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록세라의 대서양 횡단 전파기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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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인류역사에서 큰 돌림병으로 인해 지금의 코로나19처럼 세계가 공포에 질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멀리는 14세기 중엽 유럽 인구를 1/5로 줄어들게 하고 백년전쟁도 잠시 멈추게 할 정도로 피해가 컸던 페스트가 그 중 하나다.

원래는 벼룩이 매개가 되어 전파되는 전염병으로 아시아 내륙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이것이 1347년 킵차크 부대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어 수년에 걸쳐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페스트의 병원균은 500년도 더 지난 1894년 프랑스 세균학자에 의해 확인되었다.

다음으로는 1918년 초여름에 1차 세계 대전으로 프랑스에 주둔하던 미국 병영에서 발생하여 8월말 첫 사망자가 나왔고 이 참전 군인들이 미국으로 귀환하면서 미국으로 전파되어 그후 전세계에서 2년간에 걸쳐 약 2000만 명 이상을 사망케 한 스페인 독감이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 최대 재앙이라고 불리우는데 당시에는 바이러스 분리 기술이 없어 원인을 모르고 있다가 2005년 미국의 한 연구팀이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여성의 폐조직에서 이 바이러스를 분리 재생해 내서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와인의 역사에도 자칫하면 인류역사에서 와인이 사라질 뻔한 이와 유사한 공포의 질병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필록세라(phylloxera)다.

필록세라는 포도나무에 생기는 병명이 아니라 포도나무 뿌리에서 뿌리 진액을 먹고 사는 일종의 진드기/진딧물의 명칭이다.

와인의 역사에서는 포도나무의 흑사병이라고 불리울 정도인 플록세라는 19세기 말 유럽 전역은 물론 전세계의 포도밭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어 버린 무서운 존재다.

그것도 바이러스처럼 1,2년만에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무려 3,40년 동안에 걸쳐서 와인 산업 전체에 피해를 입혔다.

진드기라면 8000년이나 되는 와인 역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변종도 아닐텐데 어떻게 유럽이 그렇게 피해를 보게 된 것일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더구나 이것의 원산지는 북미대륙의 동부지역이었다.

그 사연은 이렇게 전개된다.

19세기 중후반경에 영국의 열혈 식물학자들이 미국 포도나무를 수집하여 영국으로 가져갔다.

이때 북미대륙의 필록세라가 대서양을 건너 간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포도원이 큰 피해를 보고 난 후 유럽대륙에서 피해를 보았다는데 유럽대륙의 경우 불가해한 것이 첫 대규모 피해 사례가 영국에 가까운 보르도나 부르고뉴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먼 1863년 프랑스 남부 론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남부 론의 포도원이 황폐화되기 시작해서 그 이후 1870년대에 프랑스 등 유럽은 물론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다시 미국으로 까지 퍼져 나가서 1900년경까지 약 30~40년에 걸쳐 전세계 포도재배업자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첫 피해에 관한 또 다른 일화가 있다.

필록세라의 피해를 먼저 본 것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1857년 소노마의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인 부에나 비스타 와이너리의 설립자인 아고스톤 (Agoston Haraszthy) 백작이 1861년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와이너리들을 돌면서 350여종의 다른 유형의 포도나무 샘플을 모아서 미국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소노마에서 실험적인 재배를 했는데 불행하게도 포도나무가 전부 갈색으로 변하더니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 최초의 필록세라 감염 사례가 되는 셈인데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했고 이로 인해 그는 도산한 후 미국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그 이전에는 없던 것이 19세기 중후반에 왜 이렇게 갑자기 많이 발생했을까? 어떻게 필록세라는 원산지인 북미대륙 동부 지역에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것일까?

우선 19세기 중후반은 16세기 초중반에 시작된 신대륙 발견사와 식민지 개척사를 타고 유럽의 문명이 신대륙에 전해지고 약 300여년이 경과하여 유럽의 문물이 식민지로 전해져서 유럽의 포도나무가 식민지에 널리 퍼져서 정착되는 시점이었다.

