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한 2020 남자들의 이유있는 항변

휴먼앤북스출간. 15,000원
휴먼앤북스 출간

1. 2030세대 남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지난 3월 9일 20대 대선이 있었다. 이 대선에서 2030세대 남성과 여성의 표심은 완전히 달랐다. 남자는 윤석열 지지자가 우세, 여자는 이재명 지지자가 우세. 대선에서 세대별 차이는 있었지만, 같은 세대에서 성별 차이가 이렇게 극명하게 달라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재명 캠프 입장에서 보면, 2030세대 여성 공략에는 성공했지만, 반대로 남성 공략 실패가 전체 패배의 원인일 수도 있다. 윤석열 캠프 입장에서는 반대로 2030세대 남성지지 확보가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일 수 있다.

문제는 이게 정치권의 의도일 수 있고, 이러한 갈라치기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20대, 30대 여성과 남성은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하는 파트너이자 동료이자 결혼 상대자다. 연인이면서 배우자다. 자식을 낳는다면 아이의 엄마와 아빠다. 그런데 그들의 생각이 이렇게 다른 게 정상인가?

2030세대 남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그들의 속마음은 무엇인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상이, 계층의 장벽을 넘어 또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진 않았는가? 엄마찬스와 아빠찬스로 청년세대에게 진입장벽을 만들어 그들을 절망하게 해놓고, 이제 그 절반인 남성들에게 또다른 불통(不通)의 세상을 만들어 이중삼중으로 절망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2. 30대 남자, 제약회사 영업사원, 그리고 페미니즘.

척 봐도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점심으로 콜라에 밥을 말아먹었다거나, 고양이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큼이나 당혹스러운 조합이다.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지식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및 기회의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정치적 운동과 이론들을 아우르는 용어.”다. 여기에서 핵심 키워드는 1) 여성의 권리 및 기회, 그리고 2) 평등이다. 즉, 사람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이란 1) 여성의 권리와 기회를 증진함으로써 2) 성평등을 이루려는 운동이다.

그런데 30대 남자와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이 두 가지 키워드의 대척점에 서 있다. 여성은 그동안 많은 사회적 차별을 당해왔다. 그 차별을 가한 건 당연히 남성이다. 남성은 여성을 착취하며 특권을 누려온 강자다. 성평등을 위해 척결되어야 할 기득권 세력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정의와 평등을 추구한다. 그런데 영업은 실적을 추구한다. 옳고 그름보다 이익을, 평등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게 영업이다. 그래서 30대 남성과 제약회사 영업사원, 페미니즘은 안 어울린다. 당신이 느낀 당혹스러움의 근원은 그것이다.

그런데 그 끔찍한 혼종이 탄생하고야 말았다. 제약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30대 남자가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썼다.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의 수혜를 입은 자가, 평등과 정의가 아니라 돈과 이익을 추구하는 자가 감히 페미니즘을 논하겠다며 나섰다.

3. 30대 남자, 그리고 페미니즘

평균적인 남자로 33년을 살아오는 동안,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인생의 소중한 2년을 국가에 바쳐야 했을 때, 남자라는 이유로 여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돈과 시간과 정성, 그리고 감정 에너지를 써야 했을 때, 남자라는 이유로 학교와 직장에서 훨씬 가혹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감내해야 했을 때 나는 여자가 부러웠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남자로 태어나지는 말아야지, 했다.

- Prologue: 나는 기득권이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다. 中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페미니스트들에 의하면 여성은 사회적 약자다. 그리고 여성이 아닌 자, 남성은 강자다. 여성은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더 우월한 지위와 행복한 삶을 누렸을 것이고, 남자는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못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물론 남성이라서 힘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지배비용이다. 여성을 차별하고 핍박하고 억압하는 자로서 응당 치러야 하는 아주 작은 대가일 뿐이다. 이게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자가 감당해야 하는 삶의 무게가 여자의 그것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면, 오히려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더 많은 보호와 혜택, 배려를 누리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성은 남성으로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자신들이 남성으로 태어났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저자는 그동안 모든 남성들이 궁금해하면서도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는 여자들 앞에서 ‘개념남’이라는 찬사를 듣고 싶은 욕심도, 악플이나 손가락질을 두려워하는 도덕적 검열도 없다. 마치 동성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듯,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로서 해왔던 고민과 사색, 성찰들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제목만큼이나 치사하고 쪼잔하게.

사람은 누구나 남의 이익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아무리 거창한 대의명분이 있다고 해도 그 대의명분이 나의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즉 공감이 가지 않는다면 사람은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상대방의 문제에 대한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왜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무언가를 팔거나 강요하려 들면 상대방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설득하는 방식은 정확히 반대다. 이들의 Why는 상대방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남성들이 얼마나 많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지, 여성들이 얼마나 부당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를 말할 뿐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이해는 없다.-3장. “메갈리아,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가능한가?” 中

세상에는 페미니스트와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안티 페미니스트들을 일본 제국주의자,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자들이라며 비난하고, 안티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들을 피해 망상에 빠진 정신병자 집단이라며 비난한다.

그런데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집단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제로섬으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두 집단은 누가 더 누리고(+) 있는지, 누가 손해를 보고(-) 있는지를 다르게 볼 뿐, 상대 성별이 누리고 있는 걸 뺏어서(-)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자기가 가진 것을 떼어서 남에게 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누구나 자기 삶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의 갈등은 점점 격해진다.

저자는 이에 이의를 제기한다. 영업이란 이익을 내는 일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익을 추구해서는 이익이 나지 않는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줘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의 시작은 상대방의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영업은 타인이 가진 것을 빼앗아서 내 호주머니에 챙기는 일이 아니다. 상대방과 나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조화를 말한다. 여성의 권익을 증진하는 일이 남성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드는 일이 아님을, 남성이 져왔던 무거운 책임과 의무들을 인정하는 일이 여성을 억압하는 게 아님을 말한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오랜 세월 동안 남성과 여성은 성공적인 파트너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말한다. 그동안 남성이 너무 많은 것들을 누려왔기 때문에 쿨하고 남자답게 양보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행복을 위해 남성과 여성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익과 효율을 추구하는, 제약회사 영업사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한다.

4. 치사하고 쪼잔하게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100명의 여성에겐 100가지의 페미니즘이 있다.

No 자궁, No 발언.

페미니스트들이 즐겨 내세우는 명제들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개인적인 문제의식을 얼마든지 정치적 의제로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이고, “100명의 여성에겐 100가지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페미니즘은 여성 각자가 정의하기 나름이란 뜻이며, “No 자궁, No 발언.”은 여성으로서 차별을 겪어보지 않은 자는 페미니즘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여성은 일방적인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며 남성은 수혜자라는 주장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평범한 남자들의 생각을 조금도 반영하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은 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근거하여 위와 같은 명제들을 만들어냈다. 한 마디로, 페미니즘에 대한 어떠한 반론이나 비판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 집단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남자 주제에 감히 페미니즘을 논한다. (저들이 보기에) 다수자라는 이유로 정작 성평등 논쟁에서는 스스로를 위한 어떤 변론도 할 수 없는 소수자가 되어버렸던 이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아주 치사하고 쪼잔하게.

저자 김현민은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연애 버라이어티 [나는 솔로] 4기 정수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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