉구해왔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국책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하 환경연)의 보고서가 사업성을 과장하기 위해 수치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사업 심의 주체인 환경부는 작년부터 사업을 적극 지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정부와 지자체, 심지어 국책기관까지 합심해 사업성도 확실치 않은 개발 사업을 졸속 강행한 셈이다.

이와 관련 민언련은 이 사안을 5개 중앙 일간지가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대부분의 신문이 사업의 문제점과 여러 의혹에 침묵하며 정부의 사업 옹호 입장을 받아쓰기 바빴다.
 
사업 옹호 입장 받아쓰기 골몰한 조중동

8월 1일부터 9월 8일까지 5개 중앙 일간지의 총 보도량은 59건에 불과하다. 북한의 지뢰도발과 이후의 남북 고위급 회담이 모든 뉴스를 잠식할 만한 이슈였지만,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개발 사업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감안했을 때 중앙 일간지의 보도량은 부족했다.

그나마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20건으로 많았지만, 조중동은 보도량이 7건, 8건, 4건으로 매우 적었다. 적은 보도량 뿐 아니라 보도의 대부분을 사업 옹호 입장 받아쓰기에 할애했다는 점도 문제이다.

오색케이블카 사업과 관련된 의혹과 문제점은 △국책기관인 환경연의 보고서 수치 조작 의혹 △대통령 지시 이후 정부 부처의 사전 지원 등 불법적 승인 과정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가 대표인 설악케이블카(주)와의 관련설 등이다. 조중동은 이런 사안에 대해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특히 중앙일보는 4건 모두를 사업 옹호 입장 받아쓰기에 할애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보고서 조작 의혹과 여러 문제제기로 모든 보도를 채웠다.

보고서 조작 의혹 보도한 한겨레
 

한겨레는 전체 보도량 20건 중 35%인 7건을 환경연과 양양군의 환경부 제출 보고서 조작 의혹에 할애했다. 환경부에 제출하는 보고서는 28일 있었던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오색케이블카 사업 심의에 결정적인 참고자료였기 때문에 보고서 조작 의혹은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한겨레의 <양양군, 설악산 케이블카 보고서 입맛대로 짜깁기>(8/5, 2면, 김정수 기자)는 보고서 조작 의혹에 관한 첫 보도였다. 보도는 환경연이 양양군의 요청으로 설악산 케이블카 경제성 검증 용역을 수행한 후 18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양양군이 환경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지역경제 파급 효과 △사회적 편익 △사회적 비용 등의 항목이 덧붙어 54쪽으로 부풀려져 있다”고 폭로했다. 양양군이 환경연 보고서에는 있지도 않은 내용을 추가해 사업성을 과장한 것이다.

또한 <“설악산케이블카 편익 부풀려 적자를 흑자로”>(8/21, 12면, 김정수 기자)에 따르면 양양군의 조작 이전에 이미 환경연의 보고서가 경제성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환경연의 설악산 케이블카 경제성 분석 보고서를 검토한 후 “분석 과정에 설악산의 월별 탐방객 비율과 케이블카 최대 탑승인원, 케이블카 운행 가능 일수 등을 고려하지 않아 개통 이후 30년간 탑승객의 59%인 909만명가량 과다 추정돼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1221억원의 흑자가 나리란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추계와 달리 실제론 229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것이 심 의원의 분석 결과이다. 환경연과 양양군이 사업 승인을 위해 수치를 자의적으로 조작한 보고서를 냈고 환경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 결국 부당한 절차를 거쳐 사업이 승인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승인에는 환경연의 보고서 수치 조작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무분별한 개발 논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향신문은 이를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경향신문 <칼럼/‘설악산 케이블카’를 둘러싼 거짓말>(8/25)은 황인철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의 인터뷰로 “난개발과 환경파괴에 ‘민주화’라는 말을 갖다붙이는 발상이 놀랍다”, “‘개발’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과 왜곡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는 세상”이라며 “산을 민주화해야 한다”는 황당한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상돈칼럼/국립공원은 보전이 우선이다>(8/26)도 “4대강 사업으로 반만년동안 유구하게 흘러온 우리의 하천을 파괴한 이명박 정권”이 설악산을 케이블카 사업 시범지구로 지정했음을 지적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전 정권에서 추진한 졸속정책으로 보고 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했어야만 한다”고 성토했다.

<사설/환경 파괴 컨설팅하는 환경부>(9/3)는 “환경부?국토교통부?문화부?기획재정부?행정자치부 등 설악산 케이블카 관련 정부 부처가 지난해 9월부터 사업자인 강원도 양양군과 TF를 구성해 긴밀히 협의했다”며 “사업을 엄정하게 심의해야 할 기관이 사업자와 결탁한 것”이라고 정부를 질타했다. “보전해야 할 국립공원에 위락시설을 허가하면서 ‘친환경 케이블카’라고 기만하는 환경부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들러리를 선 이후 ‘영혼 없는 부처’가 되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사업 옹호 입장 받아쓰기로 대통령 의지에 힘 실어주는 조중동

환경연의 보고서 조작 의혹에는 모르쇠로 일관한 조중동은 사업 옹호 입장 전달에 매진했다. 사업의 문제점에 있어서도 환경단체가 자연 파괴 가능성을 주장한다고 언급할 뿐 불법적 승인과정과 난개발 문제 등 다른 사안은 무시했다.

