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를 가다 3 생존 위기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

“목숨 걸고 일한 이 억울함 어쩝니까” 

임금 체불은 수시로 있는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업체가 폐업해 임금 떼이기 일쑤다. 하청에 재하청,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임금, 복지, 산재 등 어느 하나 제대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은 무법천지다.

‘조선산업이 어렵다, 불황이다’는 얘기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이 더 얹어지고 있다. 경남 통영에서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조선산업 위기, 우리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회사는 수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모든 손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특히 일부 관리직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중소조선소의 경우 무급휴업, 임금체불과 삭감 등 노동자들의 고통이 심화하는 상황.

이익 줄면 인건비부터 깎는다

한 노동자는 “회사가 적자 나거나 이익이 줄어들면 가장 먼저 깎는 게 인건비”라고 전했다. ‘조선산업 위기’는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당장 임금 삭감으로 다가왔다. “3년 전만 해도 시급이 1만6천원에서 1만7천원이었다. 지금은 많이 받아야 1만3천원 정도다.” 시급 삭감은 노동자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으로 진행한다.

작업량이 적으니 일하는 시간도 전에 비해 줄었다. 한 노동자는 “한참 잘 나갈 때 한 달에 300시간 일했는데 요즘은 180시간 정도로 줄었다”며 “오래 일 할 때는 시급 인상하면 업체 손해난다고 수당 만들더니, 요즘 작업 시간 줄어드니까 얼마 안 되는 수당 없애고 시급을 300원 올렸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일하는 시간이 곧 임금이 되는 노동자들은 시급 삭감 뿐 아니라 일방으로 진행하는 휴업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툭하면 대마찌(무급휴업) 해버리니 임금이 반 토막 났다. 2~3일씩 휴업하더니 최근에는 보름씩 나오지 말라고 통보할 때도 있다.” 휴업도 미리 공지하는 법이 없다. 갑자기 일 없으니 나오지 말라는 전화 한 통이면 끝이다. 통영은 고용촉진기구로 지정돼 휴업 시 고용촉진기금이 나오지만 이마저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또 다른 노동자는 “그 날 잔업이 있는지 퇴근 시간 즈음에 알려준다. 퇴근 2~3시간 전에 갑자기 이제 일 그만하고 가라고 하는 때도 있다”며 “작업 중단해도 정리하고 뭐하면 1시간은 더 일 하는데도 회사는 집에 가라고 말한 그 시간까지만 시급 계산하고 땡이다”라고 토로했다.

임금 삭감, 무급 휴업으로 반 토막 난 임금

자본의 위기 전가는 작업 장비 지급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돈 들어가는 안전장비는 다 줄였다고 보면 됩니다.” 3개월 마다 지급하던 용접복은 6개월에 한 번 지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스크, 장갑은 저가 브랜드로 바꾸고 지급 횟수도 줄었다. “장갑 4~5개를 줘도 하루면 다 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주던 것 마저 줄였으니… 부족하면 자기 돈 주고 사다 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통영 지역 규모가 작은 조선소들은 이미 많은 수가 문을 닫았다. 정규직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일터를 떠나야 했다. 2012년 8월 전체 노동자가 9천 명에 달하던 성동조선소도 현재 4천 여 명 정도만 남았다. 이곳을 떠난 이들은 울산, 군산 등 다른 조선소를 찾아 또 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전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도 한계가 있다. “조선소 비정규직은 4대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몇 명이 일을 그만뒀는지, 어디로 옮겼는지 정부 통계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일터를 떠났는지, 이 노동자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제대로 조사한 통계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이 와중에 올해 초 각종 언론은 대우조선해양에 1만여 개 일자리가 증가했다고 선전했다. 지역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늘었다는데 다 비정규직이다. 지금도 대우조선에 비정규직만 3만 명이 넘는다”며 “그 사람들도 꾸준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 들어오는 일을 반복한다”고 지적했다.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 없는 노동자들

조선산업이 잘나갈 때도 이곳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은 꿈같은 얘기다. 한 노동자는 “꾸준히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며 “물량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으니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고, 언제 업체가 폐업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산다. 인생을 계획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어떤 달은 5백만원 벌 때도 있습니다. 죽어라 잔업, 특근 하면서 일한 달이죠. 그것만 보고 돈 많이 벌어 좋겠다고 하는 사람 있는데 비정규직은 꾸준히 그렇게 일할 수 없습니다. 1년에 4개월은 업체, 물량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느라 일 자체를 못합니다.” 또 다른 노동자도 불안한 생활의 연속이라고 덧붙인다.

산재를 당해도 공상 처리 하거나 개인 돈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는 ‘산재 신청하면 이 회사에서 2~3년 동안은 일 못한다. 다른 회사도 못 들어간다’는 말이 돈다. 이러니 산재 신청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물량팀, 그게 제일 문제예요. 조선소 비정규직노동자 문제 해결하려면 물량팀 부터 없애야 합니다.” 이날 만난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조선산업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운영한다. 이때 2차 하청을 소위 물량팀이라고 부른다. 노동자들은 “물량팀은 여기 사람들 말로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돈 한 푼 없이 사람들만 모으면 물량팀 하나 꾸려서 일 받고 사장 노릇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량팀 90%는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고, 4대 보험도 가입하지 않은 채 운영한다. “물량팀에서 일한다는 건 소속 자체가 없다는 것과 같아요. 개인 팀장한테 속해서 일하는 거니까. 이직률도 높고, 안정한 삶은 꿈도 못 꾸죠.” 물량팀에 속해 일하는 노동자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노동부는 ‘물량팀장’을 사용자로 인정한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 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이에 대한 법률 제재도 없다.

“물량팀 없애라”

“자본금 하나 없이 물량팀 꾸리고, 원청 업체에서 받은 돈 남기려고 노동자들 피만 쪽쪽 빨아먹는다. 우리 노동자들은 물량팀장들은 다 도둑놈이라고 얘기한다.” 임금 체불은 물론이고 어느 날 갑자기 업체를 폐업하고 도망가는 일이 허다하다.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과 퇴직금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많이 받아야 약속한 임금의 70%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 받아내려고 노동부에 진정 넣어도 처벌할 방법이 마땅히 없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 법원 쫓아다니며 해결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어요.”, “조선소 일이 정말 힘들거든요. 목숨 걸고 일했는데 그 임금 못 받고 떼이면 정말 억울해서 살 수가 없어요.”

조선산업 호황기, 세계 1위 조선강국 한국을 만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착취에 내몰렸다. 산업 위기를 말하는 지금, 자본이 살기 위해 이들은 더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신음소리 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한 번 일 시작하면 힘들다, 안 좋다 해도 다른데 갈 생각 못합니다. 정부가 ‘국민행복시대’ 얘기하는데 우리 조선소 비정규직 노동자도 좀 살게 해주세요. 제발.” ‘물량팀을 없애라,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노동자들의 절절한 호소에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한다.
 
글=금속노조 강정주 편집부장 edit@ilab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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