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죽변 등대 입구에 도착하니 11시쯤 되었다. 7월 20일 토요일 날씨는 더웠지만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좋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등대 앞 그늘이 드리워진 쉼터에 모두 앉았다.

“등대는 왜 필요할까요?”

“어부들이 고기를 잘 잡도록…….”

“배를 보호하는 것.”

1910년 건립된 죽변 등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된 여러분들 실력 60점. 등대는 바다에 안개가 끼면 부~우 하고 무적(霧笛)1)을 울리거나 밤에 불빛을 반짝여서 배가 안전하게 항해 하도록 알려 주는 시설입니다. 등대 불빛은 20초에 한 번씩 반짝이는데 3~40킬로미터 거리에서도 볼 수 있어요.”

상승감과 미학적으로 뛰어난 죽변 등대. [사진=김재준 시인]
상승감과 미학적으로 뛰어난 죽변 등대. [사진=김재준 시인]

“죽변 등대는 프랑스인이 설계하였고 상승감과 미학적으로 뛰어난 건물로 일제강점기 때 지었습니다. 이곳은 지정학적, 전략적 요충지로 대략 울릉도128·포항124·영주120·강릉114킬로미터 거리입니다. 러일 전쟁 때 해상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과거에는 등대 안으로 들어가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통제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인생항로에 필요한 등대가 되시기 바랍니다. 제 이야기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박수 ~ ”

파도와 어우러진 갈매기가 장관인 죽변 앞바다. [사진=김재준 시인]
파도와 어우러진 갈매기가 장관인 죽변 앞바다. [사진=김재준 시인]

함께 치는 박수소리는 짧지만 등대사무소 이름 한 번 되게 길다.

“해양수산부 포항지방해운항만청 죽변항로표지관리소.”

죽변은 경상도 최북단 항구다.

대나무가 많아서 대죽(竹), 가장자리 변(邊)을 쓴다.

신라 때 왜구를 막기 위한 성(城)과 봉수대가 있었고, 용꼬리 지형이라 용추곶이라 불린다. 등대 일대는 1905년 무렵 러시아군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가 설치되었고 러시아·일본 군함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1930년대 기범병용선(機帆竝用船, 아이노코)의 발상지이며 정어리 집산지로 이름을 떨쳤다.

죽변등대는 1910년 건립된 울진 지역 최초의 등대로 6·25전쟁 때 폭격으로 부서진 것을 이듬해 고쳤다. 등대 인근 마을을 “후리깨”라 하는데 함경도 사람들이 피난 와서 살았다.

드라마 세트장에는 수리를 하는 건지 어수선하고 대나무 숲길에 만들어진 우물이 개구쟁이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계단 밟고 올라오는 일행들에게 시원한 물 한 두레박씩 선물했다.

“우와~ 피해요. 물이다.”

한 바탕 소동으로 땀을 닦고 대나무, 곰솔 길을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다. 곰솔은 해송(海松)이라 하는데 나무껍데기가 검다고 검솔, 곰솔이 되었다.

모처럼 온 바다, 낭만이 있고 가슴은 물결처럼 울렁인다. 12시쯤 바다를 바라보며 파닥파닥한 생선회 맛에 모두 감탄 한다.

오후 1시 넘어 항구에서 배를 탔다.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바다로 나가는데 뱃머리에 나란히 앉아 처음 타는 배라며 신기해한다.

바람도 알맞게 불어 항해하기 좋고 지나가는 배는 갈매기 가득 싣고 돌아오는데 바다는 온통 갈매기 천국이다. 만선(滿船)이겠지. 아득해지는 뭍을 바라보며 저마다 사진 찍기에 바쁘다.

바다와 육지 사이가 멀어질수록 파도는 거세고 뱃머리 요동이 심해진다. 우리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하얀 등대가 잘 보여서 손으로 가리켰다.

“오른쪽 등대를 봐요.”

의외로 등대를 잘 모르는 우리 학생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까?

