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거리 찾느라 스트레스...“상호감시와 비판에 죽을 맛”

지난 1월 평양에서 열린 청년전위 조직의 노동당 전원회의 관철 행사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최고위급 탈북‧망명 인사다. 그는 서울에 정착한 뒤 북한 전문가 그룹과 통일 문제를 놓고 토론하기를 즐겼다. 어느 날 한 박사가 “북한에 계실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황 전 비서는 “두말하면 뭐하나. 그건 총화지, 생활총화. 에고...그것만 없었어도 살만했을 텐데”라고 답했다.

김일성대 총장을 지내고 노동당의 국제담당 비서까지 지내 ‘주체사상의 실질적 창안자’로 간주되는 고위급 인사가 몸서리를 치는 총화는 무엇일까. 사실 2500만 북한 주민 모두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치러야 하는 총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제대로 알려진 적도 없다. 북한 전문가나 대북부처 당국자들도 구체적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 탈북민들도 좀체 이야기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생활총화’로도 불리는 총화는 한마디로 일정 기간 동안의 자기 말이나 행동 등에 대해 반성하고 직장이나 협동농장‧공장 등 조직 구성원 간에 서로 비판하는 과정이다. 문제는 일련이 과정이 모두 공개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동료나 상사, 선후배가 모여있는 자리에서 자기 스스로 잘못을 말하고, 상대방의 비행을 고발해서 대중토론과 책벌을 가한다.

북한은 토요일에도 직장이나 공장‧기업소가 근무를 한다. 매주 토요일 9시에는 어느 조직에서나 총화가 시작된다. 일정 규모의 조별 구성을 통해 먼저 개인이 돌아가며 스스로의 언행을 반성한다. 예를 들면 교실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관리해야 하는 데 먼지가 앉았다거나 규정된 청소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스토리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가 어떤 ‘방침’을 위반한 것인지 미리 찾아 밝히고, 원인과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해 상호 비판하는 과정도 꼭 거쳐야 한다. 대체로 1시간 30분 정도 안팎 총화 시간을 거친다는 게 탈북민들의 경험담이다.

일주일 주기로 하는게 보통이지만 특별한 경우는 더 자주하기도 한다. 인민보안성 예술인 출신 탈북 유튜버 한서희 씨는 “예술‧문화 분야의 경우 이틀에 한 번씩 총화를 했는데, 우인희 사건 때부터 이렇게 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 톱스타였던 우인희는 여러 유력 인사와의 부화(간통) 사건에 연루돼 공개처형 됐다. 한 씨는 “중앙기관의 경우 총화가 더 엄격하다. 지방의 경우는 대충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양은 어렵다”고 귀띔했다.

황장엽 전 비서는 총화의 치명적 문제점을 지적하며 “태어나서부터 자기의식이 있는 순간부터 스스로 잘못한 게 무엇인지 매 순간 신경 써야 하고 남들의 잘못을 주시하고 캐야한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면 사람이 뭘 하나 하려하다가도 ‘에잇, 꼬투리 잡히기 전에 그만두자’라며 포기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런 총화는 북한에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을 제외한 모두가 평생 겪어내야 한다. 결국 총화는 북한 70년 독재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만들어가는 통치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죽어야 벗어날 수 있는 총화의 공포는 목숨을 건 탈북 이후에도 트라우마로 남는다고 한다. ‘북한 독재정권 붕괴와 민주화’라는 꿈을 펼치려 망명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2년 전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망명객 황 전 비서. 그는 총화 없는 세상에서 영면하고 있을까. 생활총화에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이 하루빨리 그 굴레를 벗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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