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성공 여부는 김정은의 신임이 남았느냐에 달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북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이병철(오른쪽) 당 비서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지난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양 옆을 군부 인사가 차지했다. 왼쪽은 박정천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오른쪽은 정치국 상무위원 겸 노동당 비서가 각각 자리했다. 오랜만의 ‘좌(左)정천, 우(右)병철’의 재연이었다.

특히 대북 정보 당국의 눈길을 끈 건 이병철의 등장이다. 그는 지난 10개월 동안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아 신변 이상설이 나돌았다. 그런데 북한 정규군의 모태 격인 조선인민혁명군(빨치산 부대) 창건 90주년 행사에 참석함으로써 화려한 복귀를 신고했다. 그것도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 차림으로 김정은의 바로 옆을 지키며 권력 실세로서의 건재를 과시한 것이다.

이병철은 지난해 7월 김정은이 주재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비상방역에 대한 당의 중요 결정 집행을 태공(게을리 함)했다‘는 이유로 모든 직위에서 전격 해임됐다.김정은 위원장이 촉각을 곤두세웠던 코로나19 방역 관련 사업에서 과오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이병철은 재기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최고 핵심 지위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박정천이 차지함으로써 완전히 밀린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공군사령관 출신으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프로젝트 등 군수공업 분야를 관장하며 김정은의 신임을 얻은 이병철은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김정은과 맞담배를 피우는 장면도 나왔고, 일각에서는 그가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의 아버지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 당국은 즉각 근거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 그만큼 이병철의 위세가 당당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이병철의 사례처럼 북한 권력 내부에서는 벼락출세와 책벌, 해임이나 강등이 수시로 이뤄지고 그 진폭도 크다. 군부 인사의 경우 대장 계급에서 두세 계단 떨어지거나 심지어 대좌(우리의 대령급)로 강등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 반대 경우도 있다. 모두가 최고사령관인 김정은의 말 한마디나 그 때 그 때의 기분이나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

2013년 12월 벌어진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당시 대장 계급) 처형처럼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결정적 과오를 저지른 경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재기불가의 상황으로 여생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인사의 경우 상당수는 최고지도자의 배려에 의해 복권되거나 다시 출세가도를 걷는다.

결정적 요인이 되는 건 김정은의 신임이 완전히 식었느냐 여부다. 건축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김정은이 총애한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의 경우 2014년 11월 숙청돼 가족과 함께 북부 양강도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 평양 순안비행장 리모델링 공사에서 인테리어를 ’주체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김정은이 불호령이 떨어진 직후다. 하지만 이듬해 10월 복권된 마원춘은 김정은을 밀착수행하며 최고지도자의 관심 프로젝트인 ’1호 건설 사업‘을 도맡고 있다.

고위 탈북인사들은 재기에 성공한 권력 실세들의 경우 혁명화 과정에서 불만토로나 문제제기 없이 묵묵히 반성하는 모습과 최고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귀띔한다. 완전히 내쳐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일종의 근신조치인 혁명화를 감내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은이 노동당의 조직을 통해 혁명화 상황 등을 소상하게 보고 받고 재기용이나 복권을 결정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숙청‧강등 같은 재앙을 겪지 않고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代)에 걸쳐 출세가도를 달린 김영남(94)은 전설적 인물로 꼽힌다. 외교부 과장을 시작으로 외교부장과 당 국제비서 등의 요직을 거친 그는 명목상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정점으로 권력을 누리다 고령으로 물러났다. 그런데도 주요 행사시 원로 자격으로 참석하는 경우 기회를 포착해 김정은의 관심을 끌만한 화제를 내세워 귀를 사로잡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 체제의 특성상 용납될 수 없는 ’2인자‘ 혹은 권력실세로 살아간다는 건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일이다. 철저한 감시체제와 통제 속에서 절대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심코 불만을 토로했다가 도청에 걸려 가족까지 포함해 멸문지화를 당하거나 동료, 친인척이 지켜보는 가운데 참혹한 모습으로 공개처형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름대로의 생존 필살기를 발휘하며 어느 정도 버텨보지만 결국 절대권력 앞에서는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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