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약품 없어 민간요법에 쓸 약초 캐기에 의료인 동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마스크 2장을 겹쳐 쓴 채 평양의 한 약국을 방문했다. 북한TV가 16일 공개한 장면이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무상치료, 무상교육이 베풀어지는 지상낙원으로 오라”

1970~80년대 북한의 대남 전단(삐라)에는 월북을 권유하는 이런 내용이 단골로 등장했다. 70년대 초까지 각종 지표에서 한국 경제를 앞섰던 북한이 사회주의 제도의 선전에 교육과 함께 의료 혜택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 국가가 몰락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이듬해 대홍수로 북한은 수백만 명이 아사했다고 알려진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다.

의료‧보건 체계도 붕괴에 가까운 상황을 맞았다. 주로 소련과 동구권으로부터 수입하는데 의존하던 의약품은 동났고, 의료장비와 시설은 고장난 채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90년대부터 대북 결핵약 지원 사업에 나선 스티브 린튼 박사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수술실의 전등이 들어오지 않자 창밖에서 거울로 햇빛을 반사해 수술하는 장면을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상환자에게 피부를 이식해주기 위해 마취 없이 살점을 도려내는 끔찍한 영상이 드러나 열악한 북한의 의료 현실이 주목받았다.

4월 말부터 북한에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번지면서 이런 보건‧의료 민낯이 그대로 확인되고 있다. 18일 북한 매체의 보도 기준으로 171만 5950명이 확진돼 6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코로나 검사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확진자란 표현을 쓰지 못하고 ‘열이 있다’는 의미의 ‘유열자’란 표현을 쓰는 것만 봐도 속수무책임을 알 수 있다.

사망자 축소 의혹도 제기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의 약국을 방문해 약품 부족과 위생복 착용 등의 문제점을 질책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 의사와 ‘간호원’(북한은 아직 간호사란 용어를 도입 않고 있다)으로 근무하다 온 탈북민들은 자신들이 생생하게 체험한 의료체계의 문제를 지적한다. 필자가 만난 한 간호사 출신 탈북민은 “약품이 동나 치료를 할 수 없어 고려의학이라 부르는 한방치료나 민간요법 수준의 치료법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는 물론 의사까지 출근하자마자 약초를 캐러 산으로 향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선전하는 무상치료와 관련해서는 “치료는 무상이 맞다. 하지만 주사제나 치료약품을 장마당 등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사와야 하고, 의사에게 따로 뇌물을 고여야(바쳐야) 한다”고 귀띔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은 당장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번지기 시작하던 2020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도 번듯한 종합병원이 하나 있어야 한다며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에 참석해 첫 삽을 떴다.

그해 10월까지 완공을 지시하는 등의 무리수를 뒀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김정은이 특별 지시한 사안인데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정도로 북한의 경제와 보건‧의료가 엉망이 됐다는 방증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간부들의 ‘비적극적인 태도와 해이성’을 질타했다는 게 관영매체의 보도다.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게 있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을 위해 코로나 백신제공을 수차례 타진했지만 거부했다.

북한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주민의 생명보다 체제의 자존심을 앞세우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평양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벌였고 전역에서 군인과 학생을 동원했다. 이들이 귀환한 시점이 확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민생을 외치면서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한 결과는 참담하다.

북한 주민들이 코로나 확산 공포에 시달리면서 가족‧친지를 두고 온 탈북민들은 밤잠을 설치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제대로 된 코로나 검진 장비나 약품이 없는데다 주민의 건강상태가 우리의 기저질환자에 가까울 정도로 열악하다는 점에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지원 입장 타진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북한당국이 태도를 바꿔 판문점 대북수송로를 활짝 열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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