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소득세 틀 손본다. 세금 한푼 안내는 면세자 수도 줄여나가기로

기획재정부는 이달말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봉급생활자들의 세금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소득세 틀 전면 개편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야간 주요 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동호 기자】 내년부터 월급쟁이들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가 15년 만에 소득세 틀을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기획재정부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말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중·저소득층 과표 구간 조정을 포함한 소득세제 개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가 과표 구간 조정을 검토하는 것은 사실상 2007년(시행은 2008년부터) 이후 15년 만이다.

정부는 매년 물가 인상과는 무관하게 과세표준과 세율을 십수년째 그대로 유지,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만 털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따라 정부는 근로소득자에게는 감세 혜택을 넓히고 면세자의 범위는 더욱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그동안 길게는 15년간 과세표준 구간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소리 없는 증세'라는 지적을 받아온 만큼 이 문제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현행 소득세는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세 과표구간과 세율은 그대로 유지돼온 탓에 급여 생활자들은 실질적으로 같은 급여를 받아도 세금을 점점 더 내는 구조여서 불만이 많았다.

현행 소득세법은▲ 1200만원 이하 6% ▲ 4600만원 이하 15% ▲ 8800만원 이하 24% ▲ 1억5000만원 이하 35% ▲ 3억원 이하 38% ▲ 5억원 이하 40% ▲ 10억원 이하 42% ▲ 10억원 초과 45%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8단계 과세표준 구간을 두고 구간별로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2008년부터 적용한 4단계 세율 체계(▲ 1200만원 이하 8% ▲ 4600만원 이하 17% ▲ 8800만원 이하 26% ▲ 8800만원 초과 35%)의 기본 틀을 사실상 15년째 그대로 유지하는 셈이다.

4단계 중 3단계 구간의 세율은 소폭 하향 조정됐지만, 폭이 크지 않고, 1억5000만원, 3억원, 5억원, 10억원 등 높은 세율의 과표를 추가해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단행했다.

그나마도 서민·중산층이 다수 포진하는 1200만원 이하(세율 6%), 4600만원 이하 구간(세율 15%), 8800만원 이하 구간(세율 24%)은 2010년 이후 과표구간과 세율이 그대로다.

 2008~2021년 소득세율과 과세표준구간 변화[그래픽=연합뉴스]

정부가 주로 급여생활자들을 대상으로 거둬들이는 소득세 증세 규모는 예상보다 크다는 지적이다. 소득세 규모는 2008년 36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114조1000억원으로 3배 넘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경제 규모 증가보다 소득세를 과도하게 더 거뒀다는 지적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과세표준(과표) 구간 조정을 통해 자연적인 물가 상승에 따른 세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방침이지만, 소득세 면세자를 늘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고소득층의 과표 구간이 일부 추가되거나 세율이 조정되긴 했지만, 서민이나 중산층이 다수 포함된 1200만원 이하(세율 6%), 4600만원 이하(세율 15%), 8800만원 이하(세율 24%)는 과표 구간이 15년째 그대로 유지됐다.

물가가 오르는데도 세금 체계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사실상 증세가 이뤄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근로자의 소득세 과표(근로소득금액에서 각종 공제금액을 제외한 금액)가 4500만원에서 임금 상승 등으로 3%(135만원) 늘어나 4635만원이 됐고 그해 물가 상승률이 3.0%였다고 가정하면 이 근로자의 실질 과표는 사실상 변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명목 과표는 증가했기 때문에 4600만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종전보다 오른 24%의 세율이 적용된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변함이 없지만, 훨씬 높은 세율을 적용받게 돼 결과적으로 증세가 되는 셈이다. 때에 라서는 실질소득이 줄었는데도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과표 하위 구간을 세부 조정하는 방안도 함께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현 상태에서 과표를 일괄적으로 올리기만 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과표 최하위 구간이 현재 12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25% 올라간다고 가정하면, 종전까지는 세금을 내던 근로자도 앞으로는 세금을 내지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높은 편인 만큼, 정부가 이러한 방향을 검토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세 면세자 수는 2013년 531만명에서 2014년 802만명, 2015년 810만명으로 증가했으며, 2019년(705만명)에도 700만명을 넘겼다.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2019년 기준으로 36.8%에 달한다.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약 4명 가까이는 근로소득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과세 대상자 1인당 세 부담은 2013년 201만6000원에서 2019년 339만3000원으로 68.3% 상승했고, 실효세율은 4.5%에서 5.8%로 높아졌다. 근로소득세를 내는 사람만 내고, 세금을 낼수록 더 내는 기형적인 구조가 점점 더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소득세 면세자를 지금보다 더 늘리지는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위 과표구간을 현행(1200만원)대로 유지하되 구간을 세분화하는 방안과 지금보다 낮은 하위 과표구간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 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하위 과표 구간을 새로 설치해 종전까지 세금을 전혀 내지 않던 근로자들이 소액이라도 세금을 내게 되면 조세저항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기재부에 근로소득세 개편 등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한 세제 개선 건의서'를 제출한 바 있다.

경총은 현행 근로소득세 시스템이 물가·임금 상승에도 저세율 과표구간(1200만∼8800만원)에 대한 조정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소득세 과표구간 상향 조정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현재 37%나 되는 면세자를 더 늘리는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과표를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하되 소득세 과세 하한선은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내릴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소득세 개편 방안을 마무리하고 소득세와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윤석열 정부의 세법 개정 청사진을 발표할 계획이다. 개정 세법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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