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혈통인줄 알았는데 후지산 줄기” 비판일면 어쩌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18일 함남 함주군 연포온실농장 착공식에 참석해 일제 렉서스 SUV 선루프로 상체를 내민 채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 】 탈북 인사들의 말을 빌리자면 북한에서 가장 혐오하는 국가는 일본, 미국, 한국, 이스라엘 정도의 순서다. 어릴 적부터 반일‧반미 교육에 ‘남조선’에 대한 경각심을 배우고,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의 ‘포악성’을 체득토록 한다는 얘기다.

일본이 부동의 1위를 기록하는 건 35년 일제 침략과 함께 김일성의 이른바 ‘항일 무장투쟁’ 역사를 교양‧선전하기 위한 방책이다. 한반도 분단과정에서의 미국 책임론과 6.25전쟁 개입을 엮어 ‘미제국주의자의 본색을 잊지 말자’는 캠페인이 이어진다. 북한은 김일성 국가주석을 “한 세기에 두 개의 제국주의를 타승(打勝, 때려 이김)한 위인”으로 찬양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반일의 체제에 이상조짐이 감지된다.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나타난 내밀한 기류다. 그 상징은 바로 김정은의 렉서스다.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이나 지방의 협동농장, 군부대 등을 방문할 때 렉서스 차량을 이용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이런 모습은 보란 듯이 노동신문에 실리고 조선중앙TV에 방영되는 건 물론이고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영상이 외부로 공개된다.

김정은이 애용하는 렉서스는 최고급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LX570이다. 토요타의 프리미엄 라인인 렉서스 최고급 기종인 LX570은 1억1000만 원 이상의 가격인데, 김 위원장 전용차량의 경우 편의시설과 안전‧경호 등 특수설비가 갖춰졌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0년 8월에는 김 위원장이 수해를 당한 황해북도 은파군 대청리를 돌아보면서 이 차량을 직접 운전하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 나왔다. 당시 관계자들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김 위원장이 길을 나섰다는 점으로 볼 때 바퀴가 빠질 수 있는 험한 환경이라 SUV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렉서스 사랑은 올해도 이어져 지난 2월 18일 열린 함경남도 함주군 연포온실농장 착공식에도 등장했다. 당시 김정은이 선루프에 상체를 내밀고 환호에 답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밀려둔 군중에 렉서스 차량이 감싸이면서 마치 시위장면과 유사해졌고, 경호 인력이 진땀을 빼는 모습도 드러났다.

2020년 8월 초 수해를 입은 황북 은파군 대청리에 직접 렉서스 SUV를 몰고 나온 김정은 [사진=조선중앙TV 캡처/연합뉴스]

렉서스를 애용하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모습이 주민에게는 반일을 세뇌시키면서 자신들은 일제 차량의 안락함을 즐기는 이른바 ‘내로남불’ 차원에서만 거론될 사안은 아니다. 아직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차량이 일제 브랜드라는 걸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의 생모 고용희가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란 점과 고씨 일가의 친일 행적이다.

고용희의 부친인 고경택은 제주 출신으로 일제시기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일본 군수업체인 히로타 군복공장의 간부로 일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항일 투쟁을 했다는 김일성 세력을 토벌하는 일본군의 군복을 김정은 위원장의 외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고경택은 해방 이후 일본에 머물다 가족과 함께 북송선을 탔고,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이던 고용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28년간 함께 했다. 2남 1녀를 낳았는데 첫째인 김정철과 둘째 정은, 셋째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직후 생모 고용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노동신문에 ‘평양의 어머니’를 띄우는 시를 싣고, 간부들에게 제한적으로 고용희의 생애를 다룬 기록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단됐고, 집권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생모에 대한 우상화 움직임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김정은과 북한의 선전‧선동가들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당장 우상화를 서두르다가는 김정은을 두고 “백두혈통인줄 알았더니 후지산 줄기”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애기다. 또 “인민에게는 반일을 먹이고, 자기들은 일제를 즐긴다”는 불만도 제기될 수 있다.

이영종 전략문화연구센터 연구위원 

북한은 그동안 한국이 친일청산에 소홀했다는 점을 대남비난의 주요 포인트로 삼아왔다. 우리로서는 아픈 구석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고, 김일성 일가‧친지 가운데서도 친일 행적을 벌인 인물이 알려져 곤혹스러운 입장이 됐다.

이런 북한이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을 둘러싼 친일 논란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흥미롭다. 렉서스는 탄 김정은의 모습은 반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북한 체제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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