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33)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영화 같은 인생을 살다 간 IT의 천재 스티브 잡스.

56세기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거대한 천재를 둘러싸고 나오는 이야기는 세상이 시끌시끌할 정도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애플의 고공행진 속에서 말이다. 

역사를 통틀어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이 인종, 나이, 성별, 국가, 그리고 종교를 떠나 이렇게 오랫동안 커다란 뉴스로 다가온 적은 없다. 그만큼 그가 우리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일개 기업가로 떼돈을 번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애플의 간판 브랜드 매킨토시 개발팀을 격려하면서 남긴 이야기다. 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있다라는 말은 기업가를 넘어 철학자를 떠오르게 만든다.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이 녹아 들어 있는 명언이다.

사실 매킨토시라는 제품은 사라지고 있지만 매킨토시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지구촌 인류가 모두 영원히 기억할 흔적임에 틀림이 없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제품에 혼과 정열을 담아 강열한 흔적 남겨

그만큼 애플 제품에 자신의 혼과 정열을 담아 강렬한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그러면 창의 적인 아이디어와 그것을 추진할 때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스티브 잡스는 어떤 성격을 소유하고 있었을까?

성격유형검사(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융(Carl Gustav Jung)의 대표적인 이론인 심리유형론(Psychological Type)을 근거로 만들어졌다.

융의 글에 감동을 받은 미시건 대학 출신의 브리그스(Katharine Cook Briggs)와 딸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가 보다 쉽고 일상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동으로 고안한 자기 보고식의 성격유형 지표이다.

융은 인간행동이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매우 질서 정연 하고 일관된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 행동의 다양성은 개인이 인식하고 판단하는 특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융의 심리유형론의 요점은 각 개인이 인식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이 수집한 정보에 근거해서 행동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판단 기능)데 있어서 각 개인이 선호하는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MBTI에서는 이러한 인식 과정을 감각(S: Sensing)과 직관(N: Intuition)으로 구분하여 사물·사람·사건·생각들을 인식하게 될 때 나타나는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판단 과정은 사고(T: Thinking)와 감정(F: Feeling)으로 구분하여 우리가 인식한 바에 의거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들 간의 차이점을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을 사용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외향성(E: Extraversion)과 내향성(I: Introversion) 및 판단(J: Judging)과 인식(P: Perceiving)으로 구분하여 심리적으로 흐르는 에너지의 방향 및 생활양식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MBTI는 개인이 쉽게 응답할 수 있는 자기보고(self-report)식의 94개 문항을 통해 이러한 네 가지 양극적 선호 경향들이 합쳐져서 인간의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파악하여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심리검사다.

독창적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넓어

그렇다면 MBIT 검사로 볼 때 스티브 잡스는 어떤 유형일까? 전문가들은 그가 살아온 삶과 글, 그리고 어록 등을 참고 삼아 ENTP형으로 분류했다.

MBTI 검사에 따르면 이 유형은 민첩하고 독창적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넓고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 나타난다. 또한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추진하려는 의욕이 넘치며, 새로운 문제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달변이다.

한 가지 일에 관심을 가져도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찾아 나간다. 자기가 원하는 일이면 논리적인 이유를 찾아내는 데 능하다고 한다. 다소 맞아 떨어진다.

외향형(E)을 보자. 잡스는 불우하게 컸다.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보수적인 미국인 집안으로 생모인 조앤 심슨의 가족은 아버지 압둘파타 존 잔달리가 시리아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미혼모의 신분으로 잡스를 낳아 입양시켰다. 자라면서 외톨이로 지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서 TV를 보고 기계조작을 좋아했다. 말수도 적었고 또래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내향적인 성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고뭉치이기도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외향적으로 변했다. 그는 일을 하면 서 관련 CEO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어울려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말수도 더 많았다고 한다.

애플의 신화를 일군 스티브 잡스는 가장 창의적인 기업가로 꼽힌다. 그가 만든 제품에는 늘 철학과 미래의 비전이 녹아 있다. [사진= Wikipedia]

직관형(I)을 보자. 이는 육감 내지 영감에 의지하며 미래지향적이고 가능성과 의미를 추구한다. 그리고 신속하고 비약적인 속도로 일을 처리한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아이디어를 중요시한다. 씨를 뿌리면 나무가 아니라 전체적인 숲을 그리는 성격이다.

사실 잡스는 미래의 비전에 몰두했다.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에 주목하고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모방을 아주 싫어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모방 제품은 다른 회사들 보고 만들라고 해! 우리는 아니야! 이러한 사고 속에서 자신의 꿈을 하나하나 펼쳐 나갔다. 매킨토시, 아이팟, 그리고 아이패드가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비전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끝장 토론의 애호가 

사고형(T)을 보자. 진실과 사실에 주된 관심을 갖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며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냉철 한 판단을 내린다. 또한 옳고 그름이 확실하다.

자신의 재산의 상당량을 기부했지만 잡스는 아주 매몰찬 CEO로 알려져 있다. 서로 어울리기보다는 논쟁을 즐겼으며, 또 결론을 얻어야만 하는 그야말로 끝장 토론의 애호가였다.

글에서 나타난 내용을 보면 그는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직원들을 가차없이 해고하거나 무차 별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또 직원들을 천재와 바보 두 가지로 분류했다. 그러나 어느 날 천재인 그는 바보로 둔갑해 회사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많았다.

인식형(P)을 보자. 목적과 방향이 일괄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에 맞춰 나간다. 항상 자율적이고 융통성이 있다. 그래서 규율이나 통제를 견디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잡스는 별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었다고 한다. 그를 만나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약속을 잡을 수 없어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만나면 남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하고는 휙 사라져 버린다. 또 면도도 하지 않고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채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 판단형이라면 혼자 집에 있을 때를 빼놓으면 이런 무례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행복한 인생이란 자기 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타고난 기질대로 살다 가는 일이다. 스 티브 잡스의 천재적인 창의성은 ENTP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기 답게 사는 과정에서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과학기술, 그리고 모든 학문과 예술이 그렇다. 자기의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풍토에서 아름다운 싹이 틀 수 있고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잡스의 천재성은 바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러한 풍토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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