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20)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아마 화산폭발과 지진을 제외한다면 인류에게 불어 닥치는 대부분의 자연재해는 바다라는 거대한 대양(大洋)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풍, 허리케인이 그렇고 폭우와 폭설, 그리고 폭염과 같은 이상기후도 대양의 분노 때문에 생기는 자연재해다.

바다는 한 용기(容器)에 갇힌 거대한 연못이나 호수가 아니다. 강물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때로는 평화롭게 너울너울 넘실대며 흘러가는가 하면, 때로는 끓어오르는 세찬 분노와 함께 광기를 발산하며 흐르기도 한다.

자연재해 대부분은 해류의 변화에서

바다에는 이처럼 살아 있는 물길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해류다. 과학적으로 정의할 때 해류는 바람과 해수면의 마찰이나 해수의 밀도 차로 생기는 바닷물의 이동 현상을 말한다. 바다와 대기는 에너지와 물질과 운동량을 주고받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해류의 이동을 미리 감지하는 일은 앞으로 일어날 자연재해를 예방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준다. 또한 기후변화를 판별하는데 있어서도 해류이동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해류, 주로 심층해류의 이동을 감지하는데 방사선은 커다란 역할을 한다.

Oxford University
바다는 용기에 갇힌 거대한 연못이나 호수가 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이 일정한 흐름이 있다. [사진=Oxford University]

해류에 대해 약간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해류는 표충해류(surface layer current)와 심층해류(deep sea current)로 나눌 수 있다.

해수면 위에서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부는 바람과 해수면의 마찰에 의해 바닷물이 이동하게 되는 것을 표층해류라고 한다. 바람의 영향으로 만들어 지는 해류이기 때문에 해면 근처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무역풍과 편서풍이 지구 규모의 표층해류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바람이다. 표층해류 중 난류는 따뜻한 적도 해역의 바닷물을 고위도 해역으로 이동시켜 추운 지방의 기온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게 해준다.

한류는 차가운 고위도 해역의 바닷물을 저위도 해역으로 이동시켜 열대지방의 기온이 더 이상 높아지지 않게 한다.

이에 반해 바다 밑 깊은 곳에서 흐르는 해류를 심층해류라고 한다. 이 해류는 수온과 염분의 변화에 따른 밀도의 차이로 생긴다.

남극은 주변 해역의 결빙 작용으로 주변 해역보다 높아진 염분 때문에 밀도가 높다. 주요 냉각작용에 의해 주변보다 낮아진 수온에 의해 생기는 높은 밀도의 해수는 각각 대서양의 남북 고위도에서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북극은 해류이동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해수들은 심층수로서 대서양의 적도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흐르게 되고, 남극해(남빙양)의 순환류를 통하여 대서양만이 아니라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결되어 지구 전체의 열을 균형 있게 배분해준다. 이 심층해류가 바로 바다의 기운을 장악한다. 그리고 기후변화, 또는 이상기후를 일으키는 주인공이다.

예를 들어 위도가 같은 미국의 보스턴과 로마의 겨울 온도가 차이가 나는 것은 걸프 해류 때문이다. 보통 걸프 해류는 열대지역의 열을 흡수한 뒤 미국과 캐나다의 동부해안으로 이동하여 공기를 덥게 하기 때문에 이 지역의 온난화를 가져온다.

북대서양풍이 동쪽으로 불면서 대부분의 열은 유럽으로 이동한다. 이에 따라 로마는 겨울에 보스턴보다 섭씨 2도 정도 더 따뜻하다. 그러한 열 효과가 없다면 북반구의 걸프 해류는 더 차갑고 밀도가 높아져서 열염순환(熱鹽循環, thermohaline circulation)을 하게 된다

열염순환은 밀도차이에 해류의 순환을 말한다. 심층순환, 또는 대순환(大循環)이라고도 한다. 그린란드(Greenland) 부근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대서양에서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거대한 열염순환 해류를 대양 대순환 해류(Oceanic Conveyor Belt)라고도 부른다.

