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심은 오는 10월 자신의 마지막 박치기를 준비중이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무현 기자】 김일의 박치기 한방에 온 국민이 울고 웃던 1960년대. 김일의 고향 전남 고흥의 조그만 흑백 텔레비전 앞 많은 사람들 틈, 프로레슬러의 꿈을 키웠던 한 소년이 있었다. 

이왕표의 파트너이자 민 머리와 짙은 콧수염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레슬러 노지심(63)이 그 주인공이다.

어릴 적부터 김일을 보며 프로레슬러의 꿈을 키워온 노지심은 중학교 3학년 때 혈연 단신으로 서울에 상경했다. 김일 체육관 2기생으로 입문해 오전에는 프로레슬링 훈련, 오후에는 한국체육관에서 아마레슬링을 수련하는 혹독한 훈련생 생활을 거쳤다.

타고난 장사 체형의 그는 아마레슬링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입문 반년 만에 전국 신인선수권을 휩쓸었고,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도 땄다. 차기 국가대표에 선발될 재목으로 주목받았지만, 선발전을 앞두고 당한 부상으로 프로레슬링에 전념한다.

오랜 훈련생 생활 끝, 노지심은 본명인 ‘김주용’으로 사각의 링에 데뷔했다. 그러나 프로레슬러의 길은 쉽지 않았다. 탄탄한 실력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 쇼맨십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한 프로레슬링에서 다소 밋밋한 그의 캐릭터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결국, 지난 1995년 노지심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는데, 본명인 김주용에서 수호지의 등장인물인 ‘노지심’으로 링 네임을 바꿔 활동한다. 

특색있는 캐릭터를 위해 머리를 밀었고, 콧수염도 길렀다.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 상대의 머리를 들이받는 김일의 ‘원폭 박치기’도 직접 전수 받아 사용하며, 김일-이왕표로 이어지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명맥의 마지막에 서게 된다.

노지심은 지난 2일 방영된 MBN 프로그램 ‘특종 세상’에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과거 극동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며 방송, 광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그는 현재 하남의 한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노지심은 “박치기만 5만 번 이상 했는데, 맞아서 번 돈을 다 날렸다"며 "사업에 실패해 재산을 많이 잃었다. 돈을 빌려 체육관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했지만, 귀가 얇고 융통성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노지심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사회초년생이라 생각하고, 내 나름대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존심은 집에 놓고 왔다. 아직 배울 게 많다”고 했다.

링을 떠난 지 어느덧 7년이 지났지만,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노지심은 이왕표의 빈소에 찾아가 선배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전했다. 

그는 “이왕표 선배는 나에게 삶에 대한 인생관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바늘과 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선배가 가는 곳이 곧 내가 가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타계한 이왕표는 생전 “링 위에서 은퇴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한이라며 아쉬워했다. 

또 노지심의 손을 붙잡고 “한국 프로레슬링을 꼭 책임져 달라”는 유언도 남겼다. 

63세의 노지심은 이왕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링에 오른다. 오는 10월 자신의 은퇴전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인생을 링에서 마무리하고 싶고, 관중들과 만나 소통하고 싶다. 내가 다치더라도 괜찮다. ‘노지심이라는 사람이 아직 살아있구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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