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라임펀드 이어 공기업채권 투자 상품에서 '사기'...은행은 뒤늦게 '내부규준' 마련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시중의 갈 곳을 찾지 못한 뭉칫 돈들이 고수익을 쫓아 사모펀드와 증권 파생상품 등으로 몰리고 있는 가운데 잇따라 금융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와 금융당국의 철저한 감시가 요구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연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시중에 유동성이 크게 풀리면서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인들이 리스크가 큰 사모펀드나 증권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면서 손실을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

특히 이번엔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비교적 안정성이 높은 사모펀드 상품이 환매 중단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이들 상품의 총 피해 규모는 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금융당국과 금융권이 사모펀드 판매와 관련한 내부통제 규준 마련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사진합성=뉴스퀘스트, 자료사진=옵티머스자산운용]
[사진합성=뉴스퀘스트, 자료사진=옵티머스자산운용]

◇ '공기업채권투자 사모펀드' 사기까지 나왔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주된 편입 대상으로 삼은 사모펀드가 환매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고객과 약속한 곳에 투자하지 않고 임의대로 투자 사기를 벌인 '라임 펀드' 사태와 닮은 꼴이다.

해당 사모펀드는 옵티머스크리에이터 25·26호인데 이를 운용하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은 만기를 하루 앞둔 전날 판매사인 NH투자증권에 만기 연장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현재 환매 연기 금액은 NH투자증권 217억원, 한국투자증권 167억원 등 모두 390억원 가량으로 알려졌는데, 전체 환매 중단액 규모가 5000억원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NH투자증권이 판매한 옵티머스크리에이터펀드 가운데 환매가 중단됐거나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펀드 규모는 총 4407억원이기 때문이다.

이들 펀드는 펀드 편입 자산의 95% 이상을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공사나 전산용역 관련 매출채권으로 삼는다고 설명한 사모펀드다. 

연간 목표 수익률은 3% 안팎으로 사모펀드치고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안전 자산에 주로 투자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법인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팔렸다.

하지만 펀드 명세서상 공공기관 매출채권과는 무관한 다른 자산이 편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장외기업 등 부실 사모사채 등이다.

안전한 펀드라 믿었던 투자자들은 옵티머스크리에이터 25·26호 환매 중단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투자자는 "95% 이상이 공기업 매출로 구성된다고 하니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구매했는데 환매가 연기됐다"며 "은퇴 자산을 투자했는데 돈을 못 돌려받을 수도 있다고 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NH투자증권은 이날 펀드 고객에게 보낸 안내문에서 "6월 18일 만기가 예정된 해당 펀드의 자산 현황 및 정상적인 상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운용사로부터 상환이 유예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 이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운용사에서 제공해 준 자료에 위변조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운용사와 신탁은행을 통해 펀드의 실제 자산 편입 내역을 재차 확인한 결과 이전에 운용사가 제공한 펀드 명세서상 자산과 다른 자산이 편입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옵티머스자산운용에 대한 검사에 돌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환매 중단 사유와 함께 자산 편입 내역 위변조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옵티머스자산운용의 자금 흐름에 이상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검사 시점을 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사진=NH투자증권]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사진=NH투자증권]

◇ 내부 통제규준 마련 나선 은행들

이런 사모펀드 관련 금융사고가 빈발하자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펀드 판매와 관련한 내부 통제 규준 마련에 나섰다.

또 금감원은 은행의 펀드판매, 판매수익 현황을 매달 보고받아 관리·감독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과 은행권은 '비(非)예금 상품 판매 관련 내부통제 모범규준'의 초안을 작성한 뒤 세부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상품 심의에서부터 고객 응대, 실적 관리에 이르기까지 판매 전 과정을 아우른다.

규준에는 은행 직원들이 특정 펀드를 무리해서 팔지 않도록 핵심성과지표(KPI)를 개선하고, 판매 지점이나 직원, 고객을 일부 제한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본적인 윤곽은 나와 있는 상태"라며 "관계기관 협의를 거쳐 모범규준을 확정한 뒤 은행별 사정에 맞게 자율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 세칙을 바꿔 은행들이 집합투자증권(펀드) 판매 관련 현황을 정기적으로 보고받을 예정이다.

현재 사전 예고 단계인 세칙 개정이 마무리되면 은행들은 매달 펀드 판매 현황과 수익자별 판매 현황, 판매수익 현황을, 분기마다 펀드 계좌 수를 금감원에 보고해야 한다.

이처럼 당국이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DLF·라임 사태 등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판매했다가 대규모 원금 손실을 부른 사례가 잇달았기 때문이다.

은행 판매 상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원금 보장을 기대하는 경향이 더욱 짙은 만큼, 증권사 등 다른 금융회사보다 엄격한 내부 통제 기준을 필요하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DLF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주요 판매사였고, 라임 펀드 역시 작년 말 기준 은행이 판매한 금액이 8146억원으로 전체의 절반(49%)을 차지했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은 증권사의 과도한 주가연계증권(ELS) 발행과 판매를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글로벌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손실 위험이 크고 목표 수익률이 높은 구조의 ELS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며 "상품에 대한 광고나 판매 시 투자자 보호 절차에 문제가 없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증권사는 수익원 창출, 다변화 목적으로 해외 부동산 투자를 확대해 왔다"며 "그러나 부동산 투자는 규모가 크고 중도 환매가 어려울 뿐 아니라 부동산 경기 하강 리스크가 있어 증권사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의도 금융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금융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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