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이전의 ‘와리 제국’, 환각제 맥주 배급 통해 통치자 권위 세워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현대 시대에 나라를 이끄는 최고 통치자의 리더십은 일반적으로 피지배층인 국민으로부터의 존경과 민주주의라는 정치 시스템을 통해 얻어진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1000여년 전 고대 페루 와리 제국(Peruvian Wari Empire)의 통치자들은 국민들을 원활히 통치하고 리더십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환각성 식물의 종자와 맥주를 사용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25일(현지시간) 어스닷컴(Earth.com)이 보도한 내용이다.

‘환각제 맥주’를 무기로 리더십 관계 유지해

와리 문명(Wari Culture)은 잉카제국이 생기기 전인 AD 700년경에 번창했던 문명으로 모체(Moche) 문명과 잉카제국으로 이어지는 시간적 연결고리이다.

잉카 제국 이전에 존재했던 '와리' 제국은 환각제를 섞은 맥주를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무기로 나라를 통치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 Science.org]

이 문명은 잉카문명보다 500년이 앞선 AD 600~1200년 사이 안데스 산맥 일대 페루의 중부 산악지방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중부 해안 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 전체를 통일한 최초의 대제국이다. 그러나 1100년 무렵부터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1200년경 알 수 없는 이유로 멸망했다.

와리 문명의 유적은 지난 2008년 페루 고고학 팀에 의해 치클라요(Chiclayo)에서 22km 떨어진 세로 파타포(Cerro Patapo) 유적지에서 와리 문명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가 발견됐다.

미국 칼라일에 위치한 디킨슨 대학, 뉴욕의 로체스터 대학, 그리고 캐나다의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의 공동 연구팀은 퀼카팜파(Quilcapampa)에 위치한 와리 제국의 지도자들이 나라의 축제 기간 치차(chicha)라고 불리는 맥주와 같은 발효 음료에 환각성 씨앗을 첨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맥주에 환각제를 넣은 이 강력한 칵테일은 시민들이 와리 제국의 정치 지도자를 마약 공급자로 존경하도록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이 연구를 이끈 디킨슨 대학의 고고학자 매튜 비워(Matthew Biwer) 교수는 "이것은 정치와 환각제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은 환각제 사용을 소수의 선택된 사람에게만 사용하고 엄격하게 통제해 온 왈리 이전 문명이나 이후 문명인 잉카 제국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맥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잉카 제국의 경우 맥주의 대량 사용을 강조했지만 연회나 축제에서 빌카(vilca)와 같은 환각제의 사용을 엄중히 보호해 왔다”고 설명했다.

예부터 사용된 ‘빌카’, 환각 효과 높이기 위해 알코올에 섞어

연구팀의 이러한 추정은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유적지 주변의 항아리, 컵, 빌카 씨앗, 식물 유적에 근거한 것으로 대규모 양조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증거이다.

빌카 씨앗은 4000년 이상 다른 남미 문명만이 아니라 이웃한 티와나쿠(Tiwanaku)에서도 일반적으로 사용돼 왔다.

와리 문명이 술을 곁들인 연회를 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지만 환각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알코올과 혼합해 이용했다는 것은 이번이 첫 연구다.

와리 문명의 통치자들은 옥수수 낟알 또는 다른 곡물을 빻아 끓인 뒤 발효시킨 술 ‘치차’에 빌카 나무 씨앗을 혼합했다. 그리고 연회를 열어 이 술을 사람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이는 와리 문명이 연회 및 환각제를 탄 술 등을 통해 부족 간의 사회적 연결을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환각제를 탄 술을 제공하는 것은 와리 지도자들이 사회, 경제, 정치적 권력을 보여주고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연회를 연 사람들의 권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은혜를 갚을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튜 비워 조교수는 “와리 문명 초기 당시 환각 성분을 가진 나무의 씨앗은 사제와 같은 일부 사람들만 독점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후 빌카 나무 씨앗을 섞은 술을 여러 사람에게 제공함으로써 행복감과 영적인 감각을 경험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빌카를 혼합한 맥주는 지도자들이 그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복제를 할 수 없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높은 지위를 정당화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결과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고고학 학술지인 ‘저널 앤티쿼티(Journal Antiquity)’ 최신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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