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철의 트루스포츠] ‘투혼’, 갑이 을을 착취하는 ‘혹사’의 과거지사

 
[트루스토리] 현재 한국을 빛내는 톱스타는 걸그룹도 싸이도 아니다. 진정한 한류스타는 누가 뭐래도 류현진이다. 올해 류현진은 박찬호, 박지성, 김연아의 대를 잇고 있는 ‘국민 체육인’으로 급부상 해 한국의 자존심을 세계에 떨치고 있다.

류현진은 매일 행복한 뉴스를 한국에 타전한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짜릿한’ 시간을 마치 속보뉴스처럼 보내고 있고, 지난 5월29일 무사사구 완봉승의 기염을 토하던 날, 전국의 야구 마니아들은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제자리에서 뛰었다. 불과 메이저리그 데뷔 11게임 만에 미국 최고의 화력을 소유하고 있는 팀을 상대로 완벽한 완봉승을 거두던 날, 이제 바야흐로 류현진의 새 역사가 창조되고 있음을 만 천하에 공식 공표하는 날이었다.

정말 용기있는 출전 불가 통보

닷새 뒤인 6월3일. 류현진은 역시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 경기 선발로 나서면서 팬들을 흥분시킨 것이다. 실제 완봉승의 ‘들뜬 스토리’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미국 현지의, 한국 야구인들의 기대감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하지만 류현진은 그런 바람을 무너트렸다. 스스로 ‘경지 직전’, “나갈 수 없다”고 코칭스태프에 통보했다. 그 전 경기에서 상대 타자의 타구에 맞은 발등의 부상 부위가 여전히 심각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이전 경기에서도 이처럼 발등에 공이 맞은 일은 비일비재했고, 또한 그런 상황에서 나머지 이닝을 말끔하게 마무리해왔던 까닭에 ‘승승장구’ 하는 시점에서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고, 특히 선발진이 붕괴되고, 최하위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는 팀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아시아에서 넘어온’ 신인투수가 “나갈 수 없다”고 통보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일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경기 시작 3시간 전까지 그를 ‘선발’로 올려놓고 있었다. 팀도 그렇고, 감독 역시 ‘확실해도 너무 확실한’ 류현진을 출전시켜야 하는 그런 ‘위급한’ ‘절대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손사래를 쳤다. 내 몸의 보호가 우선이었고, 감독을 그런 그의 ‘소중한’ 선택에 손을 들어줬다. 결국 다저스는 졌다. 마이너리그에서 부랴부랴 투입된 맷 매길은 팀을 구원할 수 없었던 셈이다.

류현진이 ‘살아 있는’ 이유는 여기서 출발한다. 아시아의 ‘듣보잡 에이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계약 초반부터 강수로 나갔다. “마이너리그 강등 불가”라는 사상 초유의 특급 계약을 성사시켰다. 데뷔 이후에는 주전 포수의 사인을 최초로 거부했다. 완봉승 직후에는 몸 상태에 따라 경기를 운영할 수 없음을 감독에게 전했다. 일련의 현지 야구의 흐름을 순식간에 꿰뚫은 것은 물론, ‘야구의 갑’들에 굴복하지 않는 ‘아시아의 을’의 삶을 거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덕아웃에서 동료들과 신바람 나게 장난을 치고 세리머니를 즐긴다. 이 정도면 류현진이 갑이다.

바닥을 기고 있는 한화 이글스의 10년차 구원투수 송창식은 버거병(폐쇄성혈전혈관염)으로 한때 고통을 받았다. 지난 2008년 훈련 도중 갑자기 손가락 끝에 감각이 사라지는 ‘버거병’(폐쇄성 혈전혈관염)에 걸렸다. 잘못되면 절단까지 해야 하는 난치병이었다.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의료진의 충격적인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재활과 치료를 거듭하며 2009년 다시 감각이 돌아왔고 이후 오뚝이처럼 우뚝 일어섰다. 테스트를 거쳐 한화에 재입단한 지 4년 만에 그는 이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필승조’로 거듭난 것이다. 제구력이 2004년 신인 때보다 좋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눈물겨운 재활을 통해 컴백에 성공한 투수다. 그는 현재 한화 불펜의 에이급 투수다. 중간계투든 마무리든, 지고 있든 이기고 있든 팀이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면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다.

송 선수는 지난 6일 현재를 기준으로, 한화가 치른 48경기 가운데 26게임에 나서 위엄있는 투구를 선보였다. 최근 일주일간 동안엔 무려 6번 마운드로 올라, 130개 이상의 공을 던졌다. 일반적으로, ‘선발투수’들은 1경기에 출전한 뒤 4일 시상은 푹 쉬고 있지만, 송창식은 그렇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불펜에서 대기했지만, 몸을 지속적으로 풀었고, 등판한 뒤 지속적으로 공을 던졌다. 한화의 현재 성적으로 미뤄, 일정부분 이해가 되는 대목이긴 하지만, 다저스 역시 꼴찌다. 메이저리그 꼴찌와 한국 프로야구의 꼴찌는 다를 수 있지만 우승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김응용 감독도 당대의 최고 감독이었지만, 다저스의 돈 매팅리 감독도 명장으로 꼽힌다.

일주일 동안 무려 6번, 무리하는 송창식

한국 프로야구에서 ‘전설의 역사’가 된 투수들의 기록은 통상적으로 ‘혹사’로 인해 남겨진 역사의 기록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최동원은 한국시리즈에서 4승1패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무시무시한 ‘혹사’로 불과 32살에 야구계를 떠났다. 신인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롯데의 염종석은 데뷔 첫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 뒤 은퇴할 때까지 병상에서 어깨 수술만 받는 혹사의 주인공이다. 반면, KIA 타이거즈의 투수 최향남과 LG 트윈스의 투수 류택현은 올해 43살의 노장이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의 제이미 모이어는 49살에 승리투수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사례로 비춰볼 때, 40대는 야구를 하는데 지장이 없는 훌륭한 나이다.

프로야구 선수는 스포츠인이기 전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직업인이다. 정해진 계약 기간 동안, 구단을 위해 ‘진보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야구감독의 희생양으로 전락해선 안된다. 감독의 실적을 쌓기 위해 수시로 동원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기엔 2군 선수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독도 선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투혼’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사용했던, 80년대 전두환 시절에나 통용됐던 ‘마치 만화 속 주인공’ 같은 이야기다. 개발 독재 때 ‘투혼’은 성공의 스토리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대부분 ‘갑’이 ‘을’을 아름답게 포장할 때 사용하는 상투적 단어가 투혼이다. 최근 한국 야구는 ‘선수 보호’에 올인하고 있다. 구단도 초특급 매니저를 구축, 선수들의 관리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야구계의 ‘갑’인 감독 가운데 일부는 ‘80년대식’ 야구를 구사하고 있다. 한국 류현진이 주는 메시지를 습득해야 한다. “죽도록 던지고, 죽도록 뛰어서 이겼어요”라는 말은, 마치 “밤에 잠을 안자고 공부해서 서울대 갔어요”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팬들은 야구인들의 오랜 생명력을 바란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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