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박균수(시인)】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시작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탈(脫) 나치화를 위해서’라고 말했다. 며칠 후,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이 쏟아지고 한국에서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네거티브 진흙탕 싸움이 절정을 향해 치닫던 어느 날, 『소멸의 산책』이라는 시집이 출간되었다.

책에 인쇄된 ‘펴낸날’은 2022년 2월 25일이었고 사소한 사건이었다.

『소멸의 산책』은 내 두 번째 시집이다. 나는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2019년에 첫 번째 시집을 냈다. 그동안 시집을 내지 못한 건 알 수 없는 치욕감 때문이었다. 2018년쯤 문득 책을 한 권쯤 내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는 게 싫어 나는 후배와 함께 새로 출판사를 등록했다. 해설도 넣지 않고 작가 소개도 넣지 않고 시만 50편 실었다.

의미 없다고 생각해 부(部)나 장(章) 구분 없이 가나다순으로 시를 배열했다. 치욕감이 남아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등단 22년 만에 첫 번째 시집 『적색거성』이 나왔다.

나는 중학생이었던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쯤 꿈꾸었던 게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회와 우주 전체에 관한 책을 내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무렵부터는 나올 때만 옮겨적는 느낌으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책을 꼭 내야 하는 건 아니었다.

2020년 어느 날 갑자기 그 책이 써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책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가 머릿속에서 막 쏟아졌다. 호흡이 긴 시여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옮겨적을 자신이 없었다. 고립된 공간을 찾아갔고 거기서 『소멸의 산책』 초고를 썼다.

그 긴 시가 이번 시집에 실려있는 「압둘카림 무스타파」다. 「압둘카림 무스타파」가 처음 떠오른 건 2004년이었다.

2003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여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고 2004년 4월, 제2의 도시 팔루자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벌였다.

팔루자는 인류 최초의 문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희생자의 70% 이상은 어린이를 비롯한 비무장 민간인들이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화면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고 고통스러웠다. 시가전의 지옥도가 펼쳐지는 팔루자 시내 한복판에서 쫓겨 다니는 꿈을 꾸다 영혼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 듯한 상태로 깨기도 했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시가 「압둘카림 무스타파」다. 이야기가 있는 시였고 주인공의 이름은 처음부터 ‘압둘카림 무스타파’였다. 그냥 처음부터 그랬다.

그 구상 전체를 작고하신 소설가 조해일 선생님을 비롯한 당시 같이 놀던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런 구상이 있고 주인공 이름은 ‘압둘카림 무스타파’라고. 나중에 주인공의 이름에 뭔가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겨났다.

‘지극히 인자하신 신의 하인’이라는 뜻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랍어는 전혀 몰랐다. 어찌어찌 수소문해서 당시 외국어대 아랍어과 교수님에게 그런 의미를 가진 무슬림 남자 이름을 여쭸다.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4개의 이름 중에 정확히 내가 원했던 의미의 놀라운 이름이 있었다. ‘압둘카림’이었다. ‘무스타파’는 ‘하미드’ 등과 함께 무함마드의 수많은 이름 중 하나다.

올해 책이 나왔으니 「압둘카림 무스타파」는 구상으로부터 책에 인쇄되기까지 18년 걸렸다. 첫 시집을 내는 데 22년 걸렸으니 오래 걸렸다고 할 수도 없겠다. 나는 미련해서 대체로 그렇게 늦된다.

『소멸의 산책』을 쓰기 위해 찾은 곳은 전라북도 부안에 있는 집이었다. 친한 후배가 태어나 자란 집이었고 후배의 부친께서 홀로 기거하시다 얼마 전 돌아가시고 비어있던 집이었다.

『소멸의 산책』 대부분은 그 집에서 썼다. 전에 따로 썼던 시들도 들어있는데 각 부분에 적절하다고 판단해서 넣었다.

초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이었다. 분량은 현재의 1.5배쯤 됐다. 초고를 읽혔던 사람들 대부분이 읽기 어렵다고 했다. 초고에서 난해한 부분을 빼고 의미 단위로 잘라 각각에 제목을 달고 순서를 다시 정리한 것이 『소멸의 산책』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소멸의 산책』을 생각하면 아쉽다. 전체적인 완성도도 아쉽고 들어낸 내용도 아쉽다. 오래된 구상을 얼마나 실현했는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당장은 49~50% 정도로 느껴진다. 썼으니 됐다.

우크라이나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고 있다.

신문과 방송으로, 가끔은 유튜브 생중계로 우크라이나 곳곳의 모습을 전해 듣고 본다.

2004년 팔루자 전투를 전해 듣고 보며 느껴졌던 감정이 재현된다. 팔루자에서 폭격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부모 옆에서 울던 아이들이 마리우폴에서 다시 울고 있다.

초고를 썼던 부안의 집은 특별했다.

후배의 부친께서 바로 얼마 전까지 생활하셨던 공간이라 집 안팎 모든 곳에 고인(故人)의 습관들과 흔적들과 군더더기 없고 단정하셨던 일생이 배어 있었다. 분위기와 느낌이 매우 특별했다.

그 집에서 초고를 완성하고 돌아와 몇 달 후에 『소멸의 산책』에 들어있는 시, 「부안」이 써졌다.

시집 전체를 그 집에서 쓴 것이니 처음 구상에는 없었지만, 그 집에 대한 시 「부안」을 시집에 넣는 일은 자연스러웠고 사소한 사건이었다.

고(故) 고중래 어르신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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