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1. 김동규 교수의 산문집 『사람이 온다』가 출간됐다.

부산 동명대학교 김동규 교수는 한양대에서 광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젊은 시절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고, 몇 권의 전공 서적을 간행했다... 이런 이야기는 책을 펼치면 그냥 알 수 있는 정보다.

특이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책 속에는 ‘애썼다. 친구야-하응백’이라는 꼭지가 있다.

이 글에서 김동규 교수는 “소설의 화자이자 작가 그 자신인 응백은 내 어릴 적 친구다. 우리집 뒷집 뒵집에 엄마와 둘이 살았다. 그와 내가 언제부터 친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마련해줬다는 그 집에 응백이가 이사 온 것이 갓난쟁이를 갓 벗어났을 때였고 아홉 살이 되어 동네를 떠났다. 그러니 아마 걸음마를 시작하고 말문이 트이면서부터 우리는 친구였으리라.”라고 했다.

이 진술은 진실이다.

그러니 김동규 교수는 내 친구임이 틀림없다. 아마도 내 생애 최초의 친구였을 거다.

내가 그 동네-대구 달성동 331번지-를 벗어나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때 대명동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그와 중·고등학교 때 만난 기억은 없다.

1979년 대학교 입학해서 나는 회기동에서 자취방을 얻어 자취를 했고, 동규는 한 달 정도 방을 구하지 못해 나하고 같이 살면서 한양대를 다녔다.

대학 신입생이 얼마나 바쁜가. 같이 살면서도 얼굴을 거의 못 봤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약 40년을 소식도 모르고 지내다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만나 이제는 연락은 하고 지낸다.

재작년인가 인사동에서 만나 술 한 잔을 하기도 했다. 아마도 서너살 때부터 5,6년간 거의 매일 만나는 동네 친구였고, 그로부터 40년 동안 안부도 소식도 없이 지냈건만, 막상 만나니, 서로 모르는 게 없는 ‘친구’라는 게 자연스럽게 확인이 되었다.

변한 거라곤 늙은 거밖에 다른 게 없었기 때문이다.

2. 김동규 교수의 에세이집에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시절의 회고담, 책을 읽은 독후감, 영화평, 일종의 기행문도 등장한다. 키우다가 입양보낸 강아지의 후일담도 등장한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김동규 교수가 일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어릴 때는 대구 달성동 골목에서 나하고 놀고 싸우면서 자랐다.

동규는 막내여서 집에서 귀여움을 받았고, 나는 외동이어서 더 존귀한 존재였다, 그러니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동네에는 ‘도영’이라는 동갑내기 주먹대장이 있었다.

일대일로 붙으면 도영에게 늘 당하기 때문에 동규와 나는 전략적으로 연합했을 가능성이 많다.

동네 쪼무래기들이 그렇게 합종연횡하며 동네를 시끄럽게 했다. 이후 동규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나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가 중학교 때 만난 참다운 스승 이야기는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1980년 대구에서 데모를 하다가 50사단에 끌려가 혹독한 시간을 몇 달 보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헤세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세례를 받은 청년이 그런 비인간적 폭력에 노출되면, 그 폭력의 근원을 미워하고, 그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일생을 노력하게 마련이다.

동규도 그랬다. 광고업계에 진출해서는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하다가 짤리고,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가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음을 알게 되고, 살기 위해 학교로 방향을 틀어 대학교수가 되고...

이런 일련의 삶의 행적은 우리가 소위 광주 5.18이후 민주화를 겪는 과정 속에서 살아온 79학번 60년생 지식인의 전형적인 행보다.

물론 60년대생, 79학번 중에서도 체제에 순응하여 개인의 출세와 한 몸 광영을 위해, 세상을 기만하며 온 몸으로 살아온 친구들도 많다.

하지만 동규는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비합리적인 것과 직면하면 싸우고 불쌍한 장면을 만나면 눈물을 흘리며 반듯하게 살아왔다. 염치(廉恥)를 아는 삶을 살아왔다.

3. 누구나 꿈을 꾼다. 그 꿈에는 개인적인 염원도 있고, 공동체적인 기원도 있다. 김동규 교수의 공동체적 꿈은 무엇일까? 그는 1969년 ‘유럽·일본 유학간첩단 조작사건’으로 고초를 당한 김판수 선생의 노래를 들으며 이런 진술을 한다.

“그의 노래는 희망이라는 것, 간절함이라는 것, 그렇게 50여 년 전 어두운 창살 안에서 심었던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내 가슴속에 친구들의 가슴속에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선생이 평생을 두고 포기할 수 없었던, 어떤 꿈을 나도 함께 꾸었으면 좋겠다.”

동규가 포기할 수 없는 그 어떤 꿈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은 이 책의 제목에 있다.

『사람이 온다』에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흔히 우리는 말한다. “저 사람은 사람답다.” “저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바로 그런 말을 할 때의 사람, 그 사람이 가득 차서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그런 세월을 동규는 꿈꾸는 거다. 세월호 침몰에 죽어간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 원인을 합리적으로 찾아내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메시아이며 억압받는 자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예수다. 그런 ‘사람’이 오기를 김동규 교수는 간절이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사람은 많다. 김동규 교수 자신도 그런 사람이다.

얼굴을 하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대다수의 사람은, 김동규 교수의 『사람이 온다』를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다.

이게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정신이고 ‘건전한’ 지식인의 상식이다. 그의 행보와 인문학적 지혜에 항상 우주의 빛이 함께 하길.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