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수성리 은행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장산서원 옛터에 서있는 수성리 은행나무는 향나무와 더불어 여강이씨 옥산문중의 수호목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851번지 장산서원(章山書院) 옛터에는 장산서원 유허비와 더불어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향나무가 오랜 세월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수령 470년의 수성리 은행나무는 나무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4.1m이다.

1780년 장산서원 건립 때 심은 기념수라는 얘기도 있고,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심었다는 얘기도 전해져 온다. 

은행나무 위 가까운 곳에 서있는 향나무 또한 수령 470년을 자랑하는데 나무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2.7m 정도의 영천 산림유전자원 보호수이다.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여강이씨 옥산문중 후손들이 수성리 은행나무와 향나무를 찾아와 주변 잡초를 제거하고 ‘문중 후손들의 번영’을 비는 제사를 지낸다.

마을주민들도 이 나무들을 소중히 여기며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하고 마을의 번영을 기원한다. 

영천 수성리 향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장산서원은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1516~1568)을 추모하기 위해 영천군 임고면 수성리에 창건한 서원이다.

이전인의 위패를 모시고 선현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2006년 11월에야 후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런데 장소를 옮겨 장산마을 뒤 위용을 자랑하는 천장산과 도덕산, 자옥산 너머인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터를 잡았다.

묘우는 선계묘(善繼廟), 강당은 지습당(智習堂), 동재는 심고재(尋古齋), 서재는 지사재(志思齋), 삼문은 초요문(超邀門), 그리고 경각(經閣)과 관리실이 있다.

2007년 ‘경주시건축상’을 수상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천 수성리 은행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잠계 이전인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일평생 혼신을 다해 아버지를 모셨다.

“잠계가 없으면 회재가 없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전인의 일생은 오직 아버지 봉양이었다.

이언적 생존 시 언제나 옆에서 봉양하며 가르침을 받았고, 부친이 남긴 시와 문을 모아 '회재문집(晦齋文集)'을 편찬했다.

회재 이언적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전인의 묘와 영전재(苓田齋)는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영전마을에 있다.

잠계 이전인은 천성이 온아하고 성효가 지극하며 10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강학 수업했으며, 21세 때 서천잠(誓天箴)을 지어 “차라리 성인을 배워 미치지 못함이 있더라도 한 가지 기예(技藝)나 선(善)으로 이름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라며 진실한 학문에 전념하고자 했다.

부친 이언적이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로 유배를 갈 때 따라가서 7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모셨고, 유배지에서 별세했을 때는 홀로 수천 리 길의 고향인 경주까지 유해를 운구해 장례를 치렀다.

영천 수성리 향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천 수성리 향나무.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시묘살이 삼 년 후에는 지극정성으로 효심을 다해 아버지의 뛰어난 학행을 세상에 널리 알려 훗날 영의정에 추증되어 명종 때 문묘에 배향되고 동방오현에 이르게 되었다.

퇴계 이황 선생이 “잠계공은 모습과 언행이 부친과 흡사하고 출중하다”고 평하며 ‘잠계’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아버지의 효를 본받은 그의 아들 구암(求菴) 이준(李浚:1540~1623)과 치암(癡菴) 이순(李淳: 1544~1580)의 도움으로 시서 등 많은 글을 ‘잠계집(潛溪集)’에 남겼고, 사후 통훈대부(通訓大夫)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었으며 지금까지 장산서원(章山書院)에서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향은 매년 3월 초경일(初庚日)에 행한다.

잠계 이전인의 흔적은 독락당 입구의 기적비와 후손이 사는 독락당, 약쑥밭 등에 남아있다.

영천 수성리 은행나무는 이처럼 효심을 기억하면서 오래도록 마을의 수호목으로 우뚝 서 있다.

<영천 수성리 은행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99-17
·보호수 지정 일자 1999. 10. 7.
·나무 종류 은행나무
·나이 470년
·나무 높이 15m
·둘레 4.1m
·소재지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 851
·위도 36.053126, 경도 129.11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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