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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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오늘날 데이터를 활용해 시민들이 살아가기 훨씬 더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스마트 도시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복잡한 교통문제를 해결하거나 화재 발생 위험이 높은 건물을 알아내어 재난을 줄이고자 한다던가, 아니면 안전한 환경을 위해 범죄 지도를 만드는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어느 길로 가면 더 안전한지 그리고, 살 집을 알아볼 때에도 어디가 훨씬 더 안전한 지역인지 단박에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데이터를 해석할 때 신경을 바싹 써야 한다.

실제로 영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10%는 부동산 값이 떨어질까봐 범죄 신고를 안한다고 답변했다.

만약 그렇다면 사소한 범죄가 일어날 경우, 범죄 신고가 안 된 지역은 범죄 지도에서 안전한 지역으로 표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범죄지도에서 범죄가 없다고 표시되는 지역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거나 범죄가 잘 신고되지 않은 두 성격을 동시에 지닐 수도 있다.

또 다른 예를 찾아보자.

심장수술을 하는 외과의사가 수술 성공률을 높여야 하는 미션을 받았을 때, 의사는 노력해서 정말 어려운 수술의 성공률을 높일 수도 있지만 진짜 어려운 심혈관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쉬운 봉합수술만 진행할 경우에도 수술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이를 별도로 심슨의 역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슨의 역설’은 각 부분에 대한 평균이 크면 전체 평균이 크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고려해야 하는 변수를 무시할 때, 범하는 실수이다.

이 경우에는 봉합수술과 심혈관수술이라는 난이도가 차이가 나는 변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전체성공률을 높이도록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경찰이 범죄를 덜 심각하다고 재분류하면 경찰의 실적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어느 지역에서는 범죄와 범법행위 두 단계로 이루어진 분류체계에서 범죄에 해당되는 죄목을 일부 강등시켜 범법행위로 분류함으로써 전년 대비 범죄는 13% 감소시키고 범법행위는 범죄의 두 배 가량 집계되게 만들었다.

이 때 경찰이 범죄가 13% 감소하였다고 발표해 버리면 그 내막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경찰이 너무 일을 잘하게 되었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 말이다.

이렇게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데이터로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진실을 감추는 행위 또한 늘어날 수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닻내림효과(Anchor Effect)를 생각해보면 숫자가 얼마나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데이터를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대다수 기업이나 정부가 행하는 바이다.

정부가 이렇게 데이터를 감추거나 왜곡하거나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터가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제시한 경찰의 사례이고 의사의 사례이다.

둘 다 데이터를 조작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여기에 힌트가 있다.

지표가 목표가 되면 그 때부터는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찰스 굿하트라는 영국 경제학자에서 유래한 ‘굿하트의 법칙’은 통화량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통화량 그래프가 종전과는 전혀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를 아주 쉬운 말로 설명하면 “척도(measure)가 목표(target)가 되는 순간, 더 이상 좋은 척도일 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캠벨의 법칙도 있다.

캠벨의 법칙은 “어떠한 정량적인 사회지표라도 사회적 의사결정에 더많이 이용될수록 더욱더 부패의 압력을 받으며 그 지표가 감시하려던 사회적 과정을 더욱 왜곡하고 부패시킨다”는 내용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데이터는 진실을 말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하지만 데이터를 믿고 데이터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람들의 속성 때문에 가장 위험한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종 목표를 정해놓고 도달하고자 하지만 목표가 되는 순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는 진실을 가려주는 용도로도 쓰일 수가 있다.

우리가 데이터 리터러시를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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