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임수동 동락서원 은행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구미 임수동 동락서원 은행나무는 거유 장현광의 자취를 담고 서 있는 큰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은 경북 구미의 대표적 거유(巨儒)다.

임진왜란 뒤에 거처를 잃은 장현광은 그의 후손이 새로운 거처인 ‘모원당’을 마련하기 전까지 무려 15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

겨우 새로 마련된 거처에 돌아와 머무르기 시작한 장현광은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임란으로 황폐해진 마을과 숲을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우주의 생명 원리를 학문의 기초이자 지향점으로 삼았던 장현광에게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었다.

그때 그가 심었던 나무들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서 선현의 향기를 느끼게 하는 나무가 적지 않다.

동락서원(東洛書院)은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655년(효종 6년)에 창건했다.

원래 이곳은 장현광이 1601년에 지은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 자리였다.

1676년(숙종 2) 사액서원이 되었다.

동락이란 동방의 이락(伊洛)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이락은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공부하던 중국의 이천(伊川)과 낙양(洛陽)을 가리키는 말이다.

뒤에 주자(朱子)가 그들의 학통(學統)을 이었기에 결국 동락은 정주학(程朱學), 주자학(朱子學)의 근원이자 상징이라는 의미다.

동락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 되는 서원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871년(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2년 일부 중건, 1971년 서원 건물 전체를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른다. 

동락서원의 입구인 문루 바로 앞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바로 구미 임수동 동락서원 은행나무다.

이 은행나무가 바로 장현광이 황폐화한 마을 숲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손수 심어 키운 나무라고 한다.

그때부터 400년을 살아온 구미 임수동 동락서원 은행나무는 높이 30m까지 매우 크게 잘 자랐다.

높이만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은행나무 가운데에도 최고 수준이다.

가슴높이 둘레는 4m를 조금 넘는 규모여서 늘씬한 몸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자태가 대단히 훌륭하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주변에 수나무는 찾아볼 수 없는데도 해마다 가을이면 숱하게 많은 열매를 맺는 신비로운 나무라고 말한다.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여전히 융융하게 살아남아 거인의 자취를 보여준다.

<구미 임수동 동락서원 은행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5-2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9. 24.
·나무 종류 은행나무
·나이 380년
·나무 높이 30m
·둘레 4.1m
·소재지 구미시 임수동 375-4
·위도 36.110997, 경도 128.399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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