동아일보 <“국립공원 훼손” “지역성장 동력”>(8/4, 14면, 이정은 기자)는 사업에 대한 찬반논리를 균형있게 소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블카 사업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약 1520억 원”이라며 조작 의혹에 휩싸인 환경연 보고서의 수치를 그대로 인용했다. “등산을 못하는 장애인도 산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일명 ‘산의 민주화’ 논리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전달했다.

중앙일보 <설악 오색 케이블카 3수 만에 성공할까>(8/25, T21면, 박진호 기자)는 “환경 훼손 이유 2차례 부결, 보호구역 피해 노선 변경”을 소제목으로 달았다. 이는 보호종 서식지를 피해 노선을 설정했다는 강원도의 입장이다. 더불어 “강원도는 이번엔 통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이 조기 추진을 언급했다”며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특정 사업 추진을 지시한 일을 별 문제의식 없이 전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칼럼/한일 관광 ‘비교체험’>(8/6, 조재희 기자)의 경우 “설악산과 지리산의 산악 케이블카 같은 새로운 관광 인프라 건설은 반대에 부딪혀 수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박근혜 정권의 사업 추진 의지에 힘을 실었다.

정부는 작년부터 이미 올해 하반기 착공을 위한 관련 절차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미 두 번이나 부결된 케이블카 사업이 대통령의 지시 발언 직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데에는 정부 부처의 절대적 복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사설/국토관리 큰 오점 될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8/29)에서 이런 행태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케이블카 추진을 지시하면서 억지 주장들이 동원되기 시작”, “자연 보존 책임을 맡은 정책기구로서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처사”라며 정부를 질타한 바 있다. 반면 조중동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주의적 행태를 방관했다.

박근혜 대통령 조카가 주인인 (주)설악케이블카의 연관성에는 모두 침묵
 
오색 케이블카 사업 승인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라 지시한 배경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손자가 운영하는 (주)설악케이블카가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일각에서 불거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오색케이블카 사업 지시가 자기 일가의 사업을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모든 신문이 언급하지 않았다.

설악산 개발 제한 방침이 내려지기 직전인 1969년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사위인 한병기 ‘설악관광주식회사’ 회장에게 케이블카 사업 독점권을 줬고 현재 대를 이어 손자인 한태현이 (주)설악케이블카를 운영하고 있다.

박 대통령 일가는 1971년 첫 운행부터 44년간 독점적 케이블카 운영으로 연간 70여억 원을 벌어들이면서도 환경보전기금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관리자금 전액은 국가가 담당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색 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지시했으니 당연히 관련이 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는 중앙 일간지 모두 다루지 않았다. 다만 경향과 동아 그리고 한겨레가 각 1건의 보도에서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카의 운영주가 (주)설악케이블카임을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경향신문 <케이블카 설치 후 초록의 권금성은 ‘민둥 암벽’ 됐다>(8/1, 2면, 최승현 기자)는 권금성 케이블카로 인한 자연 훼손을 보도하면서 권금성 케이블카의 운영을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가 맡고 있다”고 전했다.

한겨레 역시 <야!대한민국/욕망의 3.5km>(8/20,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에서 (주)설악케이블카의 운영주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손자임을 한 문장 언급하는데 그쳤다.

동아일보 <횡설수설/박 대통령 일가와 설악산 케이블카>(8/15, 신연수 논설위원)는 (주)설악케이블카가 “한 해 50~70억 원의 수입을 올리지만 환경보전을 위한 기금을 낸 적이 없다”며 그나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더 이상의 문제제기는 없었다.

승인 과정에서 불법적 표결까지 동원된 오색 케이블카 사업
 
한겨레는 <설악산 케이블카 표결 때 무자격 정부위원 참여 드러나>(9/4, 8면, 김정수 기자)에서 28일 표결이 불법적으로 이뤄졌음을 단독으로 폭로했다.

사업 심의 주체인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환경부 등 9개 부처 고위공무원 10명, 국립공원관리공단 대표 1명, 민간위원 9명으로 구성되는데 ‘자연공원법’과 그 시행령은 민간위원은 모든 심의 안건에 참석할 수 있도록 했지만 9개 정부부처 위원은 심의 안건과 관련이 있을 때만 참석하게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오색 케이블카 사업 표결 당시 해당 안건과 관련이 없는 해양수산부 위원이 표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관계자 역시 “해수부 위원은 참여 자격이 없는 게 맞다”고 인정했다. 한겨레는 “설령 결격자인 위원들이 표결에서 빠져도 여전히 통과 됐을 가능성이 있더라도 법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에는 영향이 없다”는 김영희 변호사의 의견을 전하면서 표결의 불법성을 강조했다.

글 도움말 = 민언련(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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