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보고서, 대학 정원 자율화·전공선택 시기 다양화 등 대책 필요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우리나라 대졸자의 절반은 학부에서 전공한 분야와 관련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대학과 전공에 대한 정부의 정원규제로 많은 학생들이 희망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에 대학정원 규제 완화, 진로교육 강화, 전공선택 시기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이와 함께 고교의 상위권 학생 가운데 문과생들은 교육대학으로, 이과생들은 의대 약대로 몰리는 현상에 대한 개선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일 이런 내용의 '전공 선택의 관점에서 본 대졸 노동시장 미스매치와 개선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내년 졸업을 앞둔 부경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2일 캠퍼스에서 졸업앨범 야외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부경대 제공]
내년 졸업을 앞둔 부경대학교 학생들이 지난 2일 캠퍼스에서 졸업앨범 야외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부경대 제공]

◇ 수도권 사립대 정원 자율화 필요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고등교육(전문대졸 이상)을 이수한 25~34세 임금근로자 중 최종 이수한 전공과 현재 직업 간 연계성이 없는 비중을 계산해보니 우리나라의 전공-직업 미스매치(부조화)는 50%에 달했다.

이는 영국, 이탈리아 등과 함께 미스매치가 가장 높은 집단에 속했다. 참여 국가 전체의 평균은 39.1%였다.

보고서는 대학 전공과 직업 간 높은 미스매치가 ▲규제로 인한 학과 간 정원조정의 경직성 ▲학과별 취업 정보의 부족 ▲전공선택 시기의 획일성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대학과 전공에 관한 각종 정원규제가 입시-취업과 맞물리며 많은 학생이 희망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우리나라 수도권 소재 대학은 총량적 정원 규제를 적용받고 있는데, 이로 인해 각 대학 내 전공간 정원 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학에서 전년도의 전공별 경쟁률에 따라 전공별 입학정원 조정이 있었는지 분석한 결과, 비수도권 사립대학에서는 어느 정도 조정이 있었지만 수도권 사립대학에서는 전공별 입학정원 조정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한요셉 KDI 연구위원은 "여러 이유로 수도권 소재 대학을 선호하는 현실에서 보다 상위권에 속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전공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자료=KDI]
[자료=KDI]

◇ 의대·교대 등 비정상적 인기도 문제

보고서는 또 의대·약대와 교대 등으로의 비정상적인 지원 행태도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보건·교육 등 특수 전공의 정원을 대학이 임의로 조정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는데, 이런 규제가 해당 전공자의 소득과 안정성을 높여주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자연·공학 계열 적성을 가진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 때문에 의대나 약대를 선택하거나, 인문·사회 계열에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높은 안정성 때문에 교대를 선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노동패널 자료를 토대로 전공별 생애주기적 소득과 취업률의 차이를 추정한 결과 남녀를 막론하고 의약 및 교육 계열 소득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으며, 여성의 경우 해당 전공계열 졸업자의 취업률 역시 두드러지게 높았다. 1970년대 출생자를 대상으로 졸업 후 약 20년간 노동시장 성과를 추적한 결과다.

한 연구위원은 "이는 부모 학력, 대입시험점수를 통제하고 얻은 결과로 대학 전공 선택에 따라 생애 소득이 70% 내지 그 이상 격차를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생애주기에 걸친 소득이나 취업률에서 지나치게 큰 격차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이 한편으로 쏠리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료=KDI]
[자료=KDI]

◇ 전공선택 시기 다양화 필요

모든 학생에게 일정한 시기에 나중에 바꾸기 어려운 결정을 강제하고 있는 '전공선택 시기의 획일성'도 원하지 않는 전공을 선택하는 이유라는 지적도 나왔다.

KDI가 2018년에 전국 4년제 대학 신입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응답한 비중은 28.2%에 달했으며, 인문계열은 주로 교육 계열로, 자연계열은 의약 계열로 변경을 희망해 '특수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

또 일반고에서 문·이과 선택 이유 중 '대학 진학에 유리해서', '주위의 일반적인 선택을 따랐다'고 응답한 비중이 전체의 20%를 넘었으며 이들 중 문·이과 선택을 후회하는 비중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보고서는 높은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으로 기존 정원규제 자체를 재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신산업 관련 전공 분야 정원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인구고령화로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의료 분야는 증원을, 학령인구 감소로 교원 수요가 축소되는 교육 분야는 감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진로전담교사가 진학 상담시 대학·학과별로 현재 공표하는 취업률 외에 소득정보와 같은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학생들의 전공선택 시기 다양화, 전공 변경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대학 입학 모집단위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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