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후 4시 산정호수에 도착하니 소나기 제법 굵어졌다. 7월 28일 토요일, 습도 높아 날은 더 푹푹 찐다.

인상 좋은 여관 주인은 정갈스럽게 방을 정리해 놨다. 샤워하고 밖에 옷 말리라며 빨래 건조대까지 내어 준다.

묵밥과 이동막걸리 한 잔, 산정호수 물빛은 저녁 안개에 절경이다. 둘레길 3킬로미터 정도, 물안개 따라 걸으니 오늘 호수 길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덤이다.

맞은편 산 구름이 걸렸고 소나무와 어우러진 검붉은 노을은 호수 둥둥 떠다니다 물에 빠졌다.

이름까지 아름다운 호수는 일제강점기 만든 산중 우물 같은 산안저수지, 산정(山井)호수로 이름났다. 한국전쟁 전에 38선 이북, 북한 땅이어서 김일성 별장 터가 있다.

억새밭 위에서 일망무제를 품에 안다

새벽 5시 일어나 바쁘게 짐을 싸는데 어젯밤 밖에 널은 옷은 덜 말랐다.

잠깐 걸어 주차장 길 건너 마을 안쪽으로 올라간다.

이른 시간이라 상점 문 연 곳 없어 물 준비 못했지만 계곡물 믿고 그냥 오른다. 6시쯤 책바위 갈림길, 바위계곡 물이 마뜩찮아 비선폭포 쪽 직진하기로 했다.

“왜 계곡물이 흐리지?”

“글쎄.”

산정호수의 안개 구름.
산정호수의 안개 구름.

풀벌레 소리 따라 오는 긴 계곡, 신갈·당단풍·신나무·고로쇠·소나무 등산길 확실히 물은 오염됐다.

30분쯤 걸어 용이 올라갔다는 등룡폭포. 몇 개의 작은 폭포를 지났건만 비선폭포는 사라진 걸까?

몇 모금 남은 물통을 비우니 흐려서 채울 수 없다. 나무 사이 부는 바람 서늘하고 산 위로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이단폭포 갈림길(산정호수1.9·억새밭팔각정1.9킬로미터, 왼쪽 험한 길 거리표시 없음)에 5분 쉰다. 생강·당단풍·신갈·쪽동백·소나무길 잠시, “사격장 포성에 놀라지 마십시오. 특히 임산부 주의.” 오른쪽 철책에 사격장주의 안내판이 걸렸다.

“계곡물 흐린 이유를 이제 알겠어.”

층층·산딸기·느릅·고로쇠·물푸레·당단풍나무……. 포 쏘는 소리 대신 뻐꾸기소리만 들린다.

초원의 옛날 집터 같은데 드디어 구세주 만났다. 7시 약수터. 물맛도 좋고 시원한 산바람이 머리칼 흩날린다. 빈 물통 3개 채웠다.

10분 지나 억새밭, 바람길. 몇몇의 동자꽃 폈고 느릅나무 가지 사이 억새가 물결처럼 햇살에 반짝이며 일렁인다.

바람에 서걱거리는 억새소리는 마치 누군가 우는 듯하고 침묵하는 산. 그러나 산들은 모두 울음을 듣고 있다.

7시 20분 억새밭 꼭대기 앉으니 비로소 일망무제(一望無際).

5분 오르면 갈림길, 왼쪽 책바위, 오른쪽은 삼각봉·정상구간. 1년 후에 받아보는 붉은색 우체통이 놓였는데 엽서가 없어 보내고 싶어도 못 보내겠다.

달맞이꽃·마타리꽃은 억새의 푸른 색깔에 더 노랗다. 7시 30분 바위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새벽에 삶은 옥수수·감자·토마토는 자연과 잘 어울리는 먹거리다.

드문드문 바위와 넓은 초원은 스위스 산악 분위기. 한 손에 감자를 든 나는 오늘 알프스 소년이다.

물에 빠진 노을과 억새평원.
물에 빠진 노을.
물에 빠진 노을과 억새평원
억새평원.

“그 개구리는 도망갔을까?”

“무슨 개구리?”

“새벽녘 방에 들어온 개구리 쫓느라 시름했는데, 침대 밑에 숨었으니 청소 할 때 나갈까? 다른 손님 들어오면 놀라 자빠지겠다.”

8시 능선 꼭대기(삼각봉)에 서니 발 아래 산정호수, 어젯밤 자던 곳, 주차장, 멀리 산들이 구름을 뒤집어썼다.

지금부터 능선 바위길인데 이 높은 산에 호랑버들,미역줄·붉·소사·신갈·개암·물푸레·산머루·싸리·고광·찰피·엄나무 널브러졌다.

걸으면서 왼쪽은 산정호수, 오른쪽이 사격장. 땀을 닦으며 북쪽으로 걷는데 다릅나무는 꼭 물푸레나무와 같이 산다.

생강·찰피·철쭉·말발도리, 이산의 싸리나무는 아주 굵다. 바위 능선 길 마다 마타리 꽃. 나부끼는 훤칠한 키 노란색이 아름답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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