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이승진 기자 = 지난 20일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경남 밀양의 송전탑 공사를 강행했다. 지난해 9월 공사 중지 이후 8개월만이다. 한전은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을 요청하며 충돌방지를 약속했지만 진압 과정에서 경찰과 주민들의 충돌로 노인 한 명이 실신하는 등 부상자가 속출했다. 주민들 대다수가 노인들인데다 일부 주민들은 유서를 쓰고 ‘목숨 건 반대’를 외치고 있어 추가 불상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주민들의 반대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한전이 공권력을 투입하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한 데 대해 ‘성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초 한전이 동원한 용역과 맞서다 70대 노인이 분신하는 비극도 이미 경험한 바 있어, 공사재개에 앞서 주민들과의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야 했다. 그럼에도 한전은 공사가 계속 늦어지면 전력공급이 어렵게 된다고 주장하는 한편, ‘신고리 3호기가 예정된 기일에 발전에 들어가지 못하면 하루 47억 원씩 손실이 발생한다’는 비용적 측면을 부각하며 공사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송전탑 대책위 측은 “지난 8개월 간 작업을 중단해 온 한전이 갑자기 정전대란, 전력난 등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말을 내놓으면서 신고리 3호기가 정상가동될 예정인 12월까지 공사를 마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한전이 주민들을 자극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한 “요식행위뿐인 공청회만 하고 주민들 의견은 단 하나도 반영된 것이 없다”며 그동안 합의다운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한전의 밀어붙이기식 공사 강행에 대한 정부의 동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한전의 공사 강행은 국민 안전을 도외시하고 기업의 편익만을 우선한다는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의 ‘갈등조정 능력’이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다고 일갈했다. 진보정의당도 “공권력을 투입했다는 것은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이 한전의 책임을 넘어 정부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부의 책임을 촉구했다.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이 같은 갈등은 전북 군산, 강원 평창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갈등의 원인을 살펴보면 단순히 ‘님비현상’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전탑 갈등의 이면에는 지중화 및 노선변경 요구 묵살, 주민들의 사유지를 보장하지 않는 전원개발촉진법 적용, 보상을 앞세운 희생 강요 등 개발 과정과 법·제도의 비민주성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한전과 정부가 송전탑 갈등으로 인한 추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공사 시일이 걸리더라도 대화를 통한 합의가 필수적이며, 법·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보완이 요구된다. 즉 밀양 송전탑 사태를 단순히 ‘한전과 주민 사이의 충돌’로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언론은 공권력과 주민들의 충돌로 인한 불상사가 발생한 배경이 무엇인지, 송전탑 갈등이 반복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추적해 송전탑 사태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전달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방송3사는 부실보도로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공사재개로 충돌이 발생한 20일, KBS는 아예 보도를 내놓지 않았다. MBC와 SBS는 ‘충돌’에 방점을 찍은 채, 비민주적인 과정과 절차에 대한 비판이나 무리하고 성급한 공사 강행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싣지 않았다. 그리고는 ‘비용’과 ‘전력난’을 운운하며 공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전의 입장을 부각시켰는데 이같은 주장이 타당한지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단순전달한 데 그쳤다.

주요일간지들도 입장 차가 드러났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한전과 정부가 주민들의 대화를 통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원전 중심의 정책 검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신문은 송전탑 공사로 인한 문제가 비단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강원 횡성, 전북 군산 등도 ‘제2의 밀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 21일 1면 제목을 <電力 수급, 이번주 무더위부터 비상체제>라고 뽑고, 전력 수급난이 우려된다며 정부와 한전의 입장을 적극 대변하면서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입장을 보였다. 전력 수급난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은 반면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밀양 송전탑 공사의 쟁점을 ‘지중화’로 축소시키며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시민사회가 밀양 송전탑 문제에 끼어들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언론이 언론이길 포기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특히나 예고된 충돌이 일어난 20일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고 불상사를 일으킨 한전과 정부의 안일함을 질타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내보내지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하지 않은 것은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만약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떤 보도가 쏟아졌을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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