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전 10시에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삼거리(천황사주차장3.4·천황봉0.3·바람폭포1.1·구름다리1.4·경포대2.7킬로미터).

자주색 꽃 피운 산수국과 미역줄나무, 10분 남짓 바위 꼭대기 오르면 천황봉(해발 809미터)이다.

“저쪽이 강진 남해, 4시 방향으로 유달산 서해가 보인다.”

“하나도 안 보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통천문.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안개는 자욱하고 이따금 바람이 몰아치니 사방으로 분간이 안 된다. 월출산 최고봉, 족히 수백 명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바위산이지만 바람 불어 오래 있지 못하겠다.

두 시간이면 도갑사까지 갈 수 있을까?(도갑사5.8·구정봉1.6·경포대주차장3.6·천황사2.6·구름다리1.7킬로미터)

“우린 정상, 잘들 올라오고 계시죠?”

“밑에 팀들 구름다리까지 왔어요.”

“정자에 두고 온 걸로 목축이시고, 우린 도갑사로 갑니다.”

도갑사 나오면서 점심 먹자며 전화기를 닫았다.

천황봉 등반 이어 도갑사로

도갑사 가는 길, 10시 30분 안개비 내리더니 10여 분 더 걸어 돼지 바위에서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안개와 비 섞인 바위에서 그래도 사진을 찍는데 렌즈에는 벌써 물빛이 맺혀 흐리다. 판초비옷은 입었지만 땀과 비가 섞여 모조리 젖었다.

아래쪽에 음굴이 있고 봄에 빨간 철쭉꽃 멋진 기이한 바위다.

안갯속 바위 오르는 계단과 기암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안갯속 바위 오르는 계단.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안갯속 바위 오르는 계단과 기암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안갯속에 보이는 기암.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누리장나무 군락지, 통신시설 구간을 지나 10시 50분경 바람재 삼거리(도갑사4.5·구정봉0.5·경포대2.5·천황봉1.1킬로미터). 10분 더 가서 구정봉 장군바위 갈림길, 뒤에 오던 한 사람이 보이질 않아 몇 번 불렀다.

“다시 천황봉으로 가자.”

“왜 무슨 일 있어?”

“한 사람 연락이 안 돼서 모두 찾으러 나섰대.”

“뭐라고!”

다급한 나머지 몇 번 전화 버튼을 눌러도 불통이다.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연락은 끊기고 갑자기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숲길을 이리저리 헤치면서 액정에 보이는 안테나에 위치를 맞췄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 들려요?”

“우린 여기서 돌아갈 수 없어. 정상에서 너무 멀리 왔고, 지치고 비도 많이 와서 안 돼.”

“모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 흥분하지 말고 구름다리에 기다리고 있어요.”

신신당부했다.

결국 사고 쳤구나. 이 악천후에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단독 행동에 대한 질책보다는 염려가 먼저 앞섰다.

혹시 바위에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았는지? 별 생각 다 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빗줄기 더욱 세차게 내리붓고 일행은 비옷에 고개를 묻고 가는데 하마터면 갈림길에서 다른 곳으로 갈 뻔했다. 연신 버튼을 눌러댔지만 소용없고 바위능선 길에서 겨우 연락이 됐다.

“교신 됐습니까?”

“예, 만났어요.”

“사고 아니죠? 고생했습니다.”

“괜찮아요.”휴~ 가슴 쓸어내리면서부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었다. 11시 40분 향로봉 근처에 이르니 빗줄기 대신 안개로 바뀌었다. 잠시 짐 내려놓고 모자 비틀어 물을 짜고 신발 끈 새로 맸다. 산은 잠시 마을을 보여주더니 금방 안개로 가려버렸다. 강진 땅…….

도갑사 계곡.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도갑사 계곡.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도갑사에서 오르는 등산로.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도갑사에서 오르는 등산로.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10여 분 지나 헬기장, 억새밭에 도착하니 갈림길(도갑사2.7·경포대4.3·천황봉2.9킬로미터)이다. 한 참 숨 고르고 계단 내려오면서 보라색 산수국이 거의 내려왔음을 알려준다.

목적지까지 1.9킬로미터, 물소리 요란한 도갑사 계곡은 콸콸 물이 넘쳐 밧줄을 잡고 건너다 계곡에 풍덩. 12시 50분 규모가 큰 도선선사 비각에 마주섰다. 도갑사 경내까지는 5분 거리다.

옛날 처녀가 빨래를 하다 오이를 건져 먹곤 아이를 낳자 부모가 부끄럽게 여겨 버렸다.

비둘기가 먹이를 주면서 보살피므로 신기하게 여겨 데려다 키웠는데 도선이었다. 비둘기 숲 구림(鳩林)이 여기서 비롯된다.

아이가 영특해서 월출산 아래 암자에 보내 중이 되게 하였고 출가한 곳이라 하여 암자 터를 도선의 낙발지지(落髮之地)라 한다.

도선은 당나라로 유학, 풍수를 배워 승려보다 풍수대가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의 역사가 신라 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도선 때문이라는 것. 풍수서 도선비기(道詵秘記)로 유명한 그는 지리쇠왕·산천순역·비보설 등을 주장하였다.

고려의 성립과 고려, 조선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무위사, 도갑사는 도선국사가 세웠다지만, 인도마라난타가 영광 불갑사, 무안 원갑사와 함께 삼갑사를 열었다는 얘기도 있다.

도갑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도갑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용수폭포를 거쳐 경내 구경을 하는데 일행은 벌써 저만치 걸어간다.

대웅전 앞의 오래된 석조(石槽)에 물은 없고 수도꼭지만 겨우 틀어놓았다. 유형문화재로 돌을 파서 물이나 곡물을 담던 것인데 소 여물통 모양이다.

석조에 새겨진 강희(康熙)는 청나라 강희제 연호로 숙종(1682) 무렵이다. 국보 50호 해탈문(解脫門)은 주심포에 다포식을 섞은 것으로 산문(山門)의 귀중한 것이라 한다.

경내는 비가 내려선지 인적이 없다.

웬만한 절집이라면 문화재 관람료를 받으면서도 출입구를 의도적으로 돌려놓거나 통제하는데, 이곳은 절 입구에서부터 등산로 안내판을 시원하게 세워놓았다. 등산객을 배려한 절집은 처음 봤다.

일행의 개인행동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미안했던지 참외를 깎아주는데 아무 말 없이 받아먹기만 했다. 도갑사 매표소 입구에 450년 된 팽나무가 할아버지 기품으로 일행을 반겨준다.

비는 멎고 일본문화의 원조 왕인유적지를 두고 차는 달린다. 왕인은 백제 때 영암 군서면 구림리에서 태어나 유학, 경전을 배우고 18세에 오경박사가 됐다.

논어, 천자문을 일본에 전파, 아스카(飛鳥)문화를 일으켰으며 일본의 문화, 예술을 꽃피웠다.

결국 점심은 벌교까지 1시간 달려와서 꼬막정식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악천후에 개인행동은 자살행위입니다.”

<탐방로>

● 정상까지 3.7킬로미터, 2시간 30분 정도

천황사입구 → (20분)야영장 → (10분)갈림길 → (20분)구름다리갈림길 → (15분)대피소 → (5분)구름다리 → (1시간 10분)통천문 → (10분)천황봉 정상 → (30분)돼지바위 → (10분)바람재 삼거리 → (50분)향로봉 → (10분)억새밭 갈림길 → (1시간 5분)도갑사

* 비 맞으며 8명이 느리게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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