이런 주문을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지만, 휴일 없이 학교에 가둬놓은 교육정책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현장 교육이 실종된 서글픈 현실을 어찌 한탄하지 않으랴? 고액 과외로 학원가를 배불리고, 오로지 입시를 위한 수능기계로 떨어진 학생들. 항구에 묶어두려고 배를 만든 것이 아니므로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천연기념물인 500년 된 죽변 향나무는 공사 중이라 차창으로 보면서 지나간다. 해풍을 맞아서인지 붉은 빛을 띠고 향이 진해서 귀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밑동에서 브이(v)자로 갈라져 키가 10미터 넘는다. 성황당이 옆에 있어 신목(神木)으로 보호 받고, 울릉도에서 파도에 떠내려 왔다고 한다.

두천리 보부상 십이령 길

오후 3시 30분 십이령길 입구에 도착했다. 돌다리를 건너면 여기서부터 걷는 산길. 안내부스에서 숲 해설사 한 분이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예, 25명입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성황당까지…….”

“잘 다녀오세요.”

내성행상불망비, 두개의 철비가 있다. [사진=김재준 시인]
내성행상불망비, 두개의 철비가 있다. [사진=김재준 시인]

울진 숲길로 알려진 십이령길은 해설사와 동행해야 갈 수 있고, 하루 탐방인원을 제한한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보부상(褓負商)2)들의 옛길, 울진군 북면 두천리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 앞에는 햇볕이 뜨거워서 개울 쪽에 잠시 섰다.

“지금부터 십이령길 입니다. 여러분들 앞에 있는 저 철비(鐵碑)는 보부상들을 도와준 사람에게 보답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옛날 이 근처에 철이 많이 생산되어 돌 대신 철비를 만들었고, 십이령은 죽변, 북면, 울진 세 곳에서 출발한 보부상들이 이곳에서 집결, 내성장을 보러 다니던 열두 고개를 일컫는 것입니다. 주로 소금, 어물, 해산물을 지고 가서 돌아올 때는 담배, 곡식, 약재들과 물물교환 해서 돌아오곤 했는데, 보통 사나흘에서 십여 일 이상 걸렸죠. 오늘 여러분들께서는 단순히 숲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100여 년 전 보부상이 되어 산길을 걷는 것입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출발하겠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은 뜨거운 햇살을 압도하는데 입구에는 드문드문 바윗돌과 참나무 잎이 만발하고 마을의 축사, 창고며 마늘밭엔 일손이 한적하다.

“말래” 이는 두천(斗川)이다.

흐르는 물이 얼마나 아름답고 맑았으면 말래라고 했을까? 흘러가는 물길, 세월이 유수라 해도 물길처럼 빠르지 못할 것이다. 물길은 어느덧 고갯마루까지 일행들을 흘려보냈다.

두천리 계곡, 계곡 다리를 건너 십이령 오르는 일행들. [사진=김재준 시인]
두천리 계곡, 계곡 다리를 건너 십이령 오르는 일행들. [사진=김재준 시인]
두천리 계곡, 계곡 다리를 건너 십이령 오르는 일행들. [사진=김재준 시인]
두천리 계곡, 계곡 다리를 건너 십이령 오르는 일행들. [사진=김재준 시인]

오솔길 조금 오르니 금빛을 띠는 장대한 소나무, 천상으로 올라가는 듯 이곳은 최고의 소나무 숲이다. 늘씬한 나무들, 하늘 찌르는 씩씩한 기상, 옥에 티끌이라 했던가?

오래전 그을린 나무가 서 있다. 화전민들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금강송, 소나무 냄새를 맡지 않고, 솔바람을 느끼지 않고서 숲을 노래하지 말라, 이 숲에서 욕심도 없는 오로지 물 한 병……. 기린초, 익모초, 각시붓꽃. 산길을 한참 오르니 폭 50센티도 채 안 되는 옛길이다.

날씨는 덥고 길옆으로 생강·개옻·쪽동백·신갈나무, 사초·관중·느삼·광대싸리 꽃들이 반겨준다. 30분가량 걸어왔더니 붉은색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소나무는 200년 이상 되면 심재가 누렇게 변하면서 수분이 줄어 가볍고 단단하여 나이테가 치밀해 진다.