또한 반대로 식민지의 문물이 유럽으로 전해지던 시절이기도 했다. 유럽사회를 벗어나 지구 전체가 하나로 되어가던 그 초기였던 것이다.

1850년대에 유럽의 포도원에서 포도나무에 흰가루 곰팡이병(Powdery Mildew)이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유럽 식물학자들이 미국 포도나무는 이 병에 좀 더 잘 견딜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연구하기 위해 미국 포도나무 샘플을 가져왔는데 여기에 필록세라가 따라 온 것이다.

이 시기에 마침 식물을 장시간 살려서 옮길 수 있는 밀폐 유리 용기가 개발된 것도 한 몫을 한다. 당시 운송수단인 배로 운반할 때 이 유리 용기에 넣어 갑판위에 두면 햇볕을 받으며 장기간 여행을 해도 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증기선이 운항되면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미국간의 왕복이 빈번해지게 된 것도 이들의 교류에 큰 기여를 했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성과 과학 기술의 발달이 시기적으로 딱 맞아 떨어져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서로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은 병원균이나 곤충도 본의 아니게 전파가 용이하게 된 것이다.

피해규모는 얼마 정도였을까?

피해 규모는 프랑스만 놓고 볼 때 1875년 총 와인 생산량이 84.5백만 헥토리터였던 것이 1889년 23.4백만 헥토리터로 줄었으니 무려 72%가 14년간에 걸쳐 감소했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전 유럽의 2/3에서 아주 비관적으로는 9/10가 황폐화되다시피 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정도로 피폐해지니 프랑스 정부에서는 이를 퇴치하는 방법을 내는 사람에게 당시 2만 프랑(오늘날 가치로는 일백만불)의 상금을 걸 정도였고 이것은 나중에 금액이 올라가 현재 가치 기준으로 500만불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이를 해결하게 되었을까?

처음 겪는 일이니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모두가 당황했다.

그리고는 수년에 걸쳐 살펴본 결과 모래와 점판암이 많은 지역은 그나마 피해가 없었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황폐화되는 속도가 지연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여전히 근본 원인을 찾지 못했다.

민간에서는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생각으로 두꺼비를 산 채로 각 포도나무 아래에 묻는 일도 있었고 확산 방지를 위해 포도원을 불사르기도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한편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1868년부터 1871년의 불과 3년 사이에 450여편의 관련 논문을 쏟아낼 정도로 원인과 해결책 연구에 몰입하면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Jules Émile Planchon(좌) 과 Charles Valentine Riley(우).
Jules Émile Planchon(좌) 과 Charles Valentine Riley(우).

그리하여 드디어 프랑스 식물학자(Jules Émile Planchon:1823-1888)와 미국 곤충학자(Charles Valentine Riley:1843-1895)로 구성된 연구팀이 원인이 필록세라라는 것을 발견하고 미국산 포도나무가 필록세라를 이겨낸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미국산 포도나무(Vitis riparia, Vitis rupestris, Vitis Labrusca)의 대목에 유럽산 포도나무(Vitis Vinifera)를 접목하는 해법을 찾아냈다.

그러나 식물이다 보니 환경이 바뀌면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바 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미국 텍사스주의 토마스 문손(Thomas Volney Munson:1843-1913)이라는 원예학자였다.

그는 필록세라에 저항력이 있으면서도 프랑스의 기후와 토지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미국 포도나무 대목을 발굴하고 제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문제에 대한 각 분야의 전문가의 협업과 국제적인 공조로 와인의 흑사병을 해결한 것이다.

그럼 이들은 필록세라가 원인이란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리고 원인을 발견했는데도 왜 그 이후로 2, 30년 동안이나 필록세라의 피해는 더 지속된 것일까?

이 과정은 다음 편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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