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봉화 문단리 회화나무는 한 선비의 꺾이지 않는 의지와 뜻을 담고 있는 의미 깊은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봉화 문단리 회화나무는 지난 2019년 8월에 보호수로 지정된 유서 깊은 나무다.

12m쯤까지 자란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년 정도 되지만, 자태는 천년 고목의 형태를 갖췄다.

문단리 회화나무는 어른 가슴높이에서 잰 둘레가 3m에 이른다. 

문단리 회화나무는 줄기 안쪽은 썩어 텅 비었고 살아남은 줄기 껍질 부분은 셋으로 나뉘면서 가지를 펼쳤다.

이런 형태 덕분에 늙고 오래된 나무라는 인상을 준다.

나무줄기의 가운데 부분을 ‘심재’, 바깥쪽 부분을 ‘변재’라고 한다.

문단리 회화나무처럼 심재가 죽더라도 변재만 건강하다면 나무의 생존에는 별 지장이 없다.

오래된 나무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흔히 보이기 때문에 문단리 회화나무가 실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것이다.

문단리 회화나무는 줄기 위쪽의 생육 상태가 아래쪽보다 좋다.

줄기 아래쪽은 빈약하지만, 위쪽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넓게 펼친 나뭇가지에서 싱싱한 잎들을 내고 있다.

줄기 안쪽은 썩었지만, 문단리 회화나무는 앞으로도 오래 살 수 있을 만큼 건강한 편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회화나무는 이름의 발음이 쉽지 않아 ‘회나무’라고 불리기도 하고, ‘홰나무’로 잘못 표기되는 일도 많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일부 지방에서는 ‘호야나무’라고 불리기도 한다.

회화나무는 선비들이 매우 좋아했던 나무다.

예로부터 선비 가문의 상징으로 많이 심어 키웠다.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펼치면서도 곧게 솟아오르는 줄기의 굳센 이미지에서 선비들은 학문에 정진하는 자신들이 걸어야 할 길을 떠올렸던 것 같다.

선비들은 회화나무를 무척 아껴서 심지어 이삿짐 목록에서조차 회화나무를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문단리 회화나무도 옛날 선비들의 회화나무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다.

310년 전에 이곳에 살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인 단구(丹丘) 황창술(黃昌述:1628~1711)이 애죽헌(愛竹軒)이라는 이름의 서재를 짓고 그 앞에 심은 나무가 문단리 회화나무이기 때문이다.

학자였던 황창술이 학문을 탐구하는 서재 앞에 회화나무를 심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황창술은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그의 외숙부인 김규(金煃)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시문(詩文)에 뛰어났던 황창술이 일찌감치 당대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소단대원수(騷壇大元帥)’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다.

소단(騷壇)은 운치(韻致) 있는 문인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로, 문단(文壇)의 다른 말이다.

소단대원수는 ‘문단의 으뜸’이라는 의미로 그의 지인과 후학들이 붙인 별명이다.

황창술은 과거 시험과는 별로 인연이 없었다.

열여섯 살 때인 1643년에 부친상을 당한 그는 3년 상을 치른 뒤 과거 시험 보기를 단념했다.

나중에 모친의 간곡한 권유로 다시 과거 공부를 시작했지만 역시 성과를 보지 못했다.

한참 더 세월이 흐른 1688년에 모친이 돌아가시자 어머니의 소망이었던 과거 급제를 이루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과거 급제는 작은 일이지만 부모의 뜻을 이루지 못한 자식은 죄인”이라고 하며 뒤늦게 과거 공부에 다시 매진했다.

황창술은 1708년에 마침내 식년시 진사 3등, 60위로 과거에 합격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81세였다.

황창술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공부에 매진하지 못했던 걸 후회했다고 한다.

황창술은 후손들만큼은 일찌감치 공부에 온 마음을 모으라고 당부하며 서재 애죽헌을 짓고 지금의 문단리 회화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여든이 넘어서야 과거 급제의 뜻을 이룬 선비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담고 있는 문단리 회화나무는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의미 깊은 나무다.

<봉화 문단리 회화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2019-1
·보호수 지정 일자 2019. 8. 22.
·나무 종류 회화나무
·나이 310년
·나무 높이 12m
·둘레 3m
·소재지 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527
·위도 36.853711, 경도 128.66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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