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토리]

김형준 편집위원

국내 최고의 초일류기업 삼성의 앞날에 거칠 것은 없어보였다. 2012년에 접어들어서도 스마트폰이 국내의 시장을 석권하면서 삼성전자의 주가는 130만 원대를 오르내리며 조만간 200만원을 돌파하리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그 거침없는 질주의 뒤켠에서는 분란의 씨앗이 은밀하게 싹을 키워하고 있었다. 삼성가가 뜻하지 않았던 재산상속 분쟁에 휘말려 온갖 구설수를 자아내고있는 것이다.

사실 이 분쟁은 곪아터질 시기만 엿보고 있었을 뿐 일찍부터 예고돼 있던 것이기도 했다. 그 뇌관에 불이 붙여진 것은 2012년 2월12일 세인들의 관심에서 잊혀졌던 삼성가의 장남 이맹희가 느닷없이 동생인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재산상속 소송을 내면서부터였다. 이맹희는 “선대회장(이병철)의 차명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형제 자매들)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명의로 변경해 버렸다”며 반환소송을 낸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일은 이맹희 형제의 단순한 재산 다툼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열흘 후 이맹희의 아들 이재현이 회장인 CJ그룹이 ‘삼성그룹 직원들의 이재현 회장을 미행해 왔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형제간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감케 했다.

그런 예감은 2월29일 이병철의 차녀 이숙희가 역시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삼성 측이 이맹희 씨에게 못되게 굴어 동참하게 됐다”면서 “남편(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선대 이병철 회장에서 선임을 받으나 시기하고, 중상모락하고 난리가 났었고, 그 과정에서 상속을 못받게 됐다”며 이맹희와 같은 요지의 소송을 내면서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은 맏형과 둘째 누나의 소송 사실에 대해 한동안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소송에 대한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4월17일이었다.

“고소한 사람들이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니까, 내가 뭐 섭섭하다느니 그런 상대가 안 된다. 각자들 다 돈을 가지고는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네들이 고소하면 나도 끝까지 고소하고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 가더라도 한 푼도 내줄 수 없다. 선대회장 때 벌써 다 분재가 됐고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까 욕심이 좀 나는 거다.”

불쾌한 감정이 다분히 섞인 답변이었다. 이와 같은 이회장의 발언 보도되자 소송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주일 뒤인 4월23일 이맹희 ‘이건희 회장 인터뷰에 대한 입장’이라는 보도자료를 내며 자신의 육성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몹시 당황했다. 앞으로 삼성을 누가 끌고 나갈 건지 걱정된다. 건희는 현재까지 형제지간의 불화만 가중시켜왔고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 한 푼도 안 주겠다는 그런 탐욕의 이 소송을 초래한 것이다. 진실을 밝혀서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내 목적이다.”

이 회장을 ‘건희’라고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그의 감정이 몹시 분노에 차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만했다. 그는 이번 소송에 어떤 배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소송은 내 뜻이고 내 의지’라고 했다. 같은 날, 이숙희도 이 회장의 발언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건희 회장의 ‘수준이하 자연인’이라는 발언은 명색이 자신의 형과 누나인 우리를 상대로 한 말로서는 막말수준이라고 할 수박에 없다. 우리는 차명주식의 존재를 몰랐으므로 차명주식에 대해 일체 합의해 준 바가 없다. ‘선대회장 때 다 분재됐다’는 거짓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은 이 회장의 재산을 뺏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되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차명주식이 있는 줄도 몰랐고 상속에 합의한 적도 없다면서 “그렇게 떳떳한 사람이 작년에 상속인들 간에 합의가 있었다는 허위 내용에 도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는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그 이튿날 이건희 회장은 이들의 발언을 곧바로 감정적으로 반박했다.

“그 양반(이맹희)은 30년 전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청와대에 고발을 해서 우리 집에서는 퇴출된 양반이다.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장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이맹희 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 이숙희 씨는 그 시절 금성(현 LG)으로 시집가더니 (삼성이) 같은 전자업을 한다고 시집에서 구박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 와서는 떼를 쓰고 영 보통 정신 가지고 떠드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맹희는 완전히 내 자식이 아니다’ 하고 내제낀 자식이다. 숙희는 ‘이건 내 딸이 이럴 수가 있느냐, 삼성의 주식을 한 장도 줄 수가 없다.’고 얘기를 하셔서 그걸로 끝났다.”

재벌그룹의 유산분쟁이 대게 형제자매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듯이 삼성가 역시 예외가 아닌 셈이다. 감정과 막말싸움 당사자들인 이맹희, 이숙희, 이건희, 형제자매의 이른바 ‘신상 털기’는 이제 해외에서까지 토픽이 되고 있는가 하면, 삼성그룹과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 회장의 CJ그룹은 기업 이미지와 관련해서 무척 난감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리 재벌그룹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의 가정사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쪽이 옳은지 그른지,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잇는지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대회장 이병철이 생전에 남긴 여러 발언과 심정, 그리고 삼성그룹 후계자 결정의 미묘한 과정이 더욱 의미가 있다.

기업경영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5개 계열사를 거느린 삼성의 경우 그룹 매출이 375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22%를 차지하고, 주식시장 시가총객의 25%, 수출의 24%를 점하고 있다. 선진국 가운데 대한민국처럼 나라의 경제가 한 기업에 기대는 경우가 없다. 삼성, 신세계, CJ, 한솔 등 이건희 회장 형제자매들 기업의 자산을 합하면 500조원을 넘는 등  전체 국부의 3분의 1에 육박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국내최대기업 삼성을 세우고 키워낸 호암 이병철은 슬하에 자녀도 무척 많았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수많은 삼성 그룹사들과의 막대한 재산의 상속과정에서 갈등과 분쟁이 없을 리가 없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이 오늘의 재산분쟁의 사태를 맞이해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며 삼성가 40여년의 왕좌의 게임이 새로운 불씨의 도화선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남긴 차명재산을 두고 장남 이맹희씨와 삼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벌인 상속소송의 항소심 심리가 27일 시작됐다. 양측이 첫 변론기일부터 한 치 양보 없는 설전을 벌이자 재판부는 대리인들에게 “형제 사이에 화해하도록 설득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특히 “형제 간의 다툼은 국민에게 실망을 준다. 재판 중이라도 화해하도록 설득해 국민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소탐대실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를 먹칠하는 ‘바보 행진’을 멈추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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