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임수동 여차정 배롱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구미 임수동 여차정 배롱나무는 장학이 지은 정자 여차정의 정원수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여차정(如此亭)은 본관을 인동(仁同)으로 하는 남파(南坡) 장학(張澩:1614~1669)이 1659년에 지은 정자다.

장학은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제자다.

선산, 구미 지역에서 여헌 장현광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구미 지역 선비들을 논하기 어렵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학은 열한 살의 어린 시절에 장현광의 문하에 들어 공부를 시작했다.

1642년(인조 20) 식년시(式年試)에 생원(生員)이 되었으며, 장현광을 임고서원(臨皐書院)에 입향(入享)하는 데 힘썼다.

1652년(효종 3)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除授)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1655년(효종 6)에는 여헌 선생이 살았던 부지암정사(不知巖精舍)를 관리하는 일을 하였다.

이후 정치에는 뜻을 두지 않고 스승인 장현광의 학문적 업적을 널리 알리는 추숭사업에 매진하면서 지역 문인들의 결속에 앞장섰다.

장학이 여차정을 짓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던 1660년 즈음에는 당시의 인동부사를 몰아내는 일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의금부에 투옥되었다가 충북 보은 지역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다.

8개월 동안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장학은 세상일에 뜻을 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여차정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장학은 우명(羽溟), 우영(羽瀛), 우운(羽澐), 우기(羽沂), 우점(羽漸) 등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장우영(張宇瀛)은 무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경상좌도수군절제사에 이르렀다.

여차정 배롱나무는 남파 장학이 여차정을 짓고, 손수 심은 나무라고 한다.

ㄱ자형 건물인 여차정 퇴칸 바깥쪽에 정성껏 마련한 화단에 서 있다. 

300년 넘게 옛사람의 숨결을 지켜온 배롱나무는 높이가 5m나 되고, 가슴높이 둘레는 1.6m쯤 된다.

배롱나무로서는 오래 살아온 나무이기도 하고, 규모도 무척 큰 나무에 속한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르기보다는 옆으로 넓게 펼치는 배롱나무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여차정 배롱나무는 앞마당에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며 여전히 선산 구미 유학자들의 전통과 이를 지키기 위해 애써온 옛사람들을 되새겨보게 한다.

<구미 임수동 여차정 배롱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5-3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9. 24.
·나무 종류 배롱나무
·나이 330년
·나무 높이 5m
·둘레 1.6m
·소재지 구미시 임수동 331
·위도 36.118584, 경도 128.39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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