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46)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올해는 UN이 선정한 ‘기초과학의 해(The Year of Basic Science)’다. UN은 매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는 부분들을 짚어내 ‘세계의 해’를 지정해 발표하고 있다.

그동안 2005년의 ‘물리의 해’, 2019년 ‘빛과 광기술의 해’, 그리고 2019년 ‘화학원소 주기율표의 해’와 같이 과학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해를 지정해 왔다.

올해를 ‘기초과학의 해’로 지정한 이유는 코로나19 대유행 때문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돈 안되는 과학’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절실해

인류가 세계적인 대역병인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백신과 진단검사, 그리고 역학 모델 등이 모두 기초과학에 바탕을 둔 성과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기초과학은 공학이나 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자연과학을 지칭하는 말이다. 순수과학이라고 한다. 수학, 화학, 물리학, 그리고 생물학 등을 일컫는다.

그러나 일부 기초과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돈 안되는 과학’이라는 말을 즐겨 쓰기도 한다. 공학이나 기술은 제품 생산으로 이어져 돈을 버는데 기여하지만 기초과학은 돈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순수과학’이라고 부르는 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서도 수학은 기초과학 가운데서도 기초과학으로 꼽힌다. 수학은 모든 과학과 기술의 기본이 되는 과학으로 인류가 지능을 갖추면서 출발한 가장 오래된 과학이다.

그래서 그동안 이 ‘돈 안되는 과학’인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 왔다. 사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기초과학에 대한 기업의 지원은 ‘상’을 통해 꾸준히 이루어졌다.

한국계 수학자인 허준이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 낭보가 상대적으로 기초과학이 열악한 우리나라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초과학의 해’에 날아온 쾌거다. 

필즈상 선정되기 전 삼성호암상 ‘물리수학 부문상’ 받아

그러한 가운데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허준이 수학과 교수가 필즈상에 앞서 삼성호암상을 받았던 이력이 재조명 받고 있다.

삼성호암상은 고(故) 이건희 회장이 부친인 이병철 창업자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제정한 상이다.

원래 이 상은 과학, 공학, 의학, 예술, 사회공헌 등 5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국내외 한국계 인사들을 선정, 순금 50돈의 금메달과 상금 3억원을 수여해 왔다.

그러나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제안으로 지난해 과학 부문을 '물리·수학'과 '화학·생명과학' 2개 부분으로 나눠 시상분야를 6개로 늘렸다.

지난해 허 교수는 삼성호암상에서 '물리·수학' 부문이 신설된 뒤 첫 수상자로 선정됐다. 삼성이 과학부문 시상을 확대한 이후 처음으로 물리·수학부문 과학상을 받은 ‘최초의 수상자’가 된 것이다.

때문에 항간에서는 삼성이 필즈상보다 이미 허 교수의 진가를 먼저 알아봤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 관계자에 따르면 호암과학상을 세분화해 확대한 것은 기초과학 분야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공학이나 의학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국내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지원을 확대해 산업 생태계의 기초를 단단히 하고 국가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자는 취지로 확대 시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은 지난 해부터 기존의 삼성호암상의 과학부문을 부문을 '물리·수학'과 '화학·생명과학' 2개 부분으로 나눠 시상분야를 6개로 늘려 수상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 기초과학의 중요성 높이 평가해와

삼성호암상은 첫 해부터 올해까지 총 164명의 수상자를 냈다. 지급된 총 상금은 307억원이다.

허 교수가 받은 필즈상은 해마다 수여되는 노벨상보다 더 까다롭고 더 가치가 있는 명예로운 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1936년 제정돼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이 60대인데 비해 필즈상 수상자는 인생의 가장 활발한 나이인 30대로 수학이라는 학문의 최고봉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명예가 노벨상보다 더하다.

아벨상과 함께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은 한 번 시상할 때 보통 2∼4명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에게는 금메달과 함께 1만 5000캐나다달러(약 1500만 원)의 상금도 전달된다.

흥미로운 것은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메달은 지름 9㎝ 크기로 앞면에는 수학자 필즈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움켜쥐라”

그리고 얼굴과 함께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움켜쥐라(영어로 풀이하면 “Rise above oneself and grasp the world)"라는 의미의 라틴어가 적혀 있다.

이 문구는 1세기경 로마의 시인이자 전성술사인 마르쿠스 마닐리우스(Marcus Manilius)가 남긴 말이다.

필즈상은 캐나다 출신의 수학자 존 필즈(John Fields)가 1936년에 제정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후 의과대학으로 유명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필즈는 개인적으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ICM을 위한 모금에도 크게 성공했다.

그는 죽을 때 개인재산을 전부 ICM에 기증했다. 1924년 ICM의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승의 그의 모든 것을 수학을 위해 헌신했다.

필즈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인 1936년, ICM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총회에서 ‘필즈상’이라는 명칭으로 수학발전에 업적을 남긴 수학자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상은 메달로 수여되기 때문에 필즈 메달(Fields Medal)로 불린다.

고등과학원 김재완 교수, “우수한 석학이 머물 수 있는 우리나라 여건 강화해야”

한편 이번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과 관련 고등과학원의 김재완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허준이 교수가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긴 하지만, 주 근무처는 프린스턴 대학교”이라며 “우리나라가 배출한 우리의 우수한 석학이 우리나라에 주 근무처를 가질 수 있도록 고등과학원과 같은 우리의 이론기초과학연구소의 여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수학과 물리학 같은 기초과학의 교육여건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수준을 강요하지 말고,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기초학문, 전문가로서 필요한 기초학문 등으로 나누어서 학생들의 성향이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고, 시험도 그런 식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예를 들면, 수능 시험의 수학은 기본적인 내용으로 보게 하되, 이 시험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을 받는 학생들 중에서 관련 전문학과로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는 좀더 높은 수준의 시험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김 교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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