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긍정, 그 시적 깨달음
‘작은 새를 위하여’, 서현진 著, 천년의 시작 刊.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서현진 시인의 시집 『작은 새를 위하여』가 천년의시 0109번으로 출간됐다.

시집 『작은 새를 위하여』는 시적 대상과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서정시의 양식 안에서 생생한 삶의 현장을 우리에게 진솔하게 들려준다.

시인은 삶의 순간적 인상을 감각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존재론적 기원에 대한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시를 통해 삶의 불가피성을 역설한다. 이때, 시는 삶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자기 고백적 발화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 고백이 잔잔하게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서현진의 시는 일상적 경험을 토대로 한 시적 사유가 돋보이는데, 이는 이번 시집의 전반적인 기조라 할 수 있다.

과한 수사를 사용한다거나 어설픈 포즈를 취하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삶을 노래하는 것이 이번 시집의 장점이다.

일상적 경험에 천착한 시편들에는 곡진함이 가득하고, 시적 사유가 빛나는 시편들에서는 세계를 인식하는 시인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깃들어 있어 울림이 큰 것이다.

가령 표제작 「작은 새를 위하여」는 다음과 같이 전개 된다.

햇빛을 잡아당겨

흰 빨래를 탈탈 털어 가지런히 말리자

이것을 참회라 부르기로 하자

 

돌돌 청소기를 돌려

집 안 구석구석에 있는

먼지를 모아

새의 부등깃을 만들자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하자

 

흰쌀을 씻어놓고

그 위에 호랑이콩을 집어넣어 밥을 하자

그 콩을 화성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라고 속이자

이것을 헌신이라 부르기로 하자

 

감자, 당근, 양파, 쇠고기를 잘게 썰어

물을 넣고 끓이다가

순한 맛 카레 가루를 넣고 휘저어 보자

참 내 젖 한 방울도 양념으로 넣어보자

이것을 희생이라 부르기로 하자

 

싹싹 먹은 그릇들과 숟가락들을

개수대로 들고 가

거품을 튀겨 가며 요란스럽게 부시자

이것을 리듬이라 부르기로 하자

 

크기와 모양 색깔이

제각각 다른 이불과 베개들을

방마다 깔아놓고

좋아하는 동물 인형들을 하나씩 던지자

이것을 평화라고 부르기로 하자

 

작은 새들이

뒤척이다 짐승들과 함께 잠이 들면

되도록 예쁜 꿈의 씨앗들을 어두운 하늘에 뿌려보자

이것을 희망이라 부르기로 하자

 

시계 속의

큰 톱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쉴 새 없이 돌아갈 때마다

그 안에 살던 쥐새끼들이 쪼르르 나타나

 

내 콧등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작은 새들이

내 두 어깨를 조금씩 쪼아

점점 둥그스름한 언덕을 만들고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기로 하자

(「작은 새를 위하여」 전문)

해설을 쓴 문종필 문학평론가는 시인이 “현실의 틀어짐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 “순환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시적 서사의 자리로 가져가 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시적 사유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포착하고, 죽음의 문턱에서 생의 절규를 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현진의 시를 통해 양립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 시의 성전으로 향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요컨대 과거의 시간을 오늘의 기억으로 되살려 내어 깊이 있는 서정성을 이끌어낸 것은 이번 시집의 유의미한 문학적 성취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집에서 유난히도 빛나는 것은 시적 깨달음을 통한 삶의 긍정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시를 통해 삶을 인내하고 삶을 껴안는다. 그것은 이웃과 가족과 나아가 인간에 대한 시적 껴안음이기도 하다.

아래는 문학평론가 문종필의 해설 일부다.

시인은 흰 빨래를 털어 가지런히 말리는 일을 참회라고 부른다. 집 안 구석에 쌓인 먼지를 모아 새의 부등깃을 만드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부르고, 영양가 있는 흰쌀밥을 짓기 위해 콩을 넣는 행위를 헌신이라고 부른다.

카레를 만들다가 “참 내 젖 한 방울”을 넣는 행위를 희생이라고 부르고, 힘 있게 설거지하는 행위를 리듬이라고 말한다.

이불과 베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곳에 동물 인형을 던지는 행위를 평화로 간주하고, 작은 새들이 날 수 있도록 예쁜 소망을 꿈꾸는 행위를 희망이라고 노래한다. 이러한 의식적인 행동은 마지막 연에서 의미가 증폭된다.

쥐새끼들이 “내 콧등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과 작은 새들이 “내 두 어깨를 조금씩 쪼아” 먹는 것이 “둥그스름한 언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화자의 이러한 의식적인 행위는 현실의 틀어짐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애정이 간다.

서현진 시인은 1971년 전북 고창 출생이다.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충남 홍성 거주하고 있다.

서현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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