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해부해보는 男子 女子, 그리고 女子(1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늙어서 잠 안 온다고 걱정하지 말라. 자 안 온다고 병원 정신과를 찾고 수면제를 복용하며 설치는 것은 정말 ‘구닥다리’ 노인이다. “늙으면 잠이 없다”는 것은 진리다. 요란하게 소동을 부릴 필요가 전혀 없다.

나이가 들면서 잠이 줄어드는 것은 생체리듬의 한 사이클이다. 따라서 잠이 적다고 해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할 필요없다. 오히려 자주 졸리는 것이 병일 수 있다.

건강한 성인들도 수면 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게 정상

"늙으면 잠이 없다"라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속에는 과학적 진실이 숨어 있다. 수면 장애가 없는 건강한 고령 성인들의 경우 건강한 성인들에 비해 잠을 덜 자도 낮 동안 덜 졸린다.

영국 서리(Surrey)대학에서 수면학을 가르치고 있는 디직(Derk-Jan Dijk)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의 연구결과다. 정상적인 수면 시간을 8시간으로 볼 때 실제로 잠은 자는 전체 시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크게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늙은면 잠이 없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이것은 어떤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아주 자연적인 건강한 생체리듬의 신호다. [사진=Wikipedia]

"장년층 성인에 비해 고령 성인(60세 이상)들은 약 20분, 젊은 성인보다 약 23분 이상 실제 수면시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고작 20분에 불과하냐고? 물론 짧은 시간이다. 물론 별 차이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완전 숙면에 들어간 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성인 11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고령 성인들은 또한 수면 중에 잠을 깨는 횟수가 점점 증가했다. 또한 깊은 잠을 자는 시간과 서파수면(徐波睡眠 Slow-wave sleep)시간은 크게 줄어들었다.

서파수면은 뇌파가 완만하여 거의 꿈을 꾸지 않는 숙면 상태를 이야기한다. 아주 깊은 잠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잠은 성장호르몬과 관련돼 있다.

늙으면 깊은 잠인 서파수면 줄어들어, 낮잠도 거의 없어

고령층의 경우 깊은 잠의 시간도 25세 이하 젊은 층에 비해서 20%가 줄어들었고 35세 이상 된 장년층에 비해서는 5% 정도 짧았다.

원래 성장호르몬은 수면 의존성 호르몬이다. 잠이 든 후 여러 수면단계 중에서 깊은 잠이라고 할 수 있는 서파수면이 나타날 때 집중적으로 분비된다. 청소년들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성장호르몬이 주로 분비되는 시간은 오후 11시~오전 3시다. 따라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은 청소년의 발육에 좋지 않다.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면 시간이 줄고 수면의 연속성이 저하됨에도 불구하고 고령 성인 들은 젊은 성인들보다 낮 동안 졸림이 덜 하다.

연구팀은 "고령자들의 경우 밤 동안 노화로 인해 수면의 질이 저하됨에도 불구하고 낮 동안 졸림이 덜 하다"고 설명하면서 "밤에 수면이 부족하다고 해서 낮에 졸리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 고령자의 경우에는 비정상"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팀은 또한 "고령이건 젊은 사람이건 간에 낮 동안에 졸린다면 수면 장애를 앓고 있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탓이기 때문에 의료진의 관찰을 받을 필요가 있다"가 강조했다.

청소년기에는 오히려 많이 자야 성적 올라

그렇다면 한참 공부할 나이에 있는 청소년들은 어떨까?

"시험에 시달리는 학생들이여! 성적을 올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실컷 잠을 자라. 하늘이 무너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자라. 또한 부모들이여!, 자식이 성적이 쑥쑥 올라가기를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깨우지 말고 실컷 자도록 하게 하라. 잠을 많이 자야 성적이 올라간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이 또한 과학적 연구가 그렇다. 나이 들면 잠 없지만 청소년기는 성장기에 충분한 잠을 자야 한다. 그래야 모든 게 잘 풀린다.

요즘은 그런 말을 잘 안 쓰는 것 같다. 80년대만 해도 오당육락(五當六落), 심지어 사당오락(四當 五落)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멋진 고사성어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말로 주로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학생들이나 재수생들이 즐겨 쓰는 약간은 해괴망측한 사자성어(四子成語)다. 이 말에서 숫자는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당(當)은 합격이라는 말이고, 낙은 떨어 진다는 말로 불합격이라는 말이다.

해석하자면 5시간 자면 합격하되 6시간 자면 시험에 떨어진다는 말이다. 이보다 더 나가 사당오락은 4시간만 자야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불합격한다는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 입시라는 치열한 경쟁 사회를 대변해 주는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만 해도 이 이야기를 실지로 믿는 학생들이 많았다. 어떤 하나의 신념이었다. 그래서 책상 앞에 한자로 크게 이 글을 써놓고 졸릴 때마다 쳐다보면서 새로운 각오로 잠을 떨치려고 애를 쓰곤 했다.

청소년기에는 억지로 잠을 안 자는 것보다 충분한 수면이 성적 향상에도 좋다. 수면이 부족하면 오히려 생체리듬을 파괴해 비만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 Wikipedia]

필자도 입시를 앞두고 4개월 동안 달력에 5시간 반 이상 잔 날을 X, 덜 잔 날은 O표를 쓰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라면 차라리 약과다. 잠을 덜 자기 의해 소위 `잠 안 오게 하는 약`이 약방에서 버젓이 팔렸다. 일종의 각성제인 이 약은 공부를 한답시고 폼 재는 학생들에게는 필수품이었다.

어떤 부모는 잠을 덜 자게 하기 위해 커피를 자주 끓여 주기도 했다. 어쨌든 잠을 자는 시간과 합격은 반비례한다는 신념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은 청소년들의 경우 매일 한 시간 더 늦잠을 자면 성적이 놓아지고 무단결석도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자는 시간과 성적은 비례한다는 이야기다.

영국의 과학자들은 청소년들의 생체리듬이 성인보다 늦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6개월 동안 몬크서튼(Monkseaton)고등학교 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9시에서 10시로 1시간 늦추도록 했다.

그 결과에 대해 이 학교의 폴 켈리(Paul Kelly) 교장은 “등교 시간을 늦추자 지각은 8% 줄어들고 장기결석도 27%나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무엇보다 중등교육자격검정시험(GCSE)에서 영어와 수학 평균 성적이 1년 전에 비해 현저하게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를 이끈 옥스퍼드대학 신경과학자 루셀 포스터(Russell Foster)교수는 “생체리듬은 21세 무렵에 변하는데 그 전까지 아이들은 어른보다 생체리듬이 2~4시간 늦기 때문에 어른을 기준으로 일과를 시작하면 그 효율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요즘 청소년들은 과거와 달리 잠자리에 늦게 드는 경향이 있어 아침에 일찍 등교하게 하면 수면 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은 하루 최소한 9시간 정도 자야 하고 중요한 수업은 가장 정신이 맑은 오후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포스터 교수는 조언했다.

사실 수면 부족이 비만, 우울증, 기억력 감퇴 등을 유발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연구에서 밝혀졌다. 한편 이번 연구는 청소년의 생체리듬 시간이 어른보다 늦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실시 한 것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이제는 사당오락, 오당육락이 아니다. 9시간 자면 합격하고 8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구당팔락(九當八落)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잠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시간이다. 생체리듬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생체리듬이 무너질 때 신체에 이상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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