이처럼 심재가 단단해서 금강소나무, 금강산에 많이 자란다고 해서 금강소나무 또는 강송이라 부른다. 300년 정도 되면 거북등처럼 육각형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위로 크던 것이 제대로 굵어지기 시작한다.

땀을 닦고 한숨 돌리니 솔 내음이다. 나는 짙은 향기보다 밋밋한 흙냄새, 솔냄새가 좋다. 소나무는 솔, 수리, 으뜸이라는 데서 유래하고 적송, 황장목, 금강송, 홍송, 해송, 곰솔, 춘양목, 강송, 미인송, 반송, 백송, 용송, 황금송 등 많기도 하다.

지역특성에 따라서 동북형, 금강형, 중남부형, 안강형 소나무로 부르기도 한다.

소나무는 백가지 나무의 대표로 한국인들의 혼이 깃든 나무다. 금줄에 솔을 달아 태어난 것을 알려 솔의 신성을 깃들게 하였다. 솔가지로 땔감을 했고 솔숲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면서 사철 푸른 절개를 본받아 살다가 소나무 산에 묻히는 것이다.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신목이었으며 절개, 장수를 상징하고 잎이나 열매는 성인병예방으로 많이 썼다.

색깔이 곱고 결이 단단해 목공예품의 으뜸이며 독특한 향기로 벌레가 사라지고 항암, 해소, 천식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잡귀를 물리치고 액운을 막으며 행운목으로도 알려져 왔다.

이 일대 금강소나무 숲은 우리 소나무의 원형으로 유전적으로 우량한 수형목들이 자라고 있다.

잎에는 윤기가 많고 윗부분은 껍질이 붉은 색이며 아래쪽은 회갈색에 거북등처럼 육각형으로 갈라진 것이 특징이다.

특히 동해안 해송 꽃가루가 봄바람에 날려 내륙의 소나무(陸松)와 섞여(交雜) 울진 금강소나무가 된다. 잡종이 우수한 성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소나무에서 나는 복령(茯苓)은 희귀 약재다. 소나무를 벤 뒤 3∼10년이 되면 뿌리에 기생하는 균으로 신선한 냄새가 난다.

북한에서는 솔뿌리혹버섯이라고 하며 갓을 만들지 않는 20센티미터 크기 담홍색 덩어리다.

뿌리가 복령을 뚫고 있는 것을 복신(茯神), 껍질은 복령피, 색깔에 따라 백복령, 적복령이라 하여 모두 한약으로 쓴다. 기관지염·만성위장염·신장염·방광염·요도염 치료제로 쓰고 초조불안·식은땀을 흘릴 때 안정제로 좋다.

산행 중 노랫소리가 나오는데 휴대폰을 끄라고 일렀다.

“산에 왔으면 새, 나무들과 놀아야 합니다.”

“쇳소리 같은 디지털 음과는 잠시라도 헤어집시다.”

옛날 십이령 가는 주요 길목마다 하루 몇 십 명씩 행상으로 들끓어 흥청거렸다.

죽변 쪽 십이령 초입인 “매눈”은 매를 닮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당시 주막과 마방(馬房)에 사고가 많아 그 바위를 없애버렸다고 한다. 매눈 마을 길옆에 울진장씨열녀비다.

임진왜란 때 첨정(僉正, 종4품) 주호는 고산읍성을 지키다 죽고, 왜놈이 부인 울진 장(張)씨의 가슴을 만지며 희롱하니, 스스로 젖통을 칼로 도려내 꾸짖으며 순절하자 놀라 도망갔다고 한다. 조정에서 영인(令人)3)의 벼슬을 내렸다.

열녀각은 몇 년 전 도로 확장으로 언덕위에 옮겼는데 허름할 뿐더러 올바르게 정려(旌閭)4)하지 못하고 있다.

(다음 회에 계속)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주석>

1) 안개피리(주물재질에 공기를 불어서 소리 냄), 안개·눈·비로 바다 날씨가 나쁠 때 배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등대에서 위치를 알려주는 소리.

2)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하는 장사꾼.

3) 조선시대 문무관 적처(嫡妻)에게 내린 정·종4품 벼슬.

4) 충신, 효자, 열녀 등을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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