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박근혜 정부 국가 권력기관의 ‘유치함’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막장 수준’ 그 자체입니다. 초딩들에겐 미안하지만 딱 초딩 수준입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요.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 사건에 대한 경찰의 행태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막가파식’입니다. 이러고도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다니, 평생 정권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누리꾼들의 볼멘소리가 비등합니다.

국정원 사건의 초기수사를 지휘했던 권은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의 양심선언으로 경찰조직이 위기로 내몰리자, 난데없이 “권 과장이 감찰대상”이라며 어처구니 없는 반전공격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슨 공개처형을 즐기는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내부고발자’를 철저하게 밟아서 복수하려는 경찰조직의 몸부림은 이게 지금 21세기의 ‘완성된’ 국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오류와 한계점이 발견돼 국민으로부터 ‘망신’을 당했으면, 또한 그렇게 사건 자체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으면 발자국 소리조차 없이 조용히 침묵하며 반성해도 모자랄 판국에, 경찰이 신변의 위협까지 각오한 권은희 수사과장을 말 그대로 ‘아웃시키기 위해’ 올인하고, 여기에 새누리당 의원들과 조중동 등 보수세력까지 가세해 한 사람을 킬하려는 모습은 혹시나 잘못될지도 모를 박근혜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권은회 수사과장마저 철저히 ‘종북으로’ ‘빨갱이로’ 몰아가는 대한민국의 못된 단면은 보는 것 같아 고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읽었던 루시퍼 이펙트(LUCIFER EFFECT)라는 책이 있습니다. 스텐포드 대학의 짐바르도 교수가 약 30년 전에 행했던 심리학 실험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SPC)을 차분하게 그러나 아주 냉철하고 무섭게 고찰한 책입니다. 그는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보통 사람들도 특정한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악마’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비슷한 상황 속에서 그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영웅’이라는 것입니다.

짐바르도 교수는 “악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영웅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영웅이란 영웅적 행위를 한 평범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영웅은 남이 하지 않을 때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ego-centric) 사회를 위해서(socio-centric) 행동합니다. 당연히 사람이라면 했어야 할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체계화된 권력은 도처에서 언제나 ‘악마’로 행동합니다. 이를 막아내고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길 역시 인간의 선택과 행동 뿐입니다. 악의 권력에 맞서는 일은 그래서 언제나 필요합니다. 즉, 거대한 부패 조직이나 국민을 속이는 무능한 정부가 저지른 잘못들의 상당 부분은 공무원 조직에서 근무 중인 내부고발자의 용기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공무원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공직사회가 외쳐댔던 이유는 이 때문이고, 공무원노조를 국가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 또한 여기서 출발합니다. 이라크에 있는 미군의 아부그라이브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와 고문 스캔들도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내부고발자의 폭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실체는 영원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법정에 서 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인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트 국방장관, 조지 테닛 CIA 국장, 리카도 산체스 중장 등은 여전히 자유의 날개를 달고 활개를 치고 있지만 내부고발자 덕분에 더 이상 사태가 확산되는 것은 차단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창설자인 어산지도 증거조차 불확실한 성폭행 혐의로 지금까지도 미국 정부의 수배를 받고 있습니다. 흑인 우디 앨런이라고 불릴 만큼 수다스럽고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스파이크 리 감독이 만든 영화 ‘그녀는 날 싫어해(2006)’에서는 주식 거래와 관련된 회사의 엄청난 비리를 당국에 고발했다가 밀고자 취급을 받고 사회에서 완전 고립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고발하는데, 영화를 현실과 비교하자면 조직의 규모가 크고 조직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면 클수록 내부고발자가 겪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언론의 보호를 받더라도 보통의 경우 조직에서 퇴출을 당합니다. 이 정도만 되면 다행입니다.

고발 당사자에 대한 생명의 위협은 기본이고, 당사자의 가족에게까지 압박과 회유, 협박 및 공갈이 이어지기 일수입니다. “본보기를 보여준다”는 심리로, 더 이상 내부고발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끝까지 ‘조폭 그 이상의 조폭처럼’ 악랄하게 전투적으로 움직입니다. 루시퍼 이펙트는 개인 기질보다는 상황, 상황을 조성하는 시스템, 곧 썩은 사과보다는 썩은 상자 탓이 더 크다는 게 결론을 내놓습니다. 짐바르도는 누구든 악마로 전락할 수 있지만 누구든 영웅이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악에 맞서 싸우면서 루시퍼 이펙트에서 벗어나기 위한 영웅적 노력을 보통 사람들에게 촉구합니다. 내부고발자를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라고 한 것입니다.

검찰 특별수사팀의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경찰수뇌부가 국정원의 선거 개입을 축소·은폐하려고 했던 정황들이 아주 충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이 정도에서 멈출지, 아니면 세상을 뒤흔들만큼 폭발적인 위력을 갖게 될 만큼 진행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보통 역사적으로 전자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경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권은희라는 인물에 대한 감찰을 계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권은희 수사과장이 미워서라기 보다는 더 이상 제2의 권은희만큼은 나와선 안되기 때문입니다.

권은희 수사과장과 같은 메가톤급 내부 폭로는 경찰수뇌부에게 고통스런 치명타를 가할 뿐만 아니라, 경찰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최악으로 만들고, 첨예한 이슈인 검경수사권 재조정에서 불리한 ‘을’의 위치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향후 감찰에 따라 권은희 수사과장은 ‘근무의 오류’ ‘근무의 태만’ ‘업무상 과실’ 등이 1% 정도만 발견되더라도 ‘아웃’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그래서 누가 뭐래도 영웅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과 같은 후진국가들은 이런 ‘영웅’을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게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대한민국의 정통 문화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권은희 수사과장이 이번 내부고발로 일신상의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은 국민이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의가 실종된 암울한 국가로 전락하게 됩니다. 권은희 수사과장을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나서서 반드시 지켜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은 대통령 당선 자체를 뒤바꿔 놓은 비극적 사건의 출발점입니다. 역사를 가정법으로 말하는 것은 허무한 일이지만 만약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선거 판세가 다르게 나왔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반칙과 특권으로 이뤄진 대통령 선거. 권은희 수사과장이 ‘진실’의 첫 단추를 열었습니다. 두 손을 간절히 모아, 제2의 영웅이 나오길 바라봅니다.
 
최봉석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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