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 WP 칼럼니스트 카슈끄지 피살 배후로 사우디 살만 왕세자 지목
바이든 유가 급등으로 도움 요청하자 왕세자 전화도 안 받아
사우디를 비롯한 OPEC의 도움 절실한 때

【뉴스퀘스트=김형근 기자】 31일(이하 현지시간) 터키의 DHA 통신에 따르면 터키 검찰이 2018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발생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피살사건과 관련해 사우디 용의자 26명이 출석하지 않은 가운데 재판을 중단하고 사우디 당국에 사건을 이첩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이 요청에 대해 법원은 법무부의 의견을 구하고 다음 공판을 4월 7일로 정하겠다고 밝혔다고 이 통신은 전했다.

이에 따라 외교전문가들은 그동안 냉각된 사우디-터키 관계가 새로운 해빙 무드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터키 검찰이 2018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발생한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 피살사건을 사우디 당국에 이첩할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사진은 동료들이 카슈끄지 사진을 들고 사우디에 항의하는 모습. [사진= Wikipedia]

터키-사우디 관계 개선에 이어 미국-사우디 개선 기대 

나아가 이 전문가들은 양국의 해빙 무드는 그동안 조 바이든 대통령과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관계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사우디는 러시아 못지않게 미국과 불편한 관계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사우디 왕실을 비판했던 사우디 출신의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을 두고, 그 배후로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한 이후부터 두 사람은 앙숙이 됐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급등하는 유가를 잡기 위해 최근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뿐만 아니라 OPEC플러스(OPEC+) 회원국 대부분이 바이든 행정부의 석유 증산 요구에 등을 돌리는 등 그동안 중동에서 비틀거리는 미국 대통령의 외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 넣을 수도 있다.

터키의 DHA 통신은 "터키 검찰은 용의자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법원의 명령을 집행할 수 없어 사건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에 법원에 사건을 사우디로 이첩하자는 요구를 했다”고 전했다.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은 터키 정부가 카슈끄지 피살 이후 악화됐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해빙을 모색하는 시기에 나왔다.

터키 관리들, 카슈끄지 토막으로 살해된 후 제거됐을 것으로 추측

미국에서 활동하던 카슈끄지(59)는 2018년 10월 2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가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실종됐다. 터키 관리들은 그의 시신은 토막으로 잘려 제거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우디 관리들은 이번 살인 사건에 대해 "부정한 악당(rogue)"의 소행이라고 말해왔다. 2020년 9월 사우디 법원은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8명을 재판에서 7~20년 감옥 판결을 내렸다. 이들 피고인들 가운데 아무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다.

사우디 재판 이후 터키 법원은 11월 법무부에 대해 리야드 정부에 두 번 처벌받을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서한을 보낼 것을 요청했다.

터키 검찰은 사우디 당국이 이 사건을 자신들에게 넘겨줄 것과 피고인에 대한 이른바 적색 통보(red notices)를 해제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리야드 정부는 또 사건이 사우디로 이송될 경우 26명의 피고인에 대한 혐의를 평가하겠다고 약속했다.

터키 검찰은 피고인들이 외국인이고 체포영장과 적색통지서를 집행할 수 없어서 진술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소송이 중단되거나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1년 전 발표된 미국의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카슈끄지를 사살하거나 체포하는 작전을 승인했다. 사우디 정부는 왕세자의 개입을 부인하고 보고서 결과를 거부했다. 이후 미국과 사우디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했다.

살만 왕세자는 이달 발행된 ‘더 어틀랜틱(The Atantic)’과의 회견에서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인해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카슈끄지 약혼녀, “이익만이 존재하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느껴”

한편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의 약혼녀 하티스 센기즈(Hatice Cengiz)는 터키 검찰의 발표에 대해 “실망했느냐?”는 AFP통신의 질문에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녀는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터키의 입장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라들은 감성이 아니라 상호 이익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물론 감정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슬프다. 우리나라(터키)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평화협정을 맺어 이 문제가 종결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무리 격렬하게 국가적으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그것을 옹호했더라도… 이제 모든 것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며 외국인 투자와 무역을 모색하고 있는 터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지역 내 경쟁국들에 손을 내밀고 있다.

터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 1월 인플레이션이 50% 이상으로 치솟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리야드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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