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문정동 향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영주 문정동 향나무는 조선시대의 문인 박승임이 살아온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문정동 향나무는 마을 안쪽 삼락당(三樂堂)으로 불리는 고택 앞에 있다.

근처 박승임 시비(詩碑) 뒤에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보호수이고, 그리 크지 않은 나무지만 마을 사람들이 나무 주위에 울타리까지 쳐놓았다.

향나무를 아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은 삼락당 앞에 서 있는 향나무가 마을 선조이자 자랑인 박승임(朴承任:1517~1586)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라고 말한다. 

영주 문정동 향나무는 높이가 4m 정도, 가슴높이 둘레가 1.4m 정도 된다.

마을에서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선조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향나무는 소중하다.

그래서 울타리까지 쳐놓고 보호하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가지는 인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문정동 향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시내의 남서쪽에 있는 문정동(文亭洞)은 반남박씨(潘南朴氏)의 집성촌이다.

마을 출신 인물 가운데 가장 먼저 꼽히는 사람은 조선 전기에 활동한 문신 소고(嘯皐) 박승임이다.

박승임은 스물세 살인 1540년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정자, 홍문관저작, 성균관직강, 예조정랑 등에 올랐는데, 양재역벽서사건 뒤에 윤원형(尹元衡) 일파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명종 때에 현풍현감으로 부임했다.

이어 경상도재상어사, 풍기군수, 진주목사 등을 지냈으며 선조 2년인 1569년에는 동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밖에 여러 벼슬자리를 거친 뒤, 1586년에 영주 문정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인 그는 문장에도 뛰어나 당대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성리유선(性理類選)', '소고집(嘯皐集)'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영주 문정동 느티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문정동 느티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문정동 느티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주 문정동 느티나무는 박승임 시비(詩碑) 바로 뒤에 서 있다.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시비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마을을 상징이자 이정표였다.

문정동 느티나무는 수령이 350년 정도 되고, 높이 20m 정도에 가슴높이 둘레가 4m에 이르는 아름다운 나무다.

마을 어귀에 서서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나무다.

2017년 박승임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문정동 마을 어귀, 크고 잘생긴 느티나무 앞에 그의 시비를 세웠다.

시비에는 칠언율시 ‘卽事(즉사)’가 단정하게 새겨져 있다.

즉사는 즉흥시를 말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가 직금체(織錦體)로 쓰여 있다는 것이다.

직금체는 회문(廻文)이라고도 하는데 거꾸로 읽어도 뜻이 통하는 시를 말한다.

문학적 재능이 있고 문장에 능통해야 쓸 수 있다고 한다. 

문정동 향나무와 느티나무는 마을은 물론, 자랑스러운 선조 박승임의 문학적 향기와 정신적 유산을 지키는 나무이고, 소중하게 보존해야 하는 나무다.

<영주 문정동 향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6-2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10. 26.
·나무 종류 향나무
·나이 400년
·나무 높이 4m
·둘레 1.4m
·소재지 영주시 문정동 63-1
·위도 36.797109, 경도 128.616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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