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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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어떤 사람이 생각이 많다는 것은 과연 최선의 결과를 가지고 올까?

때에 따라서는 그렇지만 때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흔히,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해주는 얘기가 있다.

‘단순하게 해라’.

얼마 전 은퇴하면서 영구결번식을 진행했던 롯데자이언츠의 야구선수 이대호는 실제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잘 해주기로 유명한데, 사실 조언이 너무 허무맹랑해서 유명하다.

예를 들면 “공보고 공쳐라”, “매일 안타 하나씩 치는 기분으로 치다가 하루 몰아치면 3할 된다”, “그냥 힘껏 휘두르면 공이 와서 맞을 거다”라는 어록이 있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에 대해 대부분 스포츠 평론가들은 스타는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서 당연히 되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렇게 얘기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스타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조금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잡생각하지 말고 하던대로 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시카고 대학의 ‘시안 베일록’ 교수는 어떤 상황에서 숨막힐 듯 다가오는 부담감을 일컫는 질식 현상 (choke)과 관련한 전문가이다.

그녀에 따르면 골프 초보자들은 동작 하나하나에 의도적인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수록 공을 좀 더 잘 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 경험이 쌓일대로 쌓인 프로 골퍼들이 퍼팅 동작 등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공을 잘못 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고 한다.

이미 충분한 경험으로 뇌 속에서 모든 기술이 자동화되어 있는 상태인데 동작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오히려 실력이 급속하게 퇴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프로야구에서 가끔 얘기되는 ‘입스’라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입스는 떨림, 멍함 등의 증상으로 운동기술이 방해받는 현상을 일컫는데 다르게는 ‘스티브 블래스병’이라고도 한다.

1970년대 초반에 소속팀에게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주고 그 이듬해에는 19승을 올렸던 스티브 블래스라는 최고의 투수는 갑자기 그 다음해에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게 되고, 얼마 안 가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는 “공을 잘 던질 때에는 아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온갖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복잡한 게 많아졌고 마음에 여유가 없고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오히려 많은 생각들이 이미 잘하고 있는 지금의 성과를 망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과도한 생각이 우리를 저해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고정관념은 우리를 얼마나 지배할까?

스탠퍼드 대학의 클로드 스틸 심리학과 교수는 “Whistling Vivaldi: How Stereotypes Affect Us and What We Can Do”라는 저서를 낸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정관념은 세상을 어떻게 위협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책의 부제와는 얼추 비슷하게 해 놓았다.

그런데 왜 그는 책 제목을 ‘비발디 휘파람 불기’로 지었을까?

그 이유는 그가 접한 미국의 작가이자 뉴욕타임즈의 편집위원으로 유명한 ‘스테이플스’라는 사람의 이야기 때문이다. (Just Walk on By: Black Men and Public Space)

스테이플스는 6피트 2인치 (대략 188cm)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흑인인데 그가 뉴욕의 거리를 걸을 때면 ‘건장한 젊은 흑인’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를 일종의 범죄자처럼 보아서 실제로 소리를 지르거나 혹은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해결책으로 베토벤, 비발디, 그 외 클래식 작곡가들의 유명한 곡들을 휘파람으로 불면서 지나갔다고 한다.

사람들은 비발디의 사계를 휘파람으로 불면서 지나가는 강도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겁 먹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스테이플스를 따라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 착안해서 책 제목을 ‘Whistling Vivaldi’로 지었는데 사실, 책을 쓰기 20년 전부터 고정관념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다.

대표적으로 스틸은 스탠퍼드 대학 학생들에게 타고난 지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얘기하고 GRE 문제를 제시하고 풀게 했는데 그 결과, 마치 실제 SAT에서 소수인종 학생들의 점수가 낮게 나오듯이 백인 학생들이 흑인 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얻었다.

그런데, 정말 알고 싶은 실험 결과는 다른 실험이다.

이번에는 다른 그룹에게 실험을 실시하게 되는데 지적 능력을 테스트하는 목적이 아니라 그냥 연습삼아 해 보는 시험이라고 얘기하고 동일한 문제를 풀게 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들의 점수는 거의 같게 나왔다.

결국, 점수차이가 나는 이유는 흑인 학생들이 지능 테스트를 하겠다는 말을 듣는 순간 ‘흑인은 유전적으로 백인보다 지능적이지 않다’라는 고정관념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 고정관념의 위협 (stereotype threat)이 실제 결과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하기 바로 전, 리처드 헌슈타인과 찰스 머레이가 ‘벨 커브 (The Bell Curve)’라는 책을 통해 사람의 지능은 유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개인의 지능은 개인의 삶을 예측해 주게 됨으로써 마치 사회가 양분되는 게 마땅하다는 듯이 주장했기 때문에 클로드 스틸의 연구와 주장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후 실험에서 남성과 여성도 성별 차이를 측정한다고 할 때는 점수 차이가 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점수 차이가 나지 않다는 결과를 얻어내는 등 결국,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을 제거한다면 높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였다.

심사숙고 끝에 의사결정할 때 나타나는 안 좋은 결과 중 두 가지 현상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시스템 2가 작동해야 하는데, 본능적으로 시스템 1이 작동하여 나타나는 오류에 대해 많이 연구한다.

하지만 오늘 얘기했듯이 이미 숙달되어서 경지에 오른 상황에서는 시스템 1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시스템 1이 작동해야 하는데 시스템 2가 개입하게 되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세팅하는 상황이 되어버려 뇌도, 몸도 혼란에 둘러싸이게 된다.

가령 우리가 운전할 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좌회전 할 때를 생각해 보자. 어느날 갑자기 좌회전 신호가 들어왔을 때, 핸들을 몇 도로 돌려야 하는지, 페달을 얼마만큼 깊이로 밟아야 할지, 아니면 시선을 어디로 처리해야 할지 등을 고민하게 되면 과연 운전이 제대로 될까?

십중팔구 교통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운전은 그대로 기존에 몸에 베어왔던 것처럼 하는 게 제일 정확하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헹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헹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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