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동두천역 지나 곧바로 주차장에 왔다.

동두천(東豆川)은 동쪽으로 흐르는 시내, 동쪽에 머리를 둔 냇물이 흐른다고 동두천(東頭川)이었으나 두(頭) 자에서 두(豆) 자로 변한 건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과 더불어 약자로 쉽게 쓰려는 경향이 더해지면서 바뀌었다는 것이 유력하다.

8.15 해방 이후 미군주둔으로 락(Rock) 음악이 성행해 많은 국내 유명 밴드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7월 28일 토요일 10시 20분, 소요산 아스팔트 주차장이 더위로 푹푹 찐다. 플라타너스는 그늘 만드는 것도 힘에 부치는지 축 늘어져 섰다.

반공희생자 위령탑을 지나 개울물처럼 졸졸 흐르는 계곡, 나무그늘에 어르신들만 삼삼오오 앉아 더위를 피한다.

소요산역에서 걸어 15분 정도면 갈 수 있어 자동차 없어도 접근성은 좋다.

빼어난 산세로 경기 소금강이라 불려

계곡 옆 아스팔트 가로수 길 따라 햇살 피해 걷는데 간혹 외국인들 눈에 띄고 젊은이보다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

아마 그들은 6~70년대 서울에서 기차로, 버스로 왔던 그 시절의 청춘 세대일 것이다.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면서 얼마나 고생 많았던 격동의 세대였던가?

11시 자재암 입구 약수터, 시원하게 마시고 물통을 채운다. 백팔번뇌 계단, 석벽, 소나무 걸린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20분 지나 반야심경 합창소리 들리는 자재암에 닿는다.

선덕여왕 시절 원효가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후 이 먼 곳까지 와서 지었다 한다. 법당에 앉은 보살들은 불심이 얼마나 깊기에 이 뜨거운 염천(炎天)에 칠보단장(七寶丹粧) 곱게 차려 입었을까?

나한전 앞 원효샘 석간수(石間水)에서 잠시 더위를 쫓는다.

고려 때 이규보가 전국 최고 찻물이라 극찬하며 젖샘으로 불렀다고 적혀 있다.

자재암과 원효암
자재암과 원효암
자재암과 원효암
자재암과 원효암

바위 따라 긴 계단 오르는데 졸참·팽·쪽동백·신갈·소나무 숲이 그늘을 만들어 줘서 그나마 다행이다. 11시 30분 자재암에서 50미터쯤 올라가니 갈림길(하백운대0.6·중백운대1·선녀탕0.6·나한대1.5·일주문0.5킬로미터). 땀에 옷은 다 젖었다.

이 산은 대부분 바위산으로 계단이 많다.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는데 모기가 왱왱거리며 달려든다.

“그냥 가지 죽이긴 왜 죽여.”

“불심이 약해서 그래.”

12시 해발 440미터 하백운대(자재암0.6·중백운대0.4킬로미터). 너무 더워 쓰러질 것 같은 폭염이 2주 이상 40도를 오르내리니 식물들도 겨우 목숨만 붙어 있다.

빤질빤질한 화강암, 물푸레·산사나무 오른쪽으로 걷는데 시계방향으로 화산분화구나 산성을 도는 듯하다.

10분 후 덕일봉 갈림길(상백운대0.3·일련사25·선녀탕1·자재암1.7·중백운대0.3·하백운대0.7킬로미터). 걸어온 중백운대 쪽 신갈나무 숲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힌다.

12시 반 이정표 없는 칼바위에 이르니 땀으로 목욕한 듯하다. 생강·싸리·당단풍·누리장·병꽃·개옻·산뽕·좀작살·고로쇠나무…….

바위에 앉아 손수건 비틀어 짜니 빨래하는 것처럼 물이 뚝뚝 흐른다. 12시 45분 급경사지대 계단에 의지해서 다시 내려가는 길, 이렇게 굵은 찰피·떡갈나무는 드물다.

백운대 오르는 길과 소요산 소나무.
백운대 오르는 길.
소요산 소나무.
소요산 소나무.

소요산은 산세가 빼어나 경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웅장하지 않지만 봉우리 경치가 좋다. 진달래·철쭉꽃 피고 여름철 흐르는 계곡물이 좋아 서울 근교에서 많이 찾는다. 가을 단풍과 겨울산도 운치 있다.

원효폭포로 올라가면 하·중·상백운대가 나타난다. 아들 이방원에게 홀대받은 이성계가 상백운대에 자주 올랐다고 전한다. 나한대, 정상인 의상대, 공주봉이 차례로 솟아 있다.

서경덕, 김시습 등이 소요했다는 데서 유래된 소요산, 소요(逍遙)는 거닐며 다니는 것이니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숲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에게 강론한 데서 유래한, 이른바 거닐며 배웠다는 소요학파(逍遙學派)가 있었다.

1980년대 서울에서 3000번 영종여객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며 오가던 시절, 비행기 소리만 듣다 내려온 기억밖에 없다.

서울에서 많은 시간 소요된대서 소요산이라 했으니 오죽 했겠는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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