열염순환은 그린란드에서 바닷물이 심해로 가라앉으면서 평형 유지를 위해 멕시코 만류가 북극으로 올라와 북극이 너무 춥지 않도록 하고, 태평양으로 들어간 해류는 적도 부근의 기온이 너무 뜨겁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북극해, 온난화로 민물이 몰려들어 밀도가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민물이 계속해서 밀려들어 북극해 바닷물의 밀도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

또한 침강류(descending current)가 줄어들어 해류가 계속해서 약화되고 있다. 학자들은 이 해류가 약화되면 지구기후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이 변화무쌍한 해류의 이동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깊은 수심과 어두운 심해, 시시각각 변하는 변화무쌍한 해류와 조류 등으로 인해 인류가 바다에 가까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명탐정 방사선이 그 문제를 도와줄 수 있다. 바다와 인류가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다. 방사성동위원소 추적자 기술을 통해 우리는 해류가 어디에서 어디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반적으로 바닷물의 움직임은 바다 위를 지나는 바람, 온도와 염도가 다양한 물들이 지니는 밀도의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

저위도 지역에서 가열된 물은 극지방으로 이동하고, 이후 다시 깊은 물 속으로 흘러 들어가 저위도 지역으로 다시 이동하게 되면서 순환이 반복된다.

예기치 않은 해류의 이동은 자연재해를 일으킨다. 방사선을 이용하면 해류 이동을 감시할 수 있다. [사진= Natiobal Geographic Society]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해류를 추적해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러한 해류의 순환은 해안선의 지형이나 특별한 기후 조건들 때문에 무척이나 복잡해 정확히 파악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 해류를 파악하기 위한 준비단계는 바닷속의 모래에 방사성동위원소 추적자를 섞는 것이면 족하다.

이후 모래가 바다에 휩쓸려가면서 시간에 따른 모래 이동 상태를 측정하면 해류의 움직임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은 항만을 설계할 때에도 무척이나 유용하게 쓰인다. 모래 뿐만 아니라 자갈들의 이동상태도 점검할 수 있다. 

추적과정에서는 방사성동위원소 트리튬(Tritium, 3중수소)과 탄소-14가 많이 사용된다. 해수면 혼합과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특히 유용한 방사성 동위원소다. 동위원소를 사용한 수많은 분석연구를 통해 해양순환 패턴에 이해가 가능하게 됐다.

또한 원전 재처리시설에서 발생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재처리시설에서 발생하는 동위원소들은 각기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라아그 재처리시설에서는 안티몬 125(Antimon-125)과 트리튬 등이 주로 나온다.

반면 영국의 셀러필드 재처리시설에서는 세슘 137(Cesium-137)이라는 동위원소가 주로 나온다. 이러한 내용을 참조하여 여러 지역의 바닷물을 채집해 분석해 나오는 동위원소들을 비교해본다면, 그 지역의 해수가 프랑스 라아그 지방 쪽에서 왔는지, 영국 셀러필드 지방 쪽에서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해류가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이동에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지도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해류의 이동 통로를 체크함으로써 나중에 큰 해양 오염이 발생했을 때 다음 경로를 미리 체크하여 오염의 확산을 막을 수도 있다.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푸른 바다! 바다는 수많은 생물들이 탄생한 지구 생명체들의 근원이자 미래 자원들이 심해 깊숙이 묻혀 있는 인류 미래를 위한 무한한 보고이다. 옛날부터 바다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중세 유럽시대에 바다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발견하고자 했던 탐험가들의 활동이 왕성했던 것도, 그리고 지금 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 바다로 나아가는 것도 결국은 아마 바다를 통해 새 희망과 비전을 찾고자 하는 데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처럼 방사선은 해수의 흐름과 오염도를 파악하기 위한 지표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자연재해를 미리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해양생태계 지킴이로도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바다에서 펼치는 방사선의 역할은 끝이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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