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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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우리는 숫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숫자가 들어간 정보는 왠지 더 신뢰감 있게 느껴지고 진실에 가깝게 보이기 마련인지라 숫자로 남들을 설득하는게 대세라고 볼 수도 있겠다.

특히 행동경제학은 숫자의 중요성을 그 어떤 학문보다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숫자에 대한 경계 또한 늦추지 말라고 끊임없이 경고하는 학문이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행동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닻내림효과 (Anchoring Effect)가 관련 없는 숫자가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끼치는지를 강조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행동경제학도 경제학이니까 모든 결과는 숫자로 증명되어야 함도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가 숫자를 다룰 때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그 숫자가 정확한 것인가에 관한 문제부터 봐야 한다.

정확히 출처가 있는 것인지 그 출처는 믿을 만한 곳인지, 혹은 통계치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알고 싶은 바를 정확히 반영한 것인지, 정확한 출처더라도 그 숫자 속에 편향이 있는지 등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세계적인 조사회사 입소스에 따르면, 전 세계 사람들은 사망원인 1위를 암으로 꼽았다. 약 15%의 사람이 암을 꼽았고, 11%의 사람들이 심혈관 질환을 꼽았으며 그리고 교통사고가 10%로 3위를 차지했다' 라는 기사가 있다고 가정하자.(가정이 아니라 실제 입소스라는 회사에서 2020년에 조사한 내용이다. 입소스는 매년 하나의 주제에 대해 사람들의 예측치와 실제 통계치를 비교하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기사를 접한 우리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주변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죽음을 얘기하며 이 내용을 인용하고 전달한다.

그런데 위 설명에서 써 놓았던 것처럼 이 내용은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조사이지 실제 통계 결과가 아니다.

실제 통계에 따르면 사망 원인으로 심혈관 질환이 32%, 암이 24%, 신경질환이 9%를 차지하며 교통사고는 2%로 9위에 해당한다.

인식과 차이가 나는 몇 가지 사망원인들이 더 있다.

사람들은 폭력 (8%), 자살 (7%), 테러 (5%)에 대해서도 실제보다 굉장히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인식조사에서 나온 결과가 실제 통계자료와 몇몇 항목들이 크게 차이가 나는 점은 가용성 휴리스틱에 기인한다.(Availability Heuristic)

사람들은 사망에 관련하여 들었던 최근 언론에서 크게 떠들어댔던 보도에 매우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의외의 사건이니만큼 더 크게 보도될 수 있었던 자살과 테러, 폭력, 에이즈 등으로 인한 사망에 보다 더 현혹되기 마련이다.

둘째, 우리는 위에 나온 기사를 ‘인식조사’라는 항목을 기억하고 읽지 않으면 실제 통계조사 결과와 헷갈릴 수 있다.

따라서, 잘못하면 교통사고가 세계 사망원인 중 3위로 알게 되고 이를 대화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즉 출처도 확실하고 믿을만한 숫자라고 생각된다고 해도 그 숫자, 특히 통계치는 정확히 정의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고 알고 싶은 결과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증명하는지도 따져 보아야 한다.

언론이나 정치인은 자세하게 정의되지 않은 통계치 (틀린 통계치가 아니라 맥락에서 살짝 벗어나게 정의된 통계치)로 우리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심지어 기만하려고까지 한다.

최근 나온 팀 하포드의 책에서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

우선 미국의 총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에 관한 이야기다.

2017년 미국에서 총기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3만 9773명이라고 하는데 이 수치가 총기난사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지속적으로 보도된다고 한다.

물론 총기의 안정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차원에서는 좋지만 총기사고와 총기난사사고는 엄연히 다르다.

실제 저 숫자의 60%는 총기로 인한 자살이라고 하는데 저런 기사에서는 저런 숫자를 내보낼 뿐 누구도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다.

다만, 맥락상 사람들은 총기난사사고로 약 4만명이 죽는다고 인식하게 될 뿐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2016년 영국에서는 살인사건 발생률이 급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1989년 힐스보로 축구장 붕괴사고로 96명이 죽었는데 그 사고가 2016년에 공식적으로 살인사건으로 분류되면서 2016년 살인사건의 수에 포함됨에 따라 그 해에 살인사건 발생률이 급증한 것이다.

그런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영국 국민에게 2016년은 최악의 해로서 인식될 것이 자명하다.

미디어가 다양화 될수록 미디어는 더욱더 자극적인 뉴스로 사람을 호도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숫자를 쓰게 되면 미디어 입장에서는 더없이 좋은 무기가 되지만,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더없이 사악한 무기가 된다.

앞서 말했듯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엉터리 숫자를 가지고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더라도 자세한 맥락이나 해당 통계에 사용된 말들의 정의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음으로 해서 간접적으로 오해가 쌓이도록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공격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숫자를 잘 사용하려면, 그 숫자의 허와 실을 정확히 파악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다.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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