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소강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일련의 도발행위들에 내재돼 있는 북한의 의도와 향후 전망에 대한 더욱 정밀한 분석이 요구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작금의 긴장을 유발하고 있는 핵전략과 연계한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북핵문제가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것으로 사실상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북핵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여겨지는 것은 북미간 혹은 남북간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실험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긴장은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군 통신선 단절조치, '1호 전투태세' 성명 발표,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 등과 같은 극단적인 조치로 남북관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4강들이 북핵문제에 대해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북한문제에 있어 우리 정부의 역할이 어느 시기보다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의 도발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분석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정책 수립이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다.

벼랑끝 전술과 살라미 전술

벼랑끝 전술(brinkmanship tactics)은 상대방에 대해 극단적인 위기를 조성해 양보와 타협을 얻어 내고 이익을 챙기는 모험적인 행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주로 약소국이 강대국을 위협·공갈하는 일종의 기만행위를 일컫는다. 이론적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익을 가장 우선시하다는 측면에서 현실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약소국이 자신의 제한된국력 속에서 국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책략으로서 벼랑끝 전술을 사용해 왔던 것이다.

벼랑끝 전술이 대화의 개시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책략이라면, 살라미(Salami) 전술은 협상과정에서 의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소금에 절인 이탈리아 소시지인 살라미를 조금씩 얇게 저며 먹는 방식에서 유래한 살라미 전술은 공산주의자들이 협상할 때 주로 활용했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핵 협상 단계를 최대한 세분하고 세분한 사항들을 단계에 따라 쟁점화하는 방법으로 살라미 전술을 활용해 왔다. 이에 따라 살라미 전술은 북한의 협상행태를 설명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벼랑끝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핵/미사일 실험, 서울 핵공격 및 불바다 위협, 워싱턴 핵공격 위협, 정전협정 무력화 및 백지화, 판문점 대표부 철수 등을 들 수 있으며, 종류와 강도에 있어서도 다양하다. 살라미 전술의 사례로는 북핵 6자회담을 들 수 있다. 북한은 최근 제3차 핵실험을 실시했고, 이에 대해 유엔안보리는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위한 결의안 제2094호를 채택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 북한 역시 이를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은 미국과 중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협력이 강화될 때 벼랑끝 전술의 일환으로 감행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1998년(대포동1호 발사)4), 2003년(NPT 탈퇴), 2006년(1차 핵실험), 2013년 제3차 핵실험 등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 주었다. 핵/미사일 실험은 자주권에 바탕을 둔 정당한 행위라는 북한의 주장과는 달리, 미국과 중국의 대북 압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보다 강도 높은 도발을 통해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지점을 확보하려는 벼랑끝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눈에 띄는 북한의 도발행위 중의 하나가 핵공격위협이다. 북한은 최근 들어 워싱턴 뿐만 아니라 서울에 대해서도 핵 공격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핵무기를 개발해 왔다는 점에서 서울을 핵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서는 좀 더 엄밀한 분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예전에도 ‘서울 불바다’ 발언이 있었다는 점에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최근 북한의 핵공격 발언들의 실제적 가능성을 미국의 핵 보복공격에 대한 북한의 방어능력 유무라는 차원에서 검토한다면 협상 개시를 위한 벼랑끝 전술에서 나온 협박에 무게를 두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북한의 정전협정의 무력화 및 백지화 주장도 동일한 맥락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예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정전협정 무력화를 시도한 바 있다. 최근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내지는 폐기를 주장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북한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을 폐기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벼랑끝 전술에서 나온 협박용 발언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북한의 살라미 전술은 핵과 관련한 협상과정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벼랑끝 전술이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데 비하여, 살라미 전술은 외형상 협상이라는 이완된 긴장 속에서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협상 등의 상황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실제로는 손실을 보게 만드는 것이 이 전술의 본질인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 조치와 관련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살라미 전술을 이용해 왔는데, 핵 폐기의 경우 즉각적이고 전격적인 폐기라는 하나의 카드가 아니라 동결, 유예, 불능화, 봉인 등 다양한 개념을 개발하여 협상카드로 활용해 왔다.

핵개발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플루토늄과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분리하여 추진하였고, 핵개발 자체도 무기 개발 권리와 핵에너지 사용권리를 분리하여 협상카드로 활용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불능화 조치의 중단과 같이 이미 합의를 통해 진행하고 있던 조치들을 중단하는 것을 협상카드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북한이 6자회담에서 양보한 것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의 폭파에 불과했고, 그대가로 80만톤의 중유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벼랑끝 전술과 남북관계

북한의 벼랑끝 전술의 주요한 대상은 미국이지만 그 영향권에는 필연적으로 한국도 포함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벼랑끝 전술은 단지 한반도의 긴장이라는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평화비용’의 분담이라는 실제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통해 북미협상테이블을 확보하여 협상타결을 이루어냈지만 협상장에도 들어가지 못한 한국이 북한에 줄 경수로 건설비용을 대부분 감당해야 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흔히들 ‘통미봉남’이라고 불리는 북한 대외전략의 최대부담자는 한국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다음으로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지정학적 자산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한국의 대외정책과 대북정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한국을 제외하고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한 최대 당사자는 미국과 중국이며,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미국과 중국에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한·중관계나 남·북관계는 북·미관계나 북·중관계의 좌표에 따라 종속변수로 전락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북한에게 있어 현재의 핵은 단지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억제수단이나 경제적 보상을 얻기 위한 외교적 협상수단의 차원을 넘어 ‘핵 이데올로기’로서 체제유지의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생존의 차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며, 북한은 체제안정성의 확보를 위해 핵/미사일개발과 경제적 안정을 위한 전략을 수립해왔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의 내부동력으로 경제안정성을 달성하기는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통한 북미간의 협상을 통해 경제적 안정성의 상당부분을 달성하고자 해왔다. 미국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벼랑끝 전술이 그것이다. 북한의 핵과 경제논리는 한마디로 자신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만큼, 혹은 핵/미사일기술의 보유 수준만큼 지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본다면 핵/미사일 개발이 경제적 안정성을 보완해주기 보다는 상호간의 효과를 상쇄(trade-off)하는 결과를 보여왔다. 이에 따라 북한은 핵보유수준의 제고를 통한 체제안정성 보장이라는 새로운 출구전략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핵과 경제의 상쇄효과를 탈피해 체제의 안정성을 달성하기 위한 ‘상쇄효과 회피전략(avoid tradeoff effects)’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북한의 핵개발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핵이 체제안정성을 달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다면 한ㆍ미양국의 대북정책은 다소 유연한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협상의 개시시점에서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하기보다 ‘장기적인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만 합의하고, 북한 핵보유의 인정도, 당장의 폐기요구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Neither Confirm Nor Ask) 협상의 재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북한이 협상의 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양자·다자간 협상틀과 다층적 의제의 설정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승현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 (연세대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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