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24)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북미 대륙의 조상을 둘러싼 논쟁은 자주 거론됐다. 일부 부수적인 논쟁이 있었지만 북미 대륙의 조상이 베링 해협을 건너간 아시아인이라는 것은 학계의 오래된 통설이다.

그러나 이에 반박하는 주장도 항상 제기돼 왔다. 유럽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바로 케네윅인(Kennewick Man)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케네윅인은 유럽인이 아니었다. DNA 조사결과 케네윅인은 북미 대륙의 원주민과 거의 비슷했다.

결국 “유럽인이냐, 인디언이냐?”라는 대립되는 주장을 놓고 20년에 걸친 논쟁은 DNA지문과 방사성동위원소라는 과학에 의해 조용히 막을 내렸다.

“케네윅인은 유럽인의 후손이다?”

캐네윅 맨은 방사성동위원소와 DNA 조사결과 유럽인이 아니라 아시아 몽골계 출신이라고 밝혀졌다. [사진= Wikipedia]

1996년 7월 28일 2명의 젊은이가 더위를 피해 워싱턴 케네윅 주변 콜롬비아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우연히 강바닥에 있던 인체 유골에 발부리가 걸렸다.

그들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당시 유명한 인류학자인 제임스 채터스(James Chatters) 박사에게 연락했다.

두개골에서 특이한 점을 즉시 알아챈 그는 그 주위를 물색했다. 유골 위치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 두개골 전체의 상당 부분을 찾아냈다. 이른바 ‘케네윅인’이 발견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골 조각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통한 연대기분석을 시행한 결과 케네윅인이 8500년 정도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공개되면서 인류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메리카 대륙 북서부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유골이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채터스 박사는 두개골의 특징을 조사한 뒤 죽을 때 나이는 45세 정도이며 유럽인의 후손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약 1만2000년 전 베링 해협을 통해 건너온 사람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다는 가설을 완전히 뒤집을 수 있는 폭발력이 아주 강한 것이었다.

콜럼버스와 바이킹 이전에 유럽인들이 살았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오기 전, 그리고 콜럼버스와 바이킹이 신대륙을 발명하기 수천 년 전에 유럽인과 닮은 사람들이 거기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니면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 유럽인과 활발한 교류를 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또 조금 비약해서 생각하자면 유럽인이 인디언 원주민을 강제로 몰아내 아메리카 대륙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주인이 유럽인이라는 주장도 될 수 있다. 이것은 인류문명사적으로도 중요한 논란거리였다. 만약 유럽인이라면 말이다. 

우연히 발견된 8500년 전 유골을 놓고 무려 20년간 지속된 '북미 대륙의 조상은 누구인가'에 대한 논쟁을 종식하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케네윅인 유골의 DNA가 유럽인의 것이 아니라 현대 북미 원주민의 DNA와 유사하다는 결론이다. 다시 말해서 인디언의 DNA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DNA지문이 논쟁을 종식시켜

당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덴마크 과학자들은 DNA 분석을 통해 이 유골의 게놈이 유럽인의 것과는 다르며, 현대 북미 원주민의 것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결론지었다

연구팀을 이끈 코펜하겐 대학의 유전학자인 에스케 빌러슬레브(Eske Willerslev)교수는 "케네윅인의 유골은 유럽인과 무관한 게 확실하다"고 지적하면서 "현대 북미 원주민의 DNA와 가장 가깝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케네윅인 게놈은 어떻게 사람들이 북미대륙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믿고 있다.

또한 북미대륙을 발견하기 앞서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을 침입한 적은 없었으며, 이주민들은 신대륙에서 다시 남아메리카와 북극으로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법적인 공방 끝에 2005년에야 연구 시작돼

케네윅인 유골이 발견된 것은 1996년의 일이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8년이 지난 2005년부터다. 고고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과학적인 이유로 유골을 자세히 연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디언 원주민들은 초기 선조들에 관련된 것은 존중해야 하며 과학자들의 손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손상을 원치 않는다며 그러한 연구를 막기 위해 진지한 법적 캠페인을 벌였다.

케네윅인의 유골을 둘러싸고 이러한 법적인 줄다리기는 미국 대법원에서조차 뚜렷하게 해결할 수 없었다.

원주민들로부터 겨우 허락을 받은 것은 스미스소니안협회(Smithsonian Institution)의 신체인류학자인 더글러스 오슬리(Douglas W. Owsley) 박사였다. 오슬리 박사 연구팀은 670페이지에 달하는 연구보고서를 책으로 출간했다.

한편 유골을 처음 접한 채터스 박사는 유골의 주인공을 백인(Caucasian)으로 묘사했으며, 유골의 구조를 바탕으로 얼굴 모습을 재현했다. 

유명한 영화배우 패트릭 스튜어트(Patrick Stewart)와 닮은 꼴이었다. 그는 나중에 케네윅인이 유럽인이라는 주장을 철회했다.

그러면 유골의 법적 소유주는 누가 되어야 할까? 댄 뉴하우스(Dan Newhouse) 하원 의원은 과학적 연구가 끝났으니 유골이 발견된 콜롬비아 강